‘새터민’이 아니라 ‘북한 이탈 주민’

2011.09.18 12:28:00

추석을 맞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다문화 가족 노래 자랑, 어린이 장기 자랑 등 다양한 특집을 했다. KBS1 우리말 겨루기도 추석 특집 방송을 했다. 이 프로는 우리말에 대한 재미있는 퀴즈와 대결 구도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있어 인기가 있다. 9월 12일 추석에는 특별히 북한 이탈 주민이 나와서 우리말 실력을 뽐냈다. 이 기획은 북한 이탈 주민들이 국내 정착 과정에서 겪는 언어 이질화 문제를 짚어보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도 찾아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방송에 출연한 사람은 자신을 계속 새터민이라고 표현을 했다. 자신을 새터민이라고 한 사람은 최종 결승까지 올라 달인에 도전할 정도로 우리말에 대한 실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새터민은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말로 바뀐 것은 모르고 있었다.

북한 이탈 주민(北韓離脫住民)은 대한민국 법률상 용어로, 북한에 주소ㆍ직계가족ㆍ배우자ㆍ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대한민국 이외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말 그대로 북한에서 이탈한 주민을 가리킨다.

흔히 탈북자(脫北者) 또는 새터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용어는 몇 차례 바뀌었다. 1990년대 이전에는 귀순자, 귀순용사라고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을 이탈해 남한으로 들어오는 주민이 늘어나자 탈북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탈북자라는 용어가 어감이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다른 용어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2005년 1월 9일 통일부는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주민’이라는 의미로,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 긍정적ㆍ미래지향적 이미지 제고를 위해 선정하였다. 당시 통일부는 공식적인 용어로 법률용어인 ‘북한 이탈 주민’을 사용하되, 비공식적으로 ‘탈북자’를 대신하여 ‘새터민’을 상황에 맞게 사용한다고 했다.



이 용어는 언론에서 그대로 받아 사용하고, 대중에게도 친숙하게 정착되는 듯했다. 그러나 탈북자 단체와 남한 사회 일부에서 용어가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 새터민의 뜻은 아직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해외에 흩어져 있는 탈북자를 아우르지 못하기 때문에 용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2008년 11월 21일에 통일부는 가급적이면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북한 이탈 주민을 쓰라는 것이었다.

행정 용어의 잦은 변경은 ‘북한 이탈 주민’만이 아니다. 여성부는 ‘집창촌’을 ‘성매매업소’로 바꾼 뒤 다시 ‘성매매집결지’로 변경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납골당’은 ‘봉안당’으로 ‘화장장’은 ‘화장시설’로 변경했다. 게다가 묘지와 봉안당, 화장시설 등을 통칭하는 ‘장사시설’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었다.

잦은 변경은 당사자들도 ‘새터민’인지 ‘북한 이탈 주민’인지 모르는 현실을 낳았다. 행정 용어의 잦은 변경은 언론조차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아직도 성매매업소라고 부른다. 9월 13일 KBS 뉴스에서도 새터민이라고 쓰고 있다.

이에 비해 ‘다문화 가정’은 용어가 자주 바뀌었지만 빠르게 정착했다. 전에는 다소 ‘혼혈인 가족’이라고 부끄러운 표현을 했다. 이는 서로 다른 인종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인종 차별적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국제결혼 가족’, ‘이중문화 가정’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국제결혼이라는 용어도 내국인 간의 결혼과 외국인과의 결혼으로 구분하는 차별성이 내포되어 있어 올바르지 않다. 그러다가 ‘다문화 가족’이라는 용어가 정착했다. 이 용어는 한 가족 내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거부감이 없다. 이들의 자녀를 다문화 가정의 자녀로 부르는 것도 바람직하다.

용어 변경은 필요하다. 하지만 공공 기관이 사회적·행정적 용어를 바꾸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잦은 변경은 국민에게 혼동을 주고 불필요한 사회 비용을 치르게 한다. 그리고 용어 변경이 이루어졌다면 해당 부처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특히 언론 매체는 정확한 표현으로 국민의 혼란을 최소화하는데 앞장 서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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