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바꾼 역사적 사건 뒤에는 호기심이 숨어있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배를 타고 멀리 나가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라는 당시 성직자들의 이론에 대해 ‘그게 맞을까? 절대 그럴 리 없어.’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콜럼부스는 자신의 의문에 대해 답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몇 번이고 바닷가에 나가 수평선을 바라보고 망원경을 꺼내 멀리서 오는 배를 살펴보았을 것이다.
‘저 멀리 오는 배를 봐. 처음에는 닻만 보이잖아. 선체는 한참 있어야 보여. 배가 나갈 때는 반대야. 선체부터 사라지잖아. 수평선도 좌우로 보면 둥글단 말이야. 그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야.’
콜럼부스는 해 뜨는 시각도 관찰했을 것이다.
‘해는 한곳에서만 떠오르지 않아. 동쪽에서 뜨지만 위치가 변해. 해 뜨는 시각도 달라져. 한 해 동안 해의 위치와 뜨는 시각이 반복되고 있어. 그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야.’
이렇게 차곡차곡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해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질문한 답을 찾고 난 뒤 ‘지구는 둥글다. 배를 타고 가면 언제인가 처음의 위치로 되돌아 올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콜럼부스의 신념은 탐험 욕구를 자극하고 아메리카를 발견하도록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한 평편한 지구의 끝에 대한 공포를 해결한 것이다.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지리상 발견의 시대를 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떻게 바다를 나갈 수 있었지요?”
콜럼부스가 물었다.
“달걀을 세울 수 있다면 말해보시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콜럼부스는 달걀 밑동을 깨어 탁자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게 내가 한 방식이오.”
안 되는 일이라고 궁리하고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호기심의 해결인 것이다. 과학적 발견과 발명은 필요에 대한 갈망과 도전이 만들기도 한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운동은 구텐베르크라는 가난한 귀족이 만든 금속활자가 원인이 되었다. 당시 그는 유럽에서 유행하던 ‘마작’(마르크폴로에 의해 중국에서 전해온 노름) 뒷전에서 개평이나 뜯어내면서 살아가는 가난한 귀족이었다. 어느 날 마작을 하는 귀족 뒤에서 유심히 본 것이 있었다. 마작에 새겨진 글자였다.
‘마작에 새겨진 글자처럼 활자를 만들 수 없을까?’
그는 귀족들의 마작 놀음을 하는 곳을 벗어나 금속세공업자인 친구 휴머리를 찾아갔다.
“앞으로는 손으로 책을 쓰지 말고 찍어낼 수 있어.”
“그래서?”
“큰돈을 벌 수 있잖아. 성경책만 찍어낼 수 있다면.”
휴머리는 생각해보았다. 당시 성경책은 책의 무게가 금의 무게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성경책을 찍어내는 일은 금을 만드는 일이 아닌가?’
휴머리는 적극적으로 구텐베르그를 도와주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활자로 찍어내는 책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은 구텐베르그와 휴머리에게 찍어낸 책의 무게만큼 금을 캐는 일이기도 했다. 이것이 유럽의 박물관에 가보면 볼 수 있는 구텐베르그 성경이다. 이렇게 보급된 성경책은 성직자에게만 비밀로 하는 신의 음성을 일반인에게 알리도록 만들어 주었다.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된 것이다. 지식과 정보 독점의 시대를 바꾼 것이다.
호기심과 필요, 몰입과 신념, 그리고 몇 번의 실패가 콜럼부스와 구텐베르그를 만들었다. 호기심을 빼앗아가는 선행학습, 아무리 PISA 점수가 아무리 높으면 뭐하나? 점수는 낮아도 용감한 콜럼부스와 구텐베르그를 만들자.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