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이혼율과 노인 고독사 이야기는 어제 이야기가 아닌 우리사회 일상이다. 존속살인 이야기도 뉴스거리를 자주 장식한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기피하고 독신자로 사는 것이 평상의 모습이다.
가정 붕괴는 이렇게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 시대 효 교육은 어쩌면 사치품인지 모른다.
하지만 효는 가정의 근본이다. 성경에 나온 말처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는 일은 가정에서부터다. 가정의 회복 없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시대 효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흔히 효(孝)하면 맹자왈(孟子曰), 공자왈(孔子曰)처럼 위에서 아래로 하는 가르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맹자왈(孟子曰)을 말하기 전에 아이들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든 책임은 어른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고 걱정한다. 그 결과 교육만이 답이라고 오로지 성적에 매달려왔다. 늘어나는 사교육비는 부모와 자녀의 고통을 함께 늘려주는 일이 되고 아이 낳기를 꺼린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비 충당을 어머니까지 위해 직업전선으로 나간다. 결과는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이 사라지고 대화는 사라져갔다.
아이는 텅 빈 집에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거리에 나가도 같이 놀 상대가 없다. 그래서 학원으로 내몰리고 혼자 노는 일에 익숙해져간다. 스마트폰 중독이 그렇고 컴퓨터 게임 중독이 그렇다. 아이는 이렇게 햇빛이 차단된 환경에서 대인관계를 단절하고 자란다.
아이가 자라면서 사회는 일자리 줄이는 환경으로 발달해간다. 사물인터넷도 핀테크(FinTech)도 따지고 보면 일자리를 줄이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발 딛을 때쯤이면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부모들은 학년이 높아갈수록 학교 선택을 강요하고 원하는 직업도 강요한다.
아이들은 점점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을 선택하기 어렵게 된다. 이러다 보니 사회적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된다. 타인을 배려하는 일도 그렇고 공동체 의식도 저하된다. 나아가 자신에 대한 존중감도 줄어든다. 모든 것은 혼자 사는 것만 키우지 함께 사는 효 의식은 빼앗는다.
아이들이 자라 일자리 구하기 전쟁터에 내몰리면 어른이 만든 사회를 원망한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부모들의 기대와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도달하지 못한 3포 세대로 남아야 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부모세대도 마찬가지다.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 주거비, 불안정한 직업 어느 하나 만만하지 않다. 자녀가 결혼해도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한다. 아들도 며느리도 갈등한다. 외동딸과 외동아들이 만나 네 명의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한 자식도 자녀를 낳으니 사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미래는 점점 어두운 색깔로 채워진다. 그리고 부모들은 효도가 사라진 젊은 세대를 탓한다.
우린 후세대에 효도를 부탁할 자격이 되는가?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난한 생활을 만족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 자동차, 가전제품, 핸드백을 봐라. 결핍의 행복을 가르쳐주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자녀는 요구만 했지 헌신과 희생, 타인배려와 같은 단어를 잃어버리고 만다. 사회도 가난한 자의 꿈을 빼앗는 구조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효도를 부탁할 자격을 갖추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모로 돌아가는 일이다.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자상한 아버지가 되는 일이다. 백 마디 훈계보다 한 가지 본보기가 인성을 만든다. 효도란 공자왈맹자왈이 아니다. 가정에서 함께하는 식탁을 되찾는 일, 건강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상담자,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의사소통, 결핍의 행복, 도전정신, 실패를 극복할 줄 의지와같은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맹자왈(孟子曰) 효(孝)교육 이젠 다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