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넌 화장한 모습보다 지금 모습이 더 예뻐.”

2016.07.21 10:38:00

아침을 화장으로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화요일 1교시 ○반 수업. 교실 문을 열자, 진한 화장품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이 냄새의 정체가 궁금하여 교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순간, 내 시선은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한 여학생에 멈추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교과서를 펼쳐놓고 수업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이 여학생의 책상 위는 거울을 포함해 화장품과 화장 도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옆에 다가가도 모를 정도로 화장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내자, 그제야 그 여학생은 화장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야, 이제 그만하고 수업해야지?”
“……”


내 말에 녀석은 대답은 하지 않고 내 눈치만 살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를 빨리 떠나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수업준비를 하라고 주문하고 난 뒤,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하면서 간헐적으로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녀석의 행동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짙게 화장한 녀석의 얼굴뿐이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의 행동에 조금씩 화나기 시작했다.

잠깐의 꾸지람이 녀석에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녀석의 책상 위에 있는 화장품 몇 개를 빼앗아 집에 갈 때 찾아가라고 했다. 그러자 녀석은 화장품을 돌려 달라며 떼를 썼다.

“선생님, 제발 그 화장품만은 돌려주세요. 제가 제일 아끼는 화장품이에요.”
“안 돼. 집에 갈 때 찾아가. 네 말을 거역한 벌이야.”


녀석은 나의 단호한 거절에 화가 났지만 애써 참는 눈치였다. 그리고 책상 속에서 책을 꺼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집에 갈 때 정말 주시는 거죠?”
“그래. 공부나 열심히 하렴.”


잠깐이나마 아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미(美)의 기준과 학생의 본분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다.

“얘들아, 호기심에 화장을 해볼 수는 있지만 학생의 본분에 벗어난 지나친 행동은 삼갔으면 한다. 특히 기말고사를 앞두고 1교시부터 화장하고 있는 너희들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구나.”

내 말에 화장한 일부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화장을 지웠다. 그리고 십 대 화장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먼저 화장한 아이들에게 화장하는 이유를 물었다. 대부분이 화장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단지 호기심에서 한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롤 모델로 아이돌 가수가 제일 많았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한 아이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화장한다고 하여 씁쓸함이 감돌았다.

화장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아이는 거의 없었으며 인터넷이나 TV홈쇼핑 등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일과 중, 화장을 제일 많이 하는 시간 때는 하교 1시간 전이었고 점심시간, 아침 시간순이었다. 습관적으로 화장하는 한 아이는 일과 중 거의 대부분을 화장하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고 하여 우려를 나타냈다.

아이들이 등교하자마자 화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아이마다 다소 차이는 있었으나 화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이라고 했다. 30분은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 눈치까지 보면서 화장하고 등교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등교하자마자 시작한 화장이 1교시 수업시간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다.

화장품을 사는데 드는 한 달 비용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화장품의 종류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었으나 평균 만 원 내지 이만 원 미만이 많았다. 그리고 워낙 턱없이 비싼 화장품 가격 때문에 한 아이가 가져온 화장품을 여럿이 나눠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보니, 립스틱을 바른 모든 아이의 입술 색이 똑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퇴근 무렵, 녀석이 아침에 빼앗긴 화장품을 찾으려 교무실로 찾아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녀석의 민낯 얼굴이었다. 매번 짙은 화장으로 선생님의 지적을 많이 받곤 했는데 오늘 녀석의 얼굴에서 그 어떤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녀석은 화장한 얼굴보다 화장 안 한 모습이 훨씬 더 예뻐 보였다.

“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 말씀 듣고 느낀 점이 많아요.”
“그래, 넌 화장한 모습보다 지금 모습이 더 예뻐.”


그러자 녀석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침에 뺏은 화장품을 돌려주자 녀석은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화장하는 시간을 아껴 공부하는 데 전념할 것을 약속했다. 그 약속이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이 나의 큰 고민 하나를 덜어 준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녀석의 졸업 선물로 어떤 선물을 해줘야 할지 고민했는데 오늘 그 고민을 해결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선물로 준 화장품으로 화장한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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