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잘 못했어요. 용서해 주셔요. 제발 학교에 가게 저를 좀 내보내 주세요.”
창고 안에서 단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 울며 호소를 합니다. 그러나 유 사장은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식당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불러 마당 청소를 시키고 식당 안과 홀의 바닥을 닦게 하고 진입로에서부터 혹시 부실 한 곳은 없는지 일일이 살핍니다.
“얘, 아범아, 저 녀석 학교에 안 보낼 거야. 어서 보내 줘야지?”
할머니가 나서셔서 아버지를 달래 보십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못 들은 척 집 앞의 골목길과 진입로의 주변이 더럽지 않나 살피고 빗자루를 들어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합니다. 누가 보아도 깨끗하게 비질이 되어서 들어오면서 상쾌한 기분으로 들어 올 수 있게 만들라는 것이 늘 집안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입니다.
지금 창고 같은 커다란 방에는 이 집의 3대 독자 외아들이 갇혀 있습니다. 아버지 유 사장은 일부러 아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어서 자신의 잘 못을 크게 뉘우치게 해주려는 계획입니다. 아무리 이런 벌을 주는 자신이지만 그래도 자식이 더구나 오직 하나 뿐인 자식이 저렇게 갇혀 있는데 기분이 좋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귀여울수록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할 줄 알고 분명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지난번의 잘 못을 용서해 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주 엄하게 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널 잘 못 가르친 것이야. 이렇게 우리 집이 잘 살게 되고 지 금 제법 돈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난 네가 쓸 곳에 돈을 쓰는 것은 용서를 해, 하지만 그렇게 함부로 돈을 가져다 제 멋대로 쓰는 버릇은 용서를 할 수 없어. 네가 너의 잘 못을 깨닫고 다시 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생기도록 하지 않으면 금 방 또 그러게 될 거 야. 그러니 아주 못된 버릇은 뿌리를 뽑아야 돼.”
아버지는 아들 성호를 불러서 이렇게 꾸중을 한 다음에 창고에 들어가서 자기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반성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가방을 뒤져보니 아이가 부모 몰래 돈을 가지고 다니면서 별로 쓸모도 없는 이것저것을 함부로 사 모으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부모의 눈을 속이고 돈을 함부로 쓰는 버릇을 어려서 고치지 못하면 평생이 고달플 것이라는 것이 유 사장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자신의 잘 못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고 따끔한 벌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일부러 학교에 늦도록 해서 학교에서 늦게 왔다고 꾸중도 들어보아야 하고 자기 잘못으로 일어난 여러 가지가 불편하고 집안이 편하지 않으며, 학교에 가는 것까지 제 시간에 가지 못해서 꾸중을 들어서 자기 잘 못을 깨닫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유 사장이 지금 자기 아들 성호만큼 할 적에는 이 고장은 아주 사골 중에 산골로서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시내를 따라 가느다란 오솔길이 나 있는 것밖에는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살 것 같지 않던 마을이었습니다. 산골길을 3km나 걸어 들어오면 이제 그 산골길에서도 가장 험한 돌고개 길이 나옵니다. 여기 돌고개 마을에는 모두 일곱 집이 살았는데, 그 중에서 유 사장네가 가장 들머리에 있고, 다음으로 김사장네이고 다시 한 고개를 넘어서 다섯 집이 있었는데, 이 마을은 완전히 산 속에서 하늘만 바라보이는 산골 중에 산골입니다. 이 유 사장네는 이 가난한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하여 유 사장의 할아버지가 이웃 마을에 머슴살이를 해서 일년에 열 가마 남짓한 쌀을 사경을 받으면 이것으로 유 사장과 어머니가 먹고살면서 모든 것을 다 써야 하였습니다.
