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인물(여류 문인의 도시)

2014.02.17 10:23:00

강릉은 여류 문인의 도시로 평가한다면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떠오른다. 신사임당이 한국의 여성이라면 허난설헌은 흔하지 않은 동양의 여류 문인인 셈이다.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집은 비슷한 시기 경포호수를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풍수를 말하는 사람은 백두대간의 심장은 오대산과 대관령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와 고인 물이 경포 호를 이루고 있으니 범상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 것이다.

신사임당의 집은 경포호수를 중심으로 서쪽 죽헌동에 위치하고 허난설헌의 집은 동쪽 초당동에 위치한다. 공교롭게도 두 가문은 서인과 동인으로 나눠 다투는 처지가 되었다. 즉 이율곡은 서인의 영수,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동인의 영수로서 다투었다.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아들 셋, 딸 셋의 육남매를 두었는데 세 아들과 세 사위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아버지 허엽을 포함하여 한 집안에 일곱이 과거에 급제한 보기 드문 집안이다. 허난설헌은 글 잘하는 오빠(허봉)를 위로 두고 아래로 허균을 두어 이러한 가정환경이 시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빼어난 미모와 글재주가 많은 허난설헌은 안동김씨 (金誠立)에게 출가를 갔지만 금실이 좋지 못했다. 남편 김성립은 기방 출입이 빈번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아내에게 불만을 가졌다. 허난설헌은 자식복도 없었다. 그래서 고독을 달래려고 많은 시를 썼다.

허난설헌은 당시 3唐의 칭호를 받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우리나라 한시문학의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천재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두 아들을 잃고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해진 허난설헌은 27세를 일기로 한만은 세상을 떠난다. 허난설헌은 죽기 전 내 글을 모두 불태우라고 말했다.

누이의 유언을 들은 허균은 허난설헌의 시를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나 불태우기는 너무 아까웠다. 누이의 작품을 모으면서 그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다. 허균은 동생 사랑의 길은 유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를 살려야 된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210여수의 시를 모아 ‘허난설헌집’이라는 목판본 책을 만들었다. 허균은 동생의 유언대로 그 책을 조선 땅에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었다. 이렇게 하여 허난설헌의 작품은 조선에서 사라졌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허균이 정리한 허난설헌집을 받아 읽고는 ‘동양의 소동파이구나!’ 깜짝 놀라 명나라에서 책을 출간한다. 이후 허난설헌집은 명나라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고 여러 권 보급된다. 그중 하나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도 다시 간행된다. 이로 인해 허난설헌은 동양 삼국에서 으뜸가는 여류시인으로 우뚝 섰다.

시대를 앞서가는 허난설헌은 안동김씨 김성립에 출가했으나 시어머니의 구박,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해 현실적인 좌절과 질곡을 맛보아야 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은 세 가지 한을 품고 갔다면서 애석히 여겼다. 하나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한하고 둘째로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고 지아비를 잘 만나지 못한 것을 한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허난설헌의 글은 이웃 나라에서 시집으로 남아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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