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 번째 도둑 이야기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5리가 넘었다. 우리는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 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산등성 고갯길을 넘어 다녔다. 먼 거리를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 늦지 않기 위해 등굣길에는 늘 빠른 걸음을 다니고는 했다. 하지만 하굣길은 숨바꼭질, 딱지치기, 자치기, 고누놀이, 땅뺏기놀이, 구슬치기, 닭싸움 등 많은 놀이를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일찍 집에 들어가면 하기 농사일 돕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하굣길에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굣길 시간이 고무줄처럼 길어났다가 줄어들어도 아버지는 별 말이 없으셨다. 혼자하시는 농사일이 힘드셨을 터인데 집안일은 별로 시키지 않으시고 너희들만은 농사꾼으로 만들지 말아야 해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마음도 모르고 하굣길을 즐기면서 늦게 집으로 오고는 했으니 불효를 한 셈이다. 하루는 친구들과 놀다가 배가 고파 어떤 집 가까이 있는 감나무 위의 홍시를 따먹자고 누가 그랬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발그스레한 홍시가 유난히 탐스럽게 보였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각자 감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저마다 말랑말랑한 홍시를 찾아 가지 끝까지 아슬아슬 올라가 따먹기 시작하였다.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니 감나무 주인의 집도 보였다. 하지만 감나무 주인집 문은 닫혀 있고 적막만 흘렀다. 우리는 신나게 홍시를 따 먹으며 감나무집 주인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제법 큰 소리로 떠들기까지 하였다.
한동안 나무 위에서 홍시를 따 먹고 난 후에도 가지고 가면서 먹을 것을 몇 개 더 따려고 소란을 피웠다. 그때 감나무집 주인의 방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허겁지겁 내려올까, 쥐죽은 듯 그대로 있을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열리던 문은 소리 없이 닫히고 다시 조용해졌다.
“휴~ 다행이야. 큰일 날 뻔했네.”
나는 내뱉듯이 말을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속삭이며 말했다.
“주인이 다시 나오기 전에 빨리 내려 집으로 가자.”
우리는 급히 감나무에서 내려와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감나무집 주인 몰래 홍시를 따 먹은 것을 즐거워하면서 말이다.
나는 집에 가서도 시치미를 떼고 더 큰 소리로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숙제하는 척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러 밥상머리에 앉았을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너 오늘 건넌 집 00네 감나무에 올라가 감 따먹었다며.”
나는 얼굴이 발개지며 발뺌할 수 없었다. 대답 대신 얼굴만 붉혔다.
“남이 모른다고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 앞으로 절대 남들이 안본다고 해서 남의 것 손대면 안 된다. 명심하겠느냐.”
“예. 잘못했습니다.”
나는 잘못을 수긍하고 말았다. 감나무집 주인은 우리들이 홍시를 따 먹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이었다.
‘저 아이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홍시를 따 먹을라고.’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는 우리에게 어떻게 할까 궁리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네. 문을 열고 나가볼까? 아니야. 그러다가 떨어지면 안 되잖아.”
그래서 방문을 여는 척 하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교감으로 근무했던 학교에서 자전거 도둑질에 참가한 자녀를 둔 학부모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 아이를 파출소로 전화를 하여 버릇고치기를 한 나의 방법은 건넌 집 어른의 방법보다는 훨씬 못하지 않은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둑을 잡는 가장 높은 고수는 나의 어렸을 때 감나무집 주인이었다. 감나무 집 주인과 아버지가 인성교육을 맡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