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네 골목길과 학교운동장이 텅 비었다. 어디로 가도 조용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으레 아이들 소리가 들렸을 텐데 그 많은 아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이의 일상을 살펴보기 위해 EBS 방송 스튜디오에 7명의 아이가 초대되었다. 프로그램은 ‘놀이의 반란’, 실험자가 낸 과제는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 그리기’다. 가족 그림에는 아이의 정서 상태, 상호관계가 드러난다.
초대된 아이들이 나가고 실험자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중 한 아이, 여덟 살 효빈이의 그림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빈방에 놓인 휴대폰, 태블릿 PC, 학습지와 같은 그림 등이 있었다.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을 살펴본 실험자는 효빈이를 불러 물어보았다.
“효빈아, 네 그림에는 왜 사람이 보이지 않지? 이유를 좀 설명해줄래?”
“우리 가족은 집에 없어요. 밖에 나갔기 때문이어요.”
“엄마는?”
“엄마는 주방에서 일만해요.”
“휴대폰은 왜 커다랗게 그렸니?”
“놀아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휴대폰을 가지고 놀 때가 많아요.”
효빈이를 보내고 난 뒤 실험자는 효빈이 엄마를 불렀다. 실험자는 효빈이의 그림을 보여주며 물었다.
“효빈엄마, 효빈이와 많이 놀아주나요?”
“놀긴 해요. 공부 놀이니까요.”
“무슨 놀이라고요?”
“놀이 프로그램이 많아요. PC, 놀이학습지 등 많아요.”
“그럼 혼자 하겠네요.”
“그렇지요. 놀이학습이니까 혼자 하라고 해요.”
효빈이의 그림은 송미경 교수(서울여자대학교 정서인지통합 교육센터)에게 전달되었다. 송미경 교수가 말했다.
“그림 속에 사람이 들어있지 않는 것은 상호작용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줘요. 누군가 만나 상호작용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표현된 거예요.”
며칠 후 실험자는 다시 효빈이 엄마를 만나 집에서 하는 놀이를 물어보았다.
“집에서 하는 놀이를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요?”
효빈이가 하는 놀이는 중국어, 수학학습지, 한글학습지, 독서프로그램, 한자, 피아노 이렇게 여섯 가지를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효빈이가 하는 것은 공부와 관련된 놀이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든다. 학습연령이 낮아진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 영재아이를 꿈꾸며 놀이도 공부 일색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도 그렇다. 원어민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도 생겼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아이에게 놀이는 권리이자 삶의 일부분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앗았다. 그러나 놀이를 하지 않는 만큼의 시간이 아이에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삶을 빼앗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