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뒷모습은 아름다워야 한다. 뒷모습은 앞에서 보는 모습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건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머무르다가 떠난 자리 쓰레기가 뒹굴고 냄새가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하물며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이 떠난 자리가 깔끔하지 않으면 뒷손이 없다고 평가한다. 아이들에게 청소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한평생 몸담은 교직을 떠날 즈음이면 누구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꾼다. 퇴임식은 해야 하나? 밥이나 먹을까? 그러면서 자신이 걸어온 기억도 하나 둘씩 정리한다. 교직에 평생 몸담은 몇몇 친구는 망설이다가 퇴임식도 안하고 떠났다는 말을 했다. 퇴임식을 하면 민폐로 남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퇴임식은 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머문 자리를 치우는 시간이니까 말이다.
2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2월이면 떠나야 할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명예퇴직을 또 어떤 사람은 정년퇴직으로 교직을 떠나야 한다. 떠나는 사람 심정은 되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느라고 바쁘고 또 어떤 사람은 새로 맞이하는 사회의 첫발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러다가 금요일이 되면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다는 것에 소스라쳐 놀랄 것이다.
그런데 반평생을 동반한 아내도 퇴직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다. 아직 몇 년 남았는데 명예퇴직을 고민하는 이유는 공무연금 때문이란다. 누군가 연금 개혁 소급적용해서 개혁한다는 말 때문이다.
“소급적용, 설마 그럴 리가?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잖아.”
“요즘 정부가 언론프레이 하는 걸 보면 그럴 게 분명해요.”
그러나 아내는 남아있는 교직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말했다.
“여보, 명퇴 안할 거예요. 아무래도 교직 떠나면 안 되겠어요.”
“왜?”
“평생 난 교직이 적성인가 봐요. 퇴직하면 몸이 아플 것 같아 겁나요.”
“몸이 아프다고?”
“내가 쉬는 일은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어요.”
“그건 왜?”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요. 말썽장이를 잘 가르치면 기분이 좋아요.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데.”
그러고 보니 내 아내는 50대 중반에도 남들이 싫어하는 대표수업도 몇 번 했다. 그걸 봐도 교직 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몇 해 전 전임학교에서 가르친 아이들이 찾아오고 아이를 맡긴 한 할머니(학부모)도 찾아온다. 주소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 어렵다는 NEIS 업무, 정보화 기기 업무도 맡아했으니 교직 사랑이 틀림없다.
아내가 승진을 포기한 사유도 점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골학교를 다니며 승진을 위한 점수를 거의 확보하던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아빠, 교감 되면 좋아요?”
“글쎄, 교감은 교장선생님 앞에서는 교장선생님 편이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선생님 편이 돼야 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맘대로 해서는 안 되지요.”
“아빠, 나 교감 안 해도 섭섭하지 않지?”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경기도 광주까지 새벽밥을 먹으며 출근하여 늦은 시간 귀가하던 추운 겨울 말이다.
“당신 맘대로 해요.”
나는 아내의 눈빛을 읽으며 말했다. 아내의 눈빛은 가르치는 일이 가장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곡절을 겪으며 아내의 교직 여정은 마침표를 행해 가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연금 개혁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명예퇴직을 않기로 결정한 것은 교직 사랑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가르치는 일은 가장 존귀한 일이다. 가르치는 일에 몸담고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야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재잘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천국이 있다. 그게 최고의 음악이고 예술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중도에 직업을 그만두는 사람에게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건강상의 이유, 직업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리는 일, 사업장의 인적 구조 개혁 등으로 생긴 이름이다. IMF 때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퇴직 권고를 받은 사람은 꿈도 꾸기 힘든 많은 돈을 주어 내보냈다. 그게 명예퇴직의 시작이다. 그런데 명예퇴직이 공무원 연금 때문에 생긴다니 마음이 착찹하다. 명예퇴직은 정말 명예로울까? 아내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교직의 아름다운 마침표는 명예퇴직이 아니라 정년퇴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건 아내의 자존심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