유 사장의 아버지는 6.25 전쟁통에 전쟁터에서 죽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놀라 너무 화를 끓인 탓에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집안에 식구란 어머니와 할아버지만 남아서 유 사장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아이를 잘 기르도록 돈을 벌어다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젊은 아낙이 혼자 있으니 아무리 며느리라고 하지만 집안에 같이 살기가 여간 쑥스럽고 처신하기가 곤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하면서 사경이나 가져다주고 한 달에 한 두 번 들려서 옷이나 가져다 입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 사장의 어린 시절에 집안 형편이라는 것은 말을 할 수가 없이 가난하여 단 혼자뿐인 유 사장에게 운동화는 커녕 검정 통고무신도 자주 사줄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할아버지가 온 몸을 다 바쳐 고생해서 벌어오신 사경을 다 먹고 쓰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지 이것을 저축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더욱 힘이드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남의 집 일을 하고 산비탈을 파서 곡식이라고 심어 보았습니다. 산골이라서 무엇 하나 잘 자라 주지 않은 땅이었지만, 콩과 팥을 심고 도랑을 지어 고구마를 심었고, 그 사이사이에 조와 수수를 심어서 그것이라도 먹고 살아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산골에서 비료도 주지 않고 더구나 산짐승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노루며 고라니 산토끼들이 곡식을 뜯어 먹고 멧돼지는 파 엎어서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산 꿩은 어찌 그리도 잘 아는지 고구마 같은 것이 조금 알이 들라치면 꼭꼭 파서 상처를 내어놓고 줄기를 잘라 놓았습니다. 그러니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 보았자 한 두 달의 식량도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봄엔 산나물을 뜯어다가 죽을 쑤어 먹고, 가을엔 산 열매를 따 모아서 요기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애야, 너 그렇게 해 보았자 먹을 것이 얼마나 생기더냐. 고생하지 말고 그냥 집에 있 거라. 너 너무 힘들어서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떡허냐?”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말렸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무엇이든지 해보려고 쉴새 없이 노력을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자란 유 사장은 아직도 늙으신 어머니가 자신의 사업을 돕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쉬지도 않고 애쓰시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어린 시절 너무 애쓰시는 어머니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한 유 사장은 어느 날 어머니가 사 주신 통고무신을 집에서 신고 나섰지만, 울퉁불퉁한 냇가 길을 걷자니 어찌나 돌이 많은지 고무신이 남아 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안 보이는 구비를 돌아서면 이곳에서부터는 고무신을 벗어서 손에 들고 맨발로 뛰었습니다. 흙바닥도 아닌 돌밭을 맨발로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발이 조금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또 동네 아이들이 모두 다 가난하여서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남부끄러울 것도 없었습니다. 맨발로 달려 가다가 학교가 보이는 곳에 이르면 얼른 발을 씻고 신을 신었습니다. 태연하게 학교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아무도 맨발로 달려온 아이들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자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아들 녀석은 너무 편하고 너무 어린 짓만 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자가용으로 학교 앞까지 실어다 주면 운동장까지 들어가지 않는다고 실랑입니다. 다들 운동장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약속이 되어 있으니까 아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공부하는 녀석이 공부에 열심이지 않고 장난감이나 사 모으고 딴 짓을 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더구나 부모 몰래 돈을 가져다 쓰기 시작한 것은 용서를 할 수 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자라던 시절에 살던 것에 비하여 너무 호화롭고 풍요로움 속에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저렇게 자라면 나중에 돈을 허피 쓰는 낭비벽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하면서 걱정을 해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돈을 가져다가 낭비를 하기 시작한 것을 보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지금 살고 있는 이 집터를 사실 때에 어찌 했던가? 유 사장이 아직 어리고 어머니가 홀로 키우는 것을 보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서 먹여 살리는데 도무지 그래 가지고는 손주 녀석에게 무엇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면장님, 내가 저 어린 손자 녀석을 위해 땅 한 뙤기라도 마련해 주고 싶지만 어디 손에 쥔 것이 없잖소. 어떻게 좀 도와주시오. 지금 집을 지어 살고 있는 땅이라도 내 땅으로 만들어 남겨 주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할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을 받은 면장님은 그 땅이 국유지이고 요즘에 별로 비싸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도와주는 방법을 써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단 그 땅을 산 것으로 매매계약서를 만들고, 땅 값은 2년 동안 자기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주면 그 사경을 갚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면장님이 돈을 내서 사 주고 할아버지가 2년 동안 면장님 집의 일을 맡아 하는 머슴을 살기로 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하늘을 날아갈 듯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2년 동안 열심히 면장 댁의 일을 하였습니다. 면장님은 그런 할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밭을 하나 더 불하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할아버지가 남겨준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성호만큼 한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산과 들로 돌아다니면서 나물을 캐고 어머니의 나물 보따리를 들어다 드리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은 어머니의 나물 보따리를 들 수가 없어서 둘러매었다가 넘어지면서 뒹굴러서 몇 바퀴 구르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는 정말 이제 죽었구나 싶을 만큼 위험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를 위해서 끝까지 따라 다니면서 집안 일을 도왔었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뿐인 아들 녀석이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딴 짓이나 하는 것을 보니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입장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거의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좀 사려고 해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두 안 된다고만 하니 아이들에게 뒤진 것 같고 자기만 못난이 같아서 기어이 갖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이 자라던 시절의 일을 이야기 하셔서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고 더구나 지금 우리 집은 그 때처럼 가난뱅이도 아니고 동네에서는 제법 부자 소리를 듣는 집입니다. 그런데 자기 반 아이들이 다 가지고 노는 이 딴 오락기 하나를 사주지 않으니 뿔이 나고 그래서 어떻게든지 가져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유 사장은 자기가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당한 일들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가난하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야 할 5학년이 되어서도 좀 채로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너무 늦게까지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이 굶는 것이 안타까워서 꼭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점심을 굶으면 한 창 자라야 할 너희들이 자라지 못하고,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도 몸이 부실하여 일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야. 내일은 꼭 도 시락을 싸 가지고 오도록 해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유 사장은 어머니께 그대로 말씀을 드려서 정말 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가지고 학교에 갔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기 위해 쌀을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보나마나 잡곡밥을 쌌을 것입니다. 아침에도 좁쌀과 수수쌀이 조금씩 들어 있는 죽을 먹었는데 무슨 밥을 쌌을 리가 없습니다.
