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밤 줍는 낭만 남겨두세요"

2012.09.09 10:28:00

우리 학교 율전중학교다. 이 고장이 역사적으로 워낙 밤나무가 많아 학교 이름도 밤밭 이름을 땄다. 교목도 밤나무다. 그래서 교정에 밤나무 몇 그루가 있다. 등하교길에 학생들이 그 나무를 바라다 보면서 지나가고 울타리쪽에도 커다란 밤나무 두 그루가 있다.

교장은 이 밤나무 보는 즐거움이 크다. 밤꽃이 피면 디카로 접사촬영하고 밤송이를 가까이 넣어 학교전경을 촬영해 홈페이지에 탑재하고. 최근엔 밤송이가 떡 벌어진 모습을 촬영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알려준다. 물론 이 사진 홈피에도 있다.

그런데 헉, 월요일 출근하니 밤나무가 휑하다. 매달렸던 그 많던 밤송이가 없어졌다. 외부인 손을 탄 것이다. 왜 그리 기분이 착 가라앉는지? 마치 자식을 잃은 것 같다. 작년엔 교내 순시 중 밤알 한 두 개 줍는 즐거움도 있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우리 학교. 교화는 매화다. 작년 부임하여 들은 이야기 하나. 열매가 열렸는데 동네에 매화를 사랑(?)하는 분이 몽땅 가져가 내년에는 손타기 전에 학교에서 따 두어야겠다고. 그래서인가 올핸 주무관이 미리 손을 썼다. 그런데 밤은? 어느 부지런한 욕심 많은 사람이 먼저 손을 댔다.

지역주민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학교에 밤송이 보는, 밤 줍는 낭만을 남겨 달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밤송이 벌어진 것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게 하고 또 떨어진 밤송이에서 밤알을 꺼내면서 손에 가시가 찔리는 경험도 해보고. 날밤을 까서 먹는 즐거움도 주고. 이게 다 아름다운 소년기의 추억이다.

필자의 중학교 시절, 교정에 질경이가 그렇게 많았다. 점심시간 친구들과 함께 나물을 뜯어 어머니를 갖다드린 적이 있다. 어떤 나물이 먹기 좋은 것인지도 모르고 아마도 억센 질경이도 뜯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바쁘신 가운데 나물을 해주셨다.그런 작은 추억이 남아 있다.

교정의 유실수만이 아니라 모든 수목, 심지어 이름 모를 야생화, 곤충까지도 교육적 환경으로 보고 있다.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게 정서적으로 큰 역할을 한다. 이것을 어른들이 지켜주자는 것이다. 매실과 밤에 대한 탐욕을 교육을 위해 참자는 것이다.

오늘도 필자는 교정을 돌아보다가 울타리 밤나무 밑에서 밤송이 하나를 발견했다. 발로 눌러 알맹이 세 알을 꺼냈다. 교장실 책상위에 놓고 그것을 바라본다. 마음이 순화된다. 이런 것을 우리 학생들도 체험하게 했으면 한다. 도둑 맞은 밤을 하도 아쉬워 하니 주무관 한 분이 당직자가 모은 것이라며 밤을 한 봉투 건네준다. 이 밤을 삶아 우리 교직원(학생 대표)들이 맛보았으면 한다.

아, 밤송이가 떨어진 휑하니 빈 밤나무. 내 마음도 허전하다. 그렇지만 내년을 기약해야겠다. 내년엔 교육적 의미를 살린 경구를 내걸어 밤송이를 보호하고 낭만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이런 문구는 어떤가?

"학생들이 밤송이 보는 낭만, 밤 줍는 낭만 즐길 수 있게 밤송이 억지로 따지 마세요!"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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