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교육으로 가는 길

2012.03.29 08:50:00

우리 교육이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학교의 모습은 예전과 다르게 많이 흐트러져 있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지만, 교실의 학생들은 학습 의욕이 없다. 학교 내에서 폭력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일부 아이들은 피해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학교와 정책 당국은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게 결과가 좋아지지 않는다.

한국 교육은 산업 사회에 혁신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 풍요로움은 교육이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을 못한다. 미국의 오바마도 한국의 교육을 칭찬을 한다(정확히는 한국의 교사를 국가 건설자라고 했다). 교육계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학교는 부정적인 대상이다. 공교육은 사교육과 비교하면 늘 처진다고 한다. 교사도 학원 강사와 비교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비난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입시 교육이라는 데는 같을 것이다. 입시 교육에 치중하면서 우리 교육이 본질을 잃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장에 가면 명문대 입학생을 자세히 보고한다. 마치 교육의 목표가 여기에 있었다는 듯이 명문대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 목표 달성을 이룩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는 학교 정문에 현수막으로도 걸렸다. 이런 풍조에 대해 학부모는 물론 사회 일각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 매체는 오히려 이러한 통계 발표 집계를 즐기고 있다.

이것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교육이 입시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시 교육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몰입은 모든 것을 지나치게 한다. 학교와 학생은 오직 내신, 수능, 논술 점수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된다. 앨빈 토플러(2008)가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한 것도 결국 이런 교육 풍토를 두고 한 말이다. 글로벌 시대는 세계의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우물에 있는 친구들과 점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끼리 경쟁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잘못된 흐름 속에서 학교는 방향을 잃었다. 학교는 정작 필요한 가치는 파괴되고, 부정적인 모습을 만들어 낸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양산한다.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어린 학생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당연히 학교는 재미가 없고, 친구들을 괴롭힌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간의 교육적 소통도 없다.

특정 대학교 합격 현수막을 거는 관행은 최근 ‘학교 정보 공시제’ 등과 맞물려,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통계내기는 값싸고 촌스러운 문화다. 핀란드 교육이 널리 이야기되는 이유는 학교에서의 서열을 매기는 평가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초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경쟁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는 대신 공부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형성된 다음부터 경쟁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토마나부 교수도 낙오자를 가려내는 교육이 아니라 누구나 최소한 30세 이전까지는 아무런 사회적 제약 없이 교육을 받고 도전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했다.

같은 새도 차이가 있다. 독수리는 새끼를 기를 때 낭떠러지에서 밀어서 높이 나는 법을 가르친다. 참새는 먹이를 주고 날 때까지 돌봐주어야 한다. 병아리는 어미 뒤를 따라 다니면서 큰다. 독수리가 창공에 높이 나는 모습이 부럽다고 새끼를 밀어낸다면 죽는다. 하물며 인간은 모두 능력이 다르다. 독수리 나는 모습이 멋지다고 아이에게 힘든 공부를 강요한다면 잘못된 교육 방법이다.

경쟁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낳는다. 경쟁은 사고력을 약화시켜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는다. 아울러 협동의 능력도 기를 수 없다. 학벌 중시의 교육은 자연 독창적인 접근이나 창의성의 함양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우리 교육도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를 헤쳐 나갈 잠재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과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개별화 교육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고, 좋은 교육이다.

교육은 미래 삶의 가치를 키우는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상상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교과를 교육과정의 중심축에 놓고 있다. 우리는 최근 교육과정 개편을 하면서 이미 배정된 예술교과조차 밀어내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은 인간관계, 의사소통, 예술 향유와 세계문화에 대한 이해가 능력이다. 글로벌 리더는 영어를 잘한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공익 광고가 생각난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라는 문구다. 여기에 정답이 있다.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 참된 교육의 시작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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