성호는 학교 가는 길에 집에서 한 참을 나오다가 다른 아이들이 보이지 않은 산기슭으로 올라가 살며시 도시락을 열어 보았습니다. 도시락에는 잡곡밥과 고구마 두 개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그 도시락이 먹고 싶은지 공부시간에도 손은 도시락에만 가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은 도시락을 만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성호는 얼른 손을 꺼내어 책상 위의 공책에 올려놓기를 몇 번도 더 하였습니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지 않은 날은 배가 고파 오는 것이 싫어서 점심시간이 되는 것이 가장 싫고, 가장 싫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넷째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이 대여섯 명이나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무엇을 싸 가지고 왔을까 관심이 많았습니다.
“야 ! 우리 분단에서 성호가 오늘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으니까 우리 성호 도시락 구경 좀 하자.”
반에서도 개구쟁이 노릇을 하는 학교 옆 동네 경수였습니다. 경수는 날마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으며, 계란부침이나 멸치 반찬 등으로 제법 맛있는 반찬까지 가지고 다니는 아이입니다. 경수는 얼른 도시락을 펴놓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쭈볏쭈볏 하는 성호를 보면서 아이들은 더욱 보고 싶어했습니다. 경수는 아예 성호의 도시락을 빼앗아 책상 위에 펼쳐 놓으려고 하였습니다. 성호는 도시락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버티었습니다. 이 때 뒤에서 명길이가 성호를 붙잡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한 바탕 소란을 피운 뒤에 기어이 성호의 도시락을 책상 위에 펼쳐 놓았습니다.
“야 ! 이게 뭔 도시락이냐? 고구마 두 개,”하면서 경수가 그 중에서 한 개를 손으로 덜렁 집어서 입에 넣어 버렸습니다. 산골 고구마란 큰 것이 없이 계란 만큼씩 한 것이니까 한 입에 달랑 들어가 버렸습니다. 성호가 화가 나서 도시락을 붙잡으려 하니까 경수가 얼른 도시락을 빼앗아 들고 아이들을 향해서
“야 ! 이거 봐라. 성호 도시락은 잡곡밥 반에다가 고구마 두 개 뿐이다.”하고 좌우를 향해서 휘돌렸습니다.
“야 ! 그게 어디 두 개냐 ? 한 개뿐인데?”
익살맞은 명진이가 소리치자 경수는 얼른 입을 가리키며
“한 개는 여기 !”
말을 하는 순간에 성호가 붙잡고 있는 명길이의 옆구리를 팔굼치로 쳐서 떼어놓고서 돌진하였습니다.
“와 장창!”
소리와 함께 경수와 성호가 책상과 함께 쓰러지고 도시락은 넘어지면서 쏟아져 교실 바닥에 팽개쳐 지고 말았습니다. 성호는 이제 도시락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학급 아이들에게 모두 보여준 도시락은 이제 먹을 수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넘어진 경수를 그 대로 깔고 앉아서 마구 주먹을 날렸습니다. 어디를 얼만큼이나 때렸는지 몇 대나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마구 짓이겨 버리고 싶었습니다. 늘 잘난 척하는 경수가 밉기도 하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야 ! 선호야, 그만해!”
