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대한 단상(斷想)

2012.05.09 18:08:00

8일 어버이날 아침. 몇 명의 선생님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출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1세기 효(孝) 사상이 갈수록 퇴색해짐에 어버이 날 카네이션을 단 내 또래의 선생님을 보면 왠지 어색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효(孝)의 근본사상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카네이션을 달지 않은 내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실장의 선창으로 어머니 은혜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가 내 자식 또래의 나이인지라 아이들이 불러주는 노래에 기분이 좋았다. 노래가 끝난 뒤, 한 아이가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주었다. 그리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사랑의 하트 모양을 만들며 ‘사랑해요’라는 말을 던지며 자리로 돌아갔다.

문득, 어버이날을 즈음하여 우리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 주었거나 꽃을 선물한 사람이 몇 명인지 알아보았다. 생각보다 적은 아이들이 부모님께 꽃 선물을 하였다. 아마도 그건, 월요일 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난 뒤 꽃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 그런 것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다음으로 가격과 관계없이 부모님께 작은 선물을 한 아이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약 십 여 명의 아이들이 용돈을 아껴 부모님께 선물하였다고 하였다. 선물로 어머니에게는 화장품, 아버지에게는 넥타이가 제일 많았으며 휴대폰 케이스와 음악 CD를 선물한 아이들도 있었다. 한 아이는 최신 인기 있는 휴대폰 벨소리를 선물했다며 아이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냈다. 선물을 미리 준비 못 한 아이들은 하굣길에 준비하여 주겠다며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비용이 부담되는 아이들에게 귀가 전까지 마음의 편지라도 써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고 하였다.

휴대폰을 회수하기 전에 먼저 부모님께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게 했다. 그리고 10분 이내에 부모님으로부터 제일 먼저 답장을 받는 아이 2명에게 작은 선물을 주기로 하였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며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답장 내용이 궁금하여 읽게 하였다.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아빠에게도 문자했니?”

발을 동동 구르며 부모님으로부터 답장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맨 뒤에 앉아있던 한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왔어요. 선생님!”

답장 내용을 읽어보라는 내 주문에 그 아이는 부끄럽다며 읽기를 망설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휴대폰을 낚아채며 대신해서 읽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장난치지 마. 정신 차리고 공부나 열심히 해. 그게 효도야. 알았어?”

메시지의 내용을 듣고 난 뒤, 부모님과 아이들의 대화에서 잠시나마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평소 부모와 아이들의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설령 대화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이야기일 뿐 그다지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록 어버이날 아이들과 함께한 깜짝 이벤트였지만 부모님 대부분은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메시지에 감동을 한 것 같았으며 아이들 또한 부모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여건만 된다면, 이런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이들 모두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과 효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없었을 뿐. 그 모든 것은, 대한민국의 치열한 입시제도가 불러온 탓이 아닌가 싶었다.

교무실로 돌아오자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버이날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효도할 시간이 없었는데 조금이나마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을 갖게 하자는 의도에서 단축수업을 한다는 학교장의 지시사항을 옆자리에 앉아있던 최 선생이 전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버이날 부모님께 소홀히 하여 걱정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잘된 일이었다.

아이들이 일찍 귀가하여 부모님께 많은 효도를 하리라고는 기대하지는 않는다. 바라건대, 이번 어버이날에는 의사소통의 부재로 부모와 자식 간 쌓인 벽을 조금이나마 허물 기회를 갖게 되길 기대해 본다. 최소한 부모는 내 자식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고 적어도 자식은 내 부모가 나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길 바란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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