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수목표찰 달기

2012.11.12 09:48:00

교장이 아파트 동대표 회장이면 아파트가 교육적 냄새가 난다. 바로 필자가 사는 아파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 직업은 못 속인다고 하던가? 학교에 수목 표찰을 붙이더니 이번엔 아파트 단지 내 수목에도 표찰을 붙였다. 왜? 품격 높고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서다.

수목 표찰, 안 붙여도 그만이다. 나무 이름 몰라도 그만이다. 그러나 필자의 철학은 그게 아니다. 나무사랑은 나무 이름 알기부터 시작된다. 상대 이름을 안다는 것은 관심의 시작이다. 이름을 알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나무의 특성도 관찰하고 애정을 쏟게 된다. 자연에 사랑을 갖는다는 것, 인성이 올바르게 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8동이다. 676세대가 거주한다. 우리 학교보다는 넓이가 작지만 나무의 종류와 수량이 더 많다. 우리 학교 수목 표찰은 25개다. 조경업자가 조사한 30여개 표찰을 줄인 것이다. 우리 아파트 조사한 것을 보니 총175개다. 동별 앞, 뒤, 옆으로 구분하여 수종 당 한개의 표찰을 붙였을 경우다.




표찰이 너무 많으면 보기에 흉하다. 교육적 요소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175개를 75개로 줄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나무이름은 제외 하였고 보기 드문 나무에 표찰을 달기로 하였다. 이 선정 작업에는 평소 나무에 관심이 있고 아파트를 자주 둘러본 경험이 소중하게 작용하였다.

여기서 특이한 사실 하나. 우리 학교 수목 표찰 달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시기가 9월이라서 그런지 나무이름과 표찰이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아파트의 경우, 시행착오가 발생했다. 조경업자도 헷갈리는 나무가 있나보다. 매화나무와 살구나무다. 우리 이파트엔 매화나무가 없다. 그리고 산수유와 산딸나무, 그리고 이팝나무 구별하기. 사전 조율을 거쳤지만 산딸나무 4개와 이팝나무 3개 표찰은 나무가 없어 붙이지 못했다.




비 오는 일요일 아침, 핸드폰이 울린다. 조경업자가 가지고 온 수목표찰을 확인하고 나무에 명찰을 붙인다. 쉽게 작업이 끝날 것 같은데 오래 걸린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다. 마무리 확인 단계다. 조경업자와 함께 단지를 돌면서 이상유무를 확인한다. 스트로브 잣나무에 리기다소나무 표찰이 붙어 바로 잡았다. 이래서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비 오는 날 작업을 하니,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이 유심히 바라본다. 어느 주민은 필자에게 목례를 하며 미소를 보낸다. 고마운 분이다. 동대표 활동이나 쉬는 날 이런 활동은 시간외 근무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봉사다. 본인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아침을 먹지 못하였는데 배고픈 줄 모르고 12시 경에 식사를 하였다.

조경업자로부터 배운 것도 있다. 꽃사과와 아그배나무 구별법. 나무 열매는 비슷하지만 꽃사과는 아그배나무보다 열매가 크다. 꽃사과 열매는 어른 엄지 손가락 크기로 작은 사과 모양이다. 조경업자는 말한다. 관련 자격증은 있지만 활용한 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거린다고. 알고 있는 지식, 재충전하고 써 먹어야 진정 내 것이 된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 이제 출퇴근 길에서 아파트를 산책하면서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 "아, 한 여름에 노란꽃이 피는 저 나무가 모감주나무였구나! 그런데 한 겨울에 진한 고동색의 씨앗주머니가 매달려 있네!" 더 관심 있는 분들은 표찰에 붙어있는 학명, 과, 특성, 용도까지 읽어보면서 나무에 대한 지식을 넓히리라.

교육자인 것이 이래서 좋다. 세상의 다방면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사물에 대해 넓게 알아야 하는 직업이다.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알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찌기 간파하였다. 인생의 사는 목적은 배움에 있다고,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은 한 평생 배우다가 가는 것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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