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거리’와 ‘떼거지’

2012.04.12 09:20:00

SBS 대표 평일 예능프로그램으로 ‘강심장’이 있다. 과거에는 강호동과 이승기가 공동MC로 하던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강호동이 하차하고 이승기 혼자서 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 재방송을 시청할 때도 이승기 혼자서 진행했는데, 보도에 의하면, 이승기마저도 하차하고 MC가 교체된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서바이벌 토크 형식으로 이뤄진다. 기존 토크쇼에서 찾아 볼 수 없던 형식으로 자유 주제로 입담을 펼친다. 그리고 대결을 펼쳐 최고의 입담을 가진 ‘강심장’을 뽑는다. 특히 출연진을 연예인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국내 명사들을 초청 출연시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8일(일요일, 4월 3일 방송분) 프로그램에는 세븐이 연인인 박한별과 10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일반에 공개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은 비결을 물었다. 이 질문에 세븐은 둘이 있는 시간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녔다고 했다. 즉 둘이만 있으면 언론에 노출되었을 것인데, 여럿이 몰려다니며 그 사이에서 밀애를 즐겼기 때문에 남모르게 열애를 즐겼다고 했다. 연애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숨어서 연애를 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충분히 이해도 됐다.

그런데 이 말을 하면서 ‘~떼거지’로 몰려 다녔다고 했다. 이 말에 다른 출연자들도 ‘~떼거지’로 몰려다닌 사람들의 틈에 자기들도 낀 것이 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물론 자막도 계속됐다. 여기서 ‘~떼거지’는 분명 잘못된 어법이다. ‘떼거리’가 바른 말이다. 방송 자막으로도 ‘떼거지’에 물음표를 붙였지만, 조심해야 할 말이다. 우선 각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다.

‘떼거리’
떼(목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무리. 양 떼/떼를 지어 다니다./떼로 몰려다니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 - 떼거리로 몰려다니다.

‘떼거지’
1.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 적삼 차림에다 소 주둥이 가리는 부리망같이…얼기설기 엮은 약 돌기를 짊어진 꼴이 영락없는 떼거지 몰골이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2. 천재지변 따위로 졸지에 헐벗게 된 많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전쟁으로 그 도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떼거지가 되었다.

‘떼거지’는 ‘떼와 ‘거지’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다. 앞의 ‘떼’에 성격이 있고, 뒤의 ‘거지’에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떼거리’는 ‘떼’에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거리’가 붙었다. 이는 파생어다. ‘패거리/짓거리’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단어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발전시켜 보면, ‘-거리’는 하루 이상의 기간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동안’의 뜻을 가질 때도 있다. ‘달거리’가 이런 경우인데, 이때도 파생어이다. 그러나 ‘거리’가 내용이 될 만한 재료라는 뜻의 의존명사로 쓰인다. ‘걱정거리/국거리/길거리/반찬거리/비웃음거리/일거리/이야깃거리’다. 이는 명사와 명사가 결합한 합성어다. 부당한 요구나 청을 들어달라고 고집하는 경우 ‘떼를 쓴다. 데를 부리다.’라고 한다. 이 말에 ‘떼거지 부린다.’라고 하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이다. ‘떼거지꾼’이라는 단어는 있다. 이는 ‘떼쟁이(떼를 잘 쓰는 사람)’의 제주 방언이다. 따라서 앞에 거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떼거지’와는 전혀 다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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