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임신’은 '늦은 임신'으로

2011.10.15 23:08:00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이 날은 풍요의 달인 10월과 임신기간 10개월을 의미해서 정해졌다. 지난 2005년 12월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제정된 이래 올해로 6회째를 맞는다.

지난 10일에 보건복지부(장관 임채민)는 ‘제6회 임산부의 날 기념행사’를 마쳤다.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임산부와 그 가족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기념식 외에도 임산부를 위한 축하공연, 지역별 대표적인 임산부 배려정책 전시, 임신 시기별 건강식단과 해외 임산부 건강식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이 기념일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민들이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임산부의 실질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한 것이다. 방송에서도 이와 관련된 행사를 소개하고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와 관련하여 방송에서 여성들이 결혼이 늦고, 그에 따라 임신도 늦게 하는 경향에 대해 보도를 했다. 요즘엔 30, 40대 임신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고령 산모는 합병증 때문에 출산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령 산모’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선 ‘고령’의 의미를 살펴보면,

‘고령(高齡)
늙은이로서 썩 많은 나이. 또는 그런 나이가 된 사람.
- 우리 아버지는 90세의 고령이시다.
- 고령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여 노익장을 과시하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고령’이 정확하게 몇 살인지 모르지만,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용어로도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을 고령화사회(Aging Society),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을 고령사회(Aged Society)라고 한다. 그리고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을 후기고령사회(post-aged society) 혹은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이 표현으로 보면, 적어도 65세 이상은 돼야 ‘고령’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 하지만 ‘35세 이상의 임신은 고령 임신에 해당하므로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한다.’라고 할 때는 적절하지 않다. 35세라는 한창 나이의 여성들에게 ‘고령’의 딱지를 붙이면 싫어할 것이다. 이때는 ‘늦은 임신’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어휘의 올바른 사용은 언어생활의 기본이다. 상황에 맞는 어휘 사용은 언어생활을 명확하게 한다. 특히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거나, 언중이 꺼리는 표현은 서로 다듬어서 사용한다면 한결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언어생활을 만들어준다.

그 예로 ‘노인’이라는 말을 쓸 자리에 ‘어르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해당된다. 오래 전에 서울시가 노인에게 일자리를 알선하기 위해서 주최한 박람회의 명칭이 ‘어르신 일자리 박람회’였다. ‘노인’은 나이에 치중한 언어 표현이라면, ‘어르신’은 살아온 연륜을 중시한 표현이다. 더욱 ‘노인’은 한자어이고, ‘어르신’은 우리말이라는 데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덕택에 지금은 ‘어르신’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좋은 현상이다.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542만 명으로 11.3%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이에 생명보험 회사에서 40∼69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노인에 대한 나이의 기준을 조사했다.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에 54.4%가 70∼74세는 돼야 노인 세대로 진입한 것이라고 했다. 즉 중장년층 세대는 ‘노인’에 대한 기준을 70세 정도로 생각했다. 노인이라고 불리려면 75세는 넘어야 한다는 답변도 14.4%였다. 그리고 심리적 나이와 실제 나이 차이에 대해서는 조사 대상의 36.9%가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6∼10세 젊다고 생각했다.

최근 개그프로그램에 ‘애정남’이 인기다. ‘애정남’은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다. 개그맨이 우리 생활에서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공감이 가는 것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몇 살이 ‘노인’인지 참으로 애매하다. 몇 살에 임신해야 ‘늦은 임신’인지도 마찬가지다. 모두 심리적 요인과 관계있어 애매하지만 이런 것도 정해주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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