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고민이 무엇인지 아세요?”

2013.09.12 22:09:00

아이들과의 상담 빠를수록 좋다

3월초. 학급에서 유난히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점심시간 식당에서 가끔 마주치는 그아이는 늘 혼자였다. 그리고 수업시간 선생님의 질문에도 늘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던 중, 3월 어느 날 지원자로부터 상담 신청을 받았다. 

교무실로 찾아 온 지원자의 얼굴은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 아이는 뜬금없이 학교생활이 힘들다며 전학을 보낼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에 대한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답변을 회피하였다. 나중에 지원자의 친구를 통해 안 사실이었지만, 중학교 때 지원자를 괴롭혔던 친구가 우리 반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의 아픈 추억 때문에 도저히 학교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선 재발 방지 차원에서 가해 학생을 불러 일침을 주었고, 그 아이에게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약자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기자가 되어볼 것을 제안했고 나 또한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 내 제안에 그 아이는 입학하여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이후, 그 아이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책상 앞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그 아이를 자주 목격하곤 하였다. 그리고 교내 NIE 동아리에 가입하여 신문스크랩을 제작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강원일보 주최 NIE 대회에 참가하여 교육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조회시간, 가끔 아이들에게 했던 지난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곤혹을 치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를 구해준 수호천사가 바로 그 아이였다. 그 아이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조회시간 내가 이야기했던 내용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중에 일어난 사건내지 행사 모두를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기록해 두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날짜별로 내가 했던 이야기를 찾아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교육신문’과 ‘아하경제’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쓴 기사를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하였다.

우연히 그 아이가 작성한 신문스크랩을 볼 기회가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작성한 그 아이의 기사 평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그 아이는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달아놓은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평소 방송모니터링을 하면서 그 아이가 터득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수업시간 지원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룹을 나눠 주어진 시간 내 긴 영어지문을 읽고 줄거리를 빨리 파악하는 게임에서 지원자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지원자가 속한 조가 항상 1등을 하였다. 우리 학급의 아이들 중, 신문에서 배운 지식을 가장 잘 활용하는 학생이 그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모의고사 성적을 본 뒤였다. 그 아이는 배우지도 않는 사회탐구과목에서 1등급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리고 그 비법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물어보면 그 아이는 모든 배경지식은 신문에서 나온 것이라며 신문 읽기를 주문하였다.

중학교 때 집단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 그 아이는 본인과 같은 친구가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기적인 상담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일주일마다 조를 짜 ‘하룻밤 친구 재워주기 운동’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친구끼리 친해질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함께 자는 거라며 이 운동을 허락해주기를 원했다.

지원자의 청(請)이 워낙 완강하여 모든 부모님께 사전 양해를 구한 뒤, 딱 한 달만 추진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친하지 않는 아이들끼리 같은 조로 편성해서 하룻밤을 묵게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 운동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 아이의 생각이 맞은 것이었다. 입시로 자기 몫 챙기기에만 혈안이었던 아이들이 이제 주위 친구를 챙길 줄 아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 학급은 다른 어떤 반보다 단합이 잘되었으며 교내 왕따 없는 학급으로 인정받았다.

그간 주눅이 들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아이가 상담이후, 모든 고민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의 잠재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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