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데 있다

2014.04.04 12:00:00

우리 집은 걸어서 5분이면 뒷산에 오를 수 있다. 지도에는 ‘낙생대공원’이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뒷산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 나면 뒷산에 오른다.
아침에 오른 뒷산에는 벌써 봄의 축제가 이루어진다. 먼저 뒷산으로 오르는 길옆 개나리가 반갑게 맞이한다. 산에 오르면 진달래, 산목련, 산벚꽃, 산수유, 조팝나무, 온갖 꽃들이 서로 봄맞이하러 얼굴을 내민다. 물오른 졸참나무 가지 사이 봄을 축복하는 산새들의 울음이 들려온다.

이른 아침인데도 산을 즐기러 올라온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부부사이, 어떤 사람은 혼자서, 가끔 가족끼리 올라와 봄의 아침을 즐긴다. 산등성이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아침햇살이 기분 좋게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고 봄의 축제가 무르익는다.

봄은 나뭇가지 틈새에도 돌 틈 작은 곳에도 어김없이 있다. 졸참나무는 먼저 햇빛을 차지하려고 하늘을 향해 손을 내민다. 물오르는 가지, 그리고 돌 틈 여기저기 생명의 축복을 노래하는 음악이 가득하다.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선사하기 위해 꽃망울을 터뜨리고 새들은 노래한다. 숲속을 바라보면 워즈워드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이여, 바라노니
아침 식사가 끝나거든
집안일은 그만두고
어서 나와 이 봄 햇살을 만져보자.
에드워드도 함께 와 기도하고
서둘러 숲의 옷을 입어라
책같은 것일랑 그만 두고 오늘 하루
우리 한가롭게 보내자구나 (To My Sister )

위즈워드는 인간은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자연에게 배우는 것이 훨씬 가치 있다고 했다. 책에서 배우는 지식보다 자연의 가르침을 몸으로 느낌으로 배워보자는 것이다.

들어라! 노래찌바뀌는 얼마나 즐겁게 우는지!
그 또한 서툰 설교자는 아니다.
만물의 빛 속으로 들어와
자연을 네 스승으로 삼아라.
봄의 숲속에 일어나는 하나의 충동이
인간의 도덕적 선악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네게 가르쳐 주리,
모든 현자의 가르침보다도 (The Tables turned)

새소리, 노래찌바뀌의 훌륭한 설교를 들으면 인간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야 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입으로만 지혜와 진리를 가르치는 현자보다도 훨씬 훌륭한 도덕과 선악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자의 율법(법율, 지식, 인습)만 따지고 쫓지 않는가?

그리하여 햇빛은 따뜻이 비치고
아기는 엄마의 품에서 노닐 동안,
내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다면
아 얼마나 불행한 날일 것인가!
나는 듣노라, 듣노라, 기쁨으로 듣노라!
.............................
그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무엇을 이야기해주나니
발아래 팬지꽃도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저 환상의 빛은 어리로 사라져 갔는가?
그 영광 그 꿈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Ode No. 4)

아무리 좋은 축제의 화관을 쓰고 충만한 행복을 느끼더라도 아이들의 순수한 노래를 듣지 못하고 찌푸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워즈워드는 한탄한다. 우리가 사는 삶은 나이 들수록 아이들의 순수성과는 점차 멀어져 순수한 빛과 영광의 빛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자연만이 아이들의 순수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워즈워드의 시 세편은 모두 인간이 만든 교과서(법률, 지식, 학문)보다 위대한 것은 자연이라고 했다. 자연을 잃어버린 사람은 인간의 선한 본성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Ode에서 보듯이 인간은 나이를 들면서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고귀한 환상의 빛, 영광의 꿈이 사라지는 것은 인간이 만든 교과서(법률, 지식, 학문)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행복을 규정한 사람은 없다.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은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비슷한 것들이며 인간관계는 그 중 하나라고 했다. 행복에 대한 정답을 찾은 사람은 아직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데서 행복을 느낀다는 크림슨의 주장에서 행복은 좋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좋은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 우리의 관계, 나의 관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나와 자연의 관계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은 이 모든 관계가 좋다. 나와 우리의 관계가 좋으면 주변이 밝아지고 나와 너의 관계가 좋은 사람은 존재에 대한 존경과 기쁨을 느끼고, 나와 나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으로 미지지 않은가?

행복해지지 않은 것도 나와 너, 나와 우리의 관계에서부터 문제를 가진다. 좋은 관계를 갖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사회의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발전은 소유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유할수록 소외된 삶, 욕망에 대한 갈증만 느낀다고 했다.

행복은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데 있다. 그리고 존재의 기쁨을 느끼려면 산으로 올라가 보아라. 우리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야 된다. 교육도 존재하는 것에 대한 줄거움을 느끼는 것, 그리고 권리보호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뒷산에 오른다.
김완기 로봇에게 쫓겨난 대통령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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