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 경쟁, 학교장 판공비가 희생양

2014.03.31 16:52:00

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교감선생님이나 행정실장에게 물어서 확인해보고 업무를 처리할 때가 많다. 지난번에는 학부모 단체 발대식 준비를 위해 행정실장에게 물어보았다.

“실장님, 1년 동안 수고한 학부모 단체장에게 감사패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래도 되는지 확인해보세요.”
“예, 알아보겠습니다.”

잠시 후 행정실장이 찾아왔다.
“교장선생님, 패 만들어 주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대요.”
“왜요?”
“감사에서 지적 받을 수 있대요.”

그래서 패 대신 종이로 만든 감사장을 만들어 주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출산을 한 교사에게 미역을 사주려고 할 때도 감사의 지적 사항이라고 해서 못한 적이 있다. 아이들의 안전을 도와주는 지킴이 아저씨 추석선물을 주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전출 교사에게 학교 교육활동 수고의 보답에서 화분을 보내려고 할 때도 지적사항이라고 해서 보내지 못한 적이 있다. 많지 않은 학교장 판공비이지만 잘못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학교장 판공비는 직책급 업무추진비와 기관운영비로 나눈다. 직책급 업무 추진비는 직책에 따른 품위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돈이다. 예를 들면 인근학교 교장선생님 조위금, 축의금, 외부 인사, 상급기관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접대비 등을 말한다. 하지만 기관운영비는 기관의 구성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교육활동을 원만하게 하기위해 쓰는 돈을 말한다. 그런데 두 가지 영역이 애매모호하여 묻고는 한다.

학교장 판공비 쓰임은 감사에 단골손님처럼 지적받기 일쑤다. 세부적인 규정이 없어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교직원의 축의금, 조위금 명목으로 5만원을 지출해야 하고 나머지는 교직원 밥 먹는 일로 쓴다. 교직원 결혼식이나 조문을 찾아가면 5만원 조위금, 축의금 이외에 흔한 화환 하나 보낼 수 없어 창피할 때도 많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도 화환을 걸어 이름을 알리지만 교원 됨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도 못하게 만들어 미안할 때가 많다. 학교장 판공비, 교직원의 사기를 돋우고 교육활동을 원활하게 하는데 쓰면 안 되나? 교직원이나 학부모에게 학교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과 고마움을 느끼도록 만들면 나쁜 판공비인가?

이렇게 된 이유는 지나친 청렴경쟁이 원인이다. 학교장 판공비를 청렴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몇몇 교육위원들이 나서서 판공비까지 청렴경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에서는 청렴이 평가의 중요한 실적이니 학교장 판공비를 주목하게 된다. 그 결과 밥 먹는 일 이외에는 모두 규제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친 청렴경쟁은 학교장의 교육활동을 위축시킨다.

논어에 견위치명 견득사의(見危致命 見得思義)라는 말이 있다. ‘선비는 모름지기 나라가 위태로울 시기에는 목숨을 바치며, 이득을 볼 때에는 의로움을 먼저 생각한다.’라는 뜻이다. 이율곡선생님도 견득사의 수기치인(見得思義 修己治人)이라고 했다. ‘득을 보면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내 몸을 먼저 닦은 후 남을 다스리라’라는 뜻이다. 견득사의는 격목요결 구용구사(九容九思; 마땅히 지녀야 할 바른 용모와 바른 생각)의 맨 마지막에도 들어있다.

학교장은 학교를 통할하는 최고 관리자이다. 교실의 질이 교사를 능가할 수 없다는 말처럼 학교의 질은 학교장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학교장의 신념과 자질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위학교 자율경영이라는 말도 있다.

청렴은 국가경쟁력이다. 청렴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학교장 판공비가 아니라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하루 5억짜리 봉투 접는 벌을 내리는 판결, 수조 단위로 늘어나는 재정과 공기업 책임자가 누군지 모르는 일, 의원들의 노후 연금, 세비 인상 등이 아닐까?

학교장 판공비 청렴 경쟁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학교장 판공비는 학교장의 고유 권한이다. 말로만 학교자율경영을 주장하지 말고 판공비 사용 규제를 바꿔라. 학교장 판공비 교직원의 사기를 앙양하고 학교교육활동을 원활하게 하는데 쓰이도록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학교장 판공비 쓰임의 원칙, 이율곡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견득사의’가 맞다. ‘견득사의’는 규정이 아니라 양식과 판단이다. 즉 정직성과 공정성이 중요한 원칙이지 세세한 것까지 믿지 못하고 규제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못된다. 학교자율경영에 걸림돌이 되는 학교장 판공비 사용, 교육 규제 개혁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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