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불신교육, 정말 하기 싫은데…

2012.11.04 18:05:00

우리 학교 교장실, 관내 파출소장이 수시로 방문한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업무 협조 차원에서다. 학교가 지역 치안을 맡고 있는 파출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학생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하는 것, 바람직한 일이다.

얼마 전 일이다. 파출소장이 학교에서 학생들 교육 좀 시켜달라고 부탁한다. 무슨 일? 자초지종은 이렇다. 지역에서 휴대폰 관련 신고가 두 건 들어 왔는데 모두 학생들 관련이다. 어른이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학생! 내 휴대폰 밧데리가 떨어졌는데 잠시 전화 좀 빌려줄 수 있어?" 순진한 우리 학생들은 무심코 빌려 준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전화를 넘겨 받은 어른이 통화를 하면서 이동한다. 학생은 통화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그 사람을 쫒아간다. 그 시간이 길어진다. 휴대폰 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뺏긴 것이다. 그 사람은 휴대폰을 빌린 것이 아니라 강탈한 것이다. 나쁜 사람의 소행이다.

파출소장 왈, "신고가 들어와서 범인을 잡으려 하니 CCTV 사각 지대여서 아직 잡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런 건 수가 두 건이어서 경찰도 해결할 수 없으니 학생들에게 어른이 휴대전화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알려준다. 이것을 교육시켜달라는 것이다.

이른 바 사람에 대한 불신(不信)교육이다. 학교교육에서 사람을 믿고 어른을 믿고 사회를 믿으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사람을 믿고 행동하다 보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니 사람을, 사회를 함부로 믿을 수 없다. 교육에서 믿음과 신뢰를 가르쳐야 하는데 '사람을 믿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

함께 온 경찰관이 최근 사례 하나를 더 든다. 사람을 믿는, 더 순진하고 더 착한 학생이 당했다. 어른이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하자 휴대전화가 없다고 답했다. 나쁜 어른 왈, "그러면 네 집에 가서 전화해도 되겠니?" 학생은 친절하게 집까지 안내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전화하면서 집안 사정 살피고 학생의 눈을 피해 절도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20대 중반의 범인, 저금통 들고 나와 아파트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는 것이다. 이러니 사람을 믿으라고 가르칠 수 없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한 유괴나 성폭행 등의 범죄에 벗어나기 위해 '모르는 사람이 유혹하면 쫒아가지 마라!'가 있다. 가정에서 부모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교육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유괴나 성폭행은 낯선 사람도 하지만 대개 아는 사람들이, 평소 믿는 사람들이 저지른다고 한다. 그러니 '아는 사람을 더 조심해라!'고 가르쳐야 할 형편이다.

요즘의 교육, 학교교육만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교육이 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초록등을 보고 건너야 한다고 가르친 학교교육은 붉은색 신호등에 부모손에 이끌려 건너는 순간 끝장나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불신교육, 정말 하기 싫다. 그러나 세상이 어리숙하게 살지 말라고 가르쳐 준다.  학생들도 찬바람 부는 사회가 어떤 세상인 줄 똑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범죄로부터 당하지 않는다.

다음은 담당 부장이 보낸 메신저다. "요즈음 낮선 어른들이 길에서 핸드폰을 좀 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빼앗는 것입니다. 절대 빌려주지 말라고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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