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20년 후 우리학교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 지킬 수 있겠습니까? 꼭 지키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영광된 졸업 축하를 위한 몇 가지 말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졸업은 학교를 마치는 날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의 첫 걸음입니다. 졸업을 영어로 말하면 graduation, commencement 두 낱말이 있습니다. 이중 앞의 말 graduation은 ‘등급을 정하다.’라는 말 grade에서 나온 말로 ‘학교 교육을 마치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commencement는 commence에서 나온 말로 새로 시작한다는 뜻을 가진 말에서 나왔습니다. 이처럼 졸업은 학교를 마치는 동시 새로운 시작을 뜻합니다. 여러분의 중학교로 나가는 첫 걸음이기도 합니다.
우리 속담에 천릿길도 한걸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의 중요성을 말하는 속담입니다. 서양의 속담에서도“Well begun, half don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준비된 시작(Well begun)은 절반쯤 이루었다(half done)는 뜻입니다. 누구나 시작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시작은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실천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했던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이전에도 되풀이되던 일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작의 의미는 되풀이되는 일상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며 자기 약속입니다. 중국의 성인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생겼고 9층의 놓은 누각도 한줌의 흙에서 시작된다. 여러분, 시작은 위대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훌륭한 결실을 맺으려면 나날이 자신의 생활을 돌보고 노력하십시오.
두 번째로 꿈꾸는 사람이 됩시다. 끈기 있게 노력합시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했습니다. 사막은 불덩어리처럼 뜨겁고 길은 멀었습니다. 뜨거운 햇빛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더 이상 못가겠어요. 목마르고 지쳐서 죽을 지경이라고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얘야, 포기하면 안 돼. 끝까지 가보아야 하지 않겠니? 그러면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찾을 거야.'"
아버지와 아들은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다독거렸지만 아들은 점점 절망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은 무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를 본 아들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저것 보세요, 아버지! 저 사람도 우리처럼 지쳐서 마침내 죽고 말았어요."
아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니야. 여기 무덤이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있다는 거란다.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나타날 거야. 조금만 견대보자. 사람이 없는 곳에는 무덤도 없는 거니까."
얼마 후 두 사람은 마을을 발견하고 계속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같은 무덤이라도 죽음을 볼 수 있고 생명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얼마나 긍정의 단어인 희망을 바라보는가에 달렸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세상을 긍정으로 봅니다. 그리고 꿈꾸는 사람입니다.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랍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함께 하는 일에 가치를 둡시다. 얼마 전 EBS 다큐멘터리에 우리나라 아이들과 독일의 아이들의 과제활동 실험이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실험에 선발된 아이들이 하는 과제는 혼자서 하는 수학 문제 풀기와 여럿이서 스토리를 만드는 문제였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수학 문제는 학년에 맞지 않는 꽤 어려운 방정식이 들어간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사전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시간 내 거뜬히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도무지 풀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험지를 모두 해결한 학생도 절반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문제에 이어 두 번째 문제, 여럿이 낱말 카드를 조합해서 논리적인 스토리를 만드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리나라 아이들은 누가 역할을 맡느냐 하는 데서부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일은 자기가 맡겠다는 주장, 어떤 일에서는 절대 못하겠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우여곡절 끝에 역할이 배분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만드는 부분에서는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자기주장만 있지 대화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학생은 기세등등하던 처음 모습과는 달리 여럿이 해결하는 과제에서는 곳곳에서 벽에 부딪혀 지지부진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독일 아이들은 어떤 일이든지 타협하고 화기애애하게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도 훌륭했습니다.
여러분 두 실험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혼자 공부와 혼자 일에 익숙하지만 생각을 나누는 일, 더불어 일을 하는 일은 자주 경험하지 못해 공감능력이 떨어집니다. 여럿이 힘을 모아 정보를 재생산하는 능력도 떨어집니다.
여러분 함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함께하는 일의 가치를 존중합시다. 성적이 좋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성적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험성적보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행복한 것을 아는 것은 함께하여 가슴으로 배우고, 몸으로 배울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감사와 존경,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이 순간이 있기까지는 여러분들의 수고와 돌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부모님,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감사하는 것은 마음에 담아두는 것보다 찾아오고 기억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도에 보면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접경지대에 푸른색과 갈색으로 표시된 두 호수가 있습니다. 푸른 빛깔은 갈릴리호수이고 갈색표시는 사해라고 불리는 호수입니다. 이 두 개의 호수는 같은 지역에 있는데도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일 년 내내 맑은 물이 흘러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물이 깨끗하고 수많은 고기가 살며 호반에는 식물이 무성합니다. 그 때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축복의 땅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사해는 염분 농도가 높고 물이 오염되어 아무런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같은 지역인데도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요? 갈릴리 호수는 주위의 산에서 흘러오는 맑은 물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다른 강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해는 오랜 세월동안 주위의 물들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해처럼 받기만하면 찾아오는 친구가 없습니다. 감사할 줄도 모르고 행복할 줄도 모릅니다. 남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외롭습니다. 여러분 갈릴리 호수가 되십시오. 친구를 간직하십시오. 베푸는 사람이 되십시오. 베푼 만큼 행복해지고 다시 돌아온다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20년후 만나는 약속 꼭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졸업을 다시 축하하며 앞날의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