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청주산누리산악회원들과 '청정자연, 녹색쉼표'를 자랑하는 단양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이번 산행지였던 수리봉과 석화봉은 인근의 황정산과 도락산의 유명세에 가려 비교적 덜 알려졌고,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지만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오가는 길에 단양팔경인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이 위치한 선암계곡, 70m 높이의 기암절벽 사인암, 서민층의 생활도자기를 만드는 방곡도예촌, 국립황정산자연휴양림과 소선암자연휴양림을 둘러볼 수 있어 좋다.
7시경 짙은 안개 속에 청주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36번 국도와 34번 국도를 달리며 증평, 괴산, 연풍을 지난 후 이화령터널휴게소에 들렀다. 참 좋은 세상이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를 잇는 이화령(높이 548m)을 터널로 단숨에 통과한다.
901번 지방도로 문경읍소재지와 문경온천지구를 지나자 버섯채취 철이라 입산금지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자주 눈에 띄고 산 밑에 주차된 차량들이 많다. 산세가 날카로운 고갯길로 접어들고도 한참을 달리며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기해박해를 피해 정착했다가 병인박해 때 많이 순교한 여우목성지를 지난다. 이쯤에서 경북 문경시 동로면의 황장산(높이 1077m)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황정산(높이 959m)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을 오가던 관광버스가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윗점마을에 도착했다. 도로가에서 짐을 꾸리고 9시 20분경 윗점마을에서 출발해 슬랩지대, 수리봉 정상, 용아릉, 신선봉, 석화봉, 성곽바위, 석화바위, 째진바위, 궁둥이바위와 곰바위를 거쳐 대흥사와 가까운 올산천으로 하산하는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을 지나자 제법 힘이 드는 산비탈을 만난다. 천천히 걸으며 거친 호흡을 조절하는데 친구들과 어울리다 늦게 들어온 둘째 아이의 발걸음이 늦어진다. 아버지는 힘들게 당나귀를 끌고 있는데 아들이란 놈이 편안하게 당나귀를 타고 가는 꼴이지만 아이가 메었던 배낭을 내가 짊어진다.
일행들의 뒤편에서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보니 모양이 그럴듯한 바위들이 있다. 바위 위에 오르니 뒤편으로 바위들이 속살을 드러낸 수리봉 정상이 보인다. 방곡리 동쪽에 위치한 수리봉은 소백산맥 능선의 풍경이 빼어난 바위산이다.
바위 쉼터에서 가까운 곳에 경사 30도의 너럭바위가 있다. 폭 30여m, 길이 80여m의 슬랩지대는 평평하고 넓은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해야 한다. 산행은 안전이 먼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쪽의 쇠줄을 잡고 오른다. 슬랩의 중간부분 아래와 위에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소나무가 외롭게 서있다. 슬랩을 내려다보면 산행을 시작한 윗점마을과 황장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뒷동산처럼 평탄한 산길을 지나자 로프가 걸려있는 험한 비탈과 완만한 산중턱이 차례로 나타난다. 능선을 오르다 산길에서 만난 노송의 자태가 멋지다. 걷기 쉬운 산길과 무속인들이 제를 올리는 석굴을 지나 수리봉 정상(높이 1019m)에 도착했다. 정상 주위는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조망이 나쁘다. 색과 크기가 대비되는 2개의 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수리봉을 지나면 가까운 곳에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가 있다. 이곳에 서면 발아래로 용의 이빨을 닮은 용아릉 능선이 펼쳐지고 건너편에 신선봉이 우뚝 솟아있다. 용아릉을 지나거나 신선봉에 올라 두 손을 번쩍 들고 좋아하는 회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황정에서 너는 산이 되었구나 사랑한다...’ 바로 옆에 망자를 그리워하는 표석이 누워있어 인간의 나약함을 생각해보게 한다.
전망바위를 내려서면 능선 위로 바위가 울퉁불퉁 뛰어나온 모습이 용의 등처럼 보이는 용아릉 구간이다. 쇠줄을 잡고 암벽을 돌아갈 때는 발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오금이 저릴 만큼 스릴과 재미가 넘치는 암릉코스다. 네발로 기고, 쇠줄을 잡은 팔에 힘을 주며 신선봉 전망바위에 오르면 방금 지나온 용아름과 수리봉이 눈앞에 있다. 큰 바위에 움푹 팬 구멍 2개와 소나무도 구경거리다.
전망바위에서 내려와 숲길을 걸으면 신선봉 정상 표석을 만난다. 가까운 숲속 공터에 신선봉이라고 표시한 조그만 돌탑이 있다.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이 신선봉 정상(높이 990m)인지는 모르겠다.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는 재미다. 널찍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각자 가지고 온 것 펼쳐놓으면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짊어지고 오느라 힘들었지만 땀 흘린 후에는 역시 시원한 막걸리가 최고다.
올산, 수리봉, 선미봉, 황정산이 사방에서 에워싼 석화봉(높이 834m)은 이름이 말해주듯 시원스레 뻗은 암릉 위로 째진바위, 성곡바위, 석화바위, 궁둥이바위, 곰바위 등 거대한 화강암 바위들이 꽃처럼 피어있다. 하지만 정상은 수줍은 듯 숨어있어 조망도 시원찮고 볼거리도 없다. 석화봉에서 석화바위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 뒤편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성곽바위를 만난다.
석화봉 아래쪽에서 만나는 석화바위가 하이라이트 구경거리다. 위험해 보이지만 바위 뒤로 돌아가면 밧줄이 매어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고사목이 있는 바위 위에서 황정산, 소백산 등 인근의 조망을 즐기며 기념사진을 남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궁둥이바위 방향으로 산행을 하다 멀리서 뒤돌아본 석화바위의 모습도 멋지다.
쉼터로 좋은 째진바위에서 풍경이 아름다운 주변의 산들을 구경하고 바로 앞에 있는 큰궁둥이바위를 지나면 작은궁둥이바위 옆에 모양이 그럴듯한 곰바위가 첩첩산중 한가운데 우뚝 솟은 올산(높이 858m)을 바라보고 있다.
제법 경사가 급한 산길을 한참동안 걸어 1시 40분경 목적지인 황정산로에 도착했다. 도로 아래편에 풍경이 아름다운 올산천이 기다린다.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청정자연을 만끽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니 산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2시가 되자 회원들이 관광버스 옆 뒤풀이장소로 모여든다. 김만수님과 신춘우님이 협찬한 삼겹살과 시원한 통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가슴을 여는 게 인생살이다. 한기수 선배님과 같은 자리에 앉은 일행들에게 막걸리 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많이 남아 둘째 아이와 가까운 거리의 대흥사로 갔다. 황정산 아래편의 대흥사는 근래에 건축했지만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로 1876년 소실되기 전까지 1000여명의 승려가 수도하던 대가람이었다. 어쩌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나무그늘 아래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4시에 출발한 관광버스가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사인암과 방곡도예촌, 경북 문경시 동로면의 상달리와 여우목고개를 지나치며 왔던 길을 되돌아 34번 국도와 36번 국도를 달린다. 증평인삼바이오창업지원센터에 들렀다가 6시 40분경 청주에 도착했다.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깊은 산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맡긴 채 산행의 피로를 풀었으며, 시원한 막걸리와 맛있는 삼겹살로 몸보신까지 했던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