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학생정서 선별검사 결과를 보고 놀란 아내

2012.06.18 14:09:00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자 왠지 모르게 집안 분위기가 썰렁했다. 평소 가방을 받아주던 아내도 외출한 듯 보이지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조용히 안방 문을 열자, 외출한 줄만 알았던 아내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나의 인기척에 아내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내의 돌발 행동에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옷을 갈아입고 난 뒤, 씻는 것을 잠깐 뒤로 미루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아내는 말없이 하고 있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여보, 도대체 무슨 일이요?”
“그냥요. 마음이 심란해서요.”

지금까지 함께하면서 아내가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내는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아내의 손을 잡고 거실로 데리고 나오려고 하자 아내는 내 손을 뿌리치며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하얀 봉투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봉투의 겉표지에는 발신인이 ○○○○고등학교로 적혀져 있었다. 내심 지난달에 치른 중간고사 성적표를 학교에서 보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성적 결과에 실망하여 아내의 기분이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봉투 안의 내용물을 읽기 전에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여보, 괜찮아요. 아직 기말고사가 있으니 그때 만회하면 돼요.”
“아이가 그 정도로 될 때까지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느닷없는 아내의 원성에 잠시나마 말문이 막혔다. 아내를 화나게 한 그 화근이 봉투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내용물을 꺼냈다. 그 내용물은 다름 아닌 지난달에 치른 학생 정서행동발달 선별검사에 따른 결과표였다.

“여보, 이 결과표가 뭐 어째서요?”
“당신 눈에는 안보이세요? ○○이가 자살을 한번 시도했다는데…”

순간 자살이라는 말에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확인 결과, 모든 항목에 대한 결과는 정상이었으나 자살 관련 항목이 2차 검진 대상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자살 1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자살 시도 1회로 잘못 알았던 것이었다.

“여보, 이것은 그런 의미가 아녜요.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요.”



아내는 신중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이 미안한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녀석이 자살과 관련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한지 아내는 계속해서 내 얼굴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결과표를 보고 놀라서 밥 한 끼 먹지 않았다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학생정서·행동발달 선별검사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많은 아이가 2차 검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는다며 아내를 안심시켜주었다.



무엇보다 이 검사가 중간고사 이후 시행되었기에 시험을 못 본 녀석이 순간 낙담하여 그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녀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제야 아내는 마음이 놓였는지 부엌으로 가 저녁을 준비하였다.

사실 연일 불거져 나오는 청소년 자살 보도가 나올 때마다 우리 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녀석이 자살과 관련한 생각이 있다는 사실에 아내는 자못 놀라는 눈치였다. 이 결과표가 확진검사가 아니라 선별검사임에도 아내는 표의 결과만 보고 지레짐작 겁을 먹은 듯했다.

지금까지 아내는 아침마다 현관문까지 따라 나와 고3인 아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면 나는 행여 아내가 멋쩍어할까 함께 파이팅을 외쳤지만 진작 고3인 아들 녀석은 엄마의 그런 모습이 창피해서인지 매번 아내의 파이팅을 무시하곤 했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만 해도 아쉬울 때마다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었는데. 고3이라 신경이 많이 예민한 탓도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녀석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오래된 것 같다. 매일 녀석을 학교에 태워주면서도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녀석에게 필요한 말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녀석 또한 뒤 좌석에 앉아 책보는 데만 열중하였다.

주말과 휴일도 잊은 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녀석을 보며 부모로서 안타까워 한 적은 있었으나 녀석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는 몰랐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난 녀석에게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라고 권유한 불도저 아빠가 아니었나 싶다. 녀석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나에게도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 순간에도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막내 녀석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아들아! 대학은 인생의 작은 목표는 되겠지만 네 목숨을 걸 만큼 인생의 최대목표는 아니란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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