아이들이 엉겨 붙어서 성호를 붙잡고 말렸습니다. 성호는 화가 나서 마구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맞았는지
“아야, 말리는 사람도 때려 ?”하고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아이들이 말리기 위해 붙잡은 상태에서 성호는 몇 대의 주먹을 맞았는지 코피가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소동이 나자 아이들이 교무실로 달려갔고, 선생님이 교실로 달려 오셔서 소리를 치시고 나서야 겨우 교실을 조용해 졌습니다. 이렇게 야단이 났지만 집에 가서는 그런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난 생 처음 싸간 도시락을 먹지도 못하고 싸움만 하여 코피를 쏟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어서 꾹꾹 참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난은 계속 되어서 어려운 형편에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고서는 고등학교를 갈 형편이 못되어서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산을 개간하여 농토를 넓혔지만, 남의 땅이라서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라에서 개간에 대해 상당히 권장을 하면서 이미 개간을 하여 일 군 논밭을 개인 앞으로 이전을 해 주는 특별법이 생겨서 그 동안에 개간하였던 땅들을 사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열심히 일한 덕분에 먹고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만큼은 되었습니다. 젊음을 바쳐 열심히 일을 하니 조금씩 재산이 모여서 부근의 땅을 조금 더 사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이럴 때에 이 고장이 국민관광단지로 지정이 되면서 땅값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아 올랐고, 어렵게 살던 마을 사람들이 땅을 팔고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 사장은 자신의 땅은 할아버지의 피와 땀을 마련해준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이 땅을 팔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한 해가 지나기 전에 동네는 어느 새 한 두 채의 음식점이 생기고 날마다 모여드는 사람들로 음식점은 초만원을 이루어 한 달에 몇 천 만원을 벌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습니다.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땅을 팔라고 졸라대었습니다. 그러나 꼼짝을 하지 않은 유 사장에게 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 올라 이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유 사장은 할아버지의 유산을 남에게 팔 수 없다고 버티고 있으니, 이제는 집 부근에 모두 음식점으로 변하여 가고 날마다 돈을 버는 재미에 온 동네는 노랫소리 흥겨운 놀이 마당이 되어 갔습니다. 노랫소리가 클수록, 오래 들리고 사람들이 들끓을수록 마을은 날마다 음식집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더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집에서는 이제 유 사장에게 농사를 지을 것이 아니라 음식집을 하나 내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음식집을 만드는데 필요한 돈이 적잖이 드는데 쉽게 일을 벌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을 입구에 작은 밭을 팔아서 그 돈으로 음식집을 마련하였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음식집은 번창하였고 널찍한 터에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해두었으니 더 많은 손님이 찾아 들어서 정말 이젠 사람이 너무 찾아와 걱정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법 돈도 벌었고, 동네에서는 행세 할 만큼은 되었습니다.
다만 마을 입구에 작은 밭을 팔아서 자기 집을 짓고 음식점을 만들었지만, 할아버지가 주신 유산이라는 것 때문에 그걸 다시 사서 찾기 전에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할아버지께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유 사장은 자기의 하나 뿐이 아들 성호에게도 이런 할아버지의 은혜를 반드시 갚기 위해 저 마을 앞의 [동구 밖 집]을 사기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열 번도 더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성호가 이런 사고를 친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르쳐 온 것이 헛것이었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생각한 유 사장은 한없이 성호가 미웠습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자기만큼이라도 생각을 하고 재산을 지켜 주기를 바랐는데 이게 어디 되겠는가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수 백 억을 부를 만큼 큰 재산을 가진 유 사장이 어린 아들에게 혹독하게 가르치는 것은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성호가 돈의 귀중함을 모르거나, 돈을 함부로 쓰는 버릇을 가질까 봐 걱정을 하고 그것을 바르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너무 어렵게 살아온 자신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임금이나 되는 것 같고 갑부가 따로 없다 싶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린 성호가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면서 어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걱정거리 인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운 시절을 겪어보지 못하면 어려운 사람의 일을 알지 못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가르침을 일찍부터 몸에 익혀 주고 싶은 유 사장의 마음은 가장 근본적인 자식 사랑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옛부터 자식에게 천만금을 물려주어도 지킬 능력이 없으면 하루 아침거리 밖에 안 된다. 고 하지 않았던가?
유 사장은 아침을 먹고 성호가 학교에 갈 시간이 다 되어서야 성호를 나오게 하였습니다. 아침을 먹이고 차에 태워서 학교로 가면서 “너 어떠니? 지금 마음이 무척 괴롭지? 아버지도 괴롭다. 오직 하나 뿐인 자식을 그 렇게 가두어 놓고 마음이 편할 부모가 있는 줄 아니? 난 너를 믿었는데, 네가 부모 를 속이고 딴 짓을 한데 화가 난 거야. 오늘 공부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아 버지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저기 저 땅을 되찾아야 한다고 했지?”
유 사장은 [동구 밖 집]을 지나치면서 성호에게 다시 못을 박았습니다.“예, 아버지, 할아버지가 사 주신 땅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늘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 난 저 땅을 팔아서 지금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아직도 저 당 만큼을 벌지 못했 다는 생각이야. 적어도 저 땅을 되찾고 나서 남은 것이 번 돈이라고 생각하거든....”
날마다 지나는 길에도 유 사장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집 앞을 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문 앞에 성호를 내려놓은 유 사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되돌아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벌써 첫째 시간이 시작되었을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