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표준어 인정을 보고

2011.09.27 17:52:00

지난 8월 31일 국립국어원은 국민이 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짜장면, 허접쓰레기, 맨날’ 등을 포함한 39개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반영한다고 발표했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2월 국어심의회에 상정된 단어들은 어문규범분과 전문소위원회에서 심층적인 논의를 거쳤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 표준어 대상으로 선정된 39개 단어는 지난 22일 국어심의회 전체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국립국어원 측은 “언어 사용 실태 조사 및 여론 조사를 통해 국민의 언어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 하겠다.”며 “국민들이 국어를 사용할 때에 더욱 만족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 보도가 있고 대체로 긍정적인 여론이 생산되었다. 규범과 실제의 차이에서 오는 언어생활의 불편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는 기대가 있었다. 일부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중앙일보(2011년 9월 6일)에서는 ‘나래’, ‘내음’을 표준어로 추가했다면 ‘잎새’도 함께 올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이시옷 규정도 쉽게 고쳐야 한다고 했다. ‘소주잔’ ‘대폿잔’은 왜 사이시옷이 다른지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하고, ‘등굣길’ ‘하굣길’은 모양이 사납다고 했다. 여기에 표준발음도 문제라고 했다. ‘밟다’를 [밥따]로, ‘밝다’를 [박따]로 발음하는 사람은 아나운서밖에 없다는 것이다. 띄어쓰기 규정도 ‘지’ ‘데’ ‘바’처럼 내용에 따라 띄었다 붙였다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고 일관성도 부족하다는 불만이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이러한 사회적 약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새로운 말이 생기기도 하고(생성), 변화하기도 하며(발전), 이제까지 쓰이던 말이 사라지기도(소멸)한다. 따라서 이번처럼 새로운 표준어 인정은 좋은 일이다. 나가서 언중이 맞춤법을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단순화하는 것도 노력해 볼 일이다. 그에 따라 표준어 정책에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언어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약속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이므로 불편하다고 무턱대고 바꾸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모두가 ‘먹거리’라고 하기 때문에 표준어로 채택하다보면, ‘이쁘다’도 그렇게 해야 하고, 최근 많이 쓰는 ‘그닥, 얼짱, 샘(선생님을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등도 표준어로 실어야 한다. 이러다 보면 표준어 인정에 끝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 표준어를 새로 추가한 것을 계기로 표준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서울말을 표준어로 하는 것을 옳지 않다는 의견이다. 서울도 지역 방언이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아래 지방의 방언이 향토적이고 구수하다는 예찬론을 펴기도 한다.



보통 수도(首都)와 같은 한 나라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에서 쓰는 말이 표준어가 된다. 프랑스어도 파리 사람들의 언어고, 표준 일본어도 도쿄 사람들의 언어다. 이러한 중심지의 말이라야 널리 퍼지기 쉽고, 또 국민 교육이 쉽다. 서울말이 표준어로 채택된 것도 이런 차원이다.

표준어를 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 말을 쓰는 단일 언어사회로 묶자는 데 있다. 한 나라를 통일된 사회로 만드는 일을 표준어에 맡기는 것이다. 표준어를 통일하는 것은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방언을 죽인다고 하는데 억설이다. 방언은 방언대로 기능이 있다. 또, 표준어는 자기 나라 말에 대한 충성심과 긍지를 길러주기도 한다. 나라가 있음으로써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긍지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말이 있음으로써 자기 나라 말에 대한 충성심과 긍지가 생긴다.

최근 국제화라는 명목으로 국어 정책이 위축되고, 모국어 교육이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격변하는 시대의 물결 속에서 모국어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게 하는 국민적 노력이다. 국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영어 교육이 필요하지만, 영어에 몰입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자유로운 영어 구사가 국제 경쟁력을 보장한다는 것도 확정된 진리는 아니다.

모국어는 의사소통의 기능을 넘어 정체성을 확인하는 도구다. 모국어를 통해 자국민과 문화를 공유하고 올바른 시민으로서 성장한다. 언어는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적 고유성이 포함되어 있다. 외국에서도 주목하는 것은 자유로운 영어 표현이 아니라 말에 들어 있는 콘텐츠다. 어린 나이에 영어에 몰입하면 유창하게 말을 할지는 모르지만 감동을 주는 말은 하지 못한다.

나아가 우리의 국어 정책은 밖으로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의 언어 정책은 국내에서 표준어 정책 등에 국한되어 있었다. 현재 우리의 국력 신장으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 많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언어 정책은 외국인을 위한 정책으로 확대되고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수립되어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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