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골짜기 기암괴석 '화양구곡'

2014.06.30 13:58:00


6월 23일, 아내와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우암 송시열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글을 읽으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화양동계곡을 다녀왔다. 자신을 주자에 비유했던 송시열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화양동계곡의 볼 만한 곳 아홉 군데에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화양구곡이라 하였다. 여름철이면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지는 최고의 피서지로 입구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1곡부터 9곡이 차례로 펼쳐진다.


화양구곡 입구에 있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제1곡 경천벽(擎天壁)이다. 깎아지른 층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높이 솟아 있어 경천벽이라 한다. 경천벽 아래쪽에 ‘화양동문(華陽洞門)’이라 쓴 송시열의 글씨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곧게 뻗은 기암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를 느끼는데 여름철에는 무성한 나뭇잎이 층암절벽을 가린다. 주차장 전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1곡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차로 휙 지나친다.


경천벽을 지나면 차량들이 가득 들어찬 넓은 주차장을 만난다. 주차장의 매점 앞에 그럴듯한 성황당과 키가 크고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성황당이 화양동 정비사업을 하기 전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데 돌무더기 옆에 있는 소나무가 관리부실로 고사목이 된 게 안타깝다.

주차장에서 화양2교까지는 녹음이 짙은 가로수들이 그늘터널을 만들고 길 아래편 물가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상념에 젖어 천천히 걷다보면 운영담이 바라보이는 화양2교가 나타난다.


계곡에서 빠르게 흘러내려온 물이 잠시 숨을 가다듬는 제2곡 운영담은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고 있어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 여름철에는 작은 댐으로 착각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적절히 조화를 이룬 노란색과 빨간색 단풍이 물에 비치는 가을철이 가장 아름답다. 운영담의 바위 위에 운영담(雲影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운영담을 지나면 길가에 돌기둥이 마주보고 서있다. 하마소(下馬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부터는 누구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이 하마소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우암이 벼슬을 떠나 화양서원에 머물 때 이곳 하마소를 지나던 흥선 대원군이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양서원의 유생들에게 봉변을 당한다. 후에 흥선대원군은 서원철폐령을 내려 서원들을 강제로 문 닫게 했고, 그때 철폐된 화양서원도 폐허상태로 있다가 복원되었다.


제3곡 읍궁암(泣弓岩)은 화양서원 앞 냇가에 있는데 암반 위에 구멍이 많은 희고 둥글넓적한 큰 바위다. 효종 임금이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자 우암이 매일 새벽과 효종의 제삿날인 5월 4일에 한양을 향하여 활처럼 엎드려 통곡하던 바위라 읍궁암이라 한다. 음궁암에 주변의 비석들이 서있던 구멍이 있다.


화양서원은 이곳에 머물며 후진을 양성했던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하여 권상하, 정호 등 노론계 관료와 유생들이 세웠다. 화양서원에 딸린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군을 보내온 명나라 신종과 친필 비례부동(非禮不動)을 전해온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맑고 깨끗한 물에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있었다는 제4곡 금사담(金沙潭)은 화양구곡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절경인데 모래가 유실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금사담 주변은 우암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반석위에 지은 충북유형문화재 제175호 암서재(巖棲齋)가 옆에 있어 화양구곡의 중심이 된다. 우암은 이곳에서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중수되었다.

암서재 앞 냇가에 물에 발을 담그고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암서재를 오가게 하던 냇가의 시설물이 사라져 곡예를 부리듯 요리조리 돌 사이를 건너뛰어야 한다. 암서재에서 바라보는 계곡과 산의 풍경이 아름답다. 노송이 울창한 주위의 산, 길게 이어지는 계곡,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 냇가에 있는 층암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서재 앞 바위벽에 금사담, 충효절의, 창오운단 무이산공 등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다.


제5곡 첨성대(瞻星臺)는 화양3교 옆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루고 있다. 화양3교를 건너지 말고 우측의 도명산 등산로를 따라 산길로 가면 숲속에서 만난다. '암벽에 버려두어 못 쓰게 된 성터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들어간다'는 뜻을 지닌 만절필동(萬折必東)이 크게 암각 되어 있는데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뜻을 지닌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글씨 ‘비례부동(非禮不動)’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는데 첨성대 정상까지 올라가며 눈을 밝혔지만 찾을 수 없어 안내판 설치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 글씨들에서 명나라를 따르고 청을 배척한 북벌파 송시열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만절필동(萬折必東) 글자의 왼쪽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고 커 하늘로 가려면 꼭 통과해야 하는 통천문을 닮은 침니가 있다. 첨성대 정상에 오르면 꼭대기의 대형 층암 건너편으로 빼어난 경치 속에 묻혀 있는 고찰 채운사가 보이고 화양계곡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화양3교를 막 건너는 지점이 첨성대를 제대로 볼 수 있고 경치도 좋다. 이곳에서 보면 우뚝 치솟은 높이가 수십m이고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있다. 바위 꼭대기에서 별을 관측할 수 있어 첨성대라 했다는데 층암의 많은 부분을 잡목들이 가리고 있다.


화양3교를 지나면 만나는 가게에서 채운사 가는 방향의 마당 끝에 큰 바위가 마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듯 우뚝 서있다. 제6곡 능운대(凌雲臺)는 바위가 구름을 뚫고 솟아올라 구름을 능멸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능운대를 더 알아보려면 채운사 방향의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조금 가다보면 만나는 민가 앞 너른 마당바위 끝이 능운대 정상이다. 그곳에 능운대를 알리는 글자가 희미하게 암각 되어 있고 첨성대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


제7곡 와룡암은 능운대에서 800여m 거리의 나무숲길 아래 시냇가에 있다. 옆으로 뻗혀 있는 암석의 생김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 길이나 되어 와룡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길게 누운 바위 위에 솥바닥 같은 둥근 구멍들이 파였고 와룡암(臥龍岩)이라고 적혀있다. 용의 꿈틀거림 때문일까? 와룡암 전체를 카메라에 담아내기가 어렵다.


제8곡 학소대(鶴巢臺)는 화양구곡에 하나뿐인 구름다리 옆에 있다. 와룡암에서 냇가를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면 도명산 등산로와 연결된 구름다리를 만난다. 다리 아래 건너편 냇가에 기암절벽과 낙락장송이 오랜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고 우뚝 서있는 학소대가 있다. 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하여 이름을 학소대라 하였다.

다리 난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에 ‘고심(?心)’ 이라는 시가 써있다. ‘太古의 神秘를 안고/ 季節따라 몸단장하며/ 님 기다리는 道明山/ 나는 그녀가 뿜어주는/ 山香氣 개울바람 마시며/ 수정알 같은 냇물에 발담고 서서/ 그의 님 기다린다....’


제9곡 파천(巴川)은 학소대에서 길을 따라 송면 방향으로 가다 냇가로 한참 내려가야 만난다. 200여 평쯤 되는 협곡에 널찍한 반석이 펼쳐지고 그 위로 물살이 굽이치는 파천은 화양구곡의 마지막 장소이자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절경지다. 오랜 풍상을 겪으며 씻기고 갈려 티 없는 옥반을 닮은 반석들이 개울 복판에 넓게 펼쳐지고,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여 파천이라 했다.

군데군데 덩그렇게 놓여있는 암석들이 계곡과 어우러져 산수경관이 아름다운 화양구곡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곳이다. 신선들이 이곳에서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바위 위에 기둥을 세웠던 흔적을 보며 냇가에 있던 정자의 멋진 모습도 상상해 본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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