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초등학생 한글교육 학교가 책임진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첫해인 내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의 한글교육이 대폭 강화된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무리한 받아쓰기를 시키거나 유치원 등에서 초등 대비 성격으로 일기쓰기 등을 시키는 것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1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확정·고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최근 개발된 초등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는 한글교육이 약 55차시(차시는 시간의 의미. 초등 1시간은 40분 수업) 분량으로 담겼다.
아직 개발 중인 초등 1학년 2학기와 2학년 1, 2학기 교과서 속 한글교육 분량까지 모두 합치면 1∼2학년 전체 한글 수업은 총 60여 차시 분량이 될 것이라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이는 현행 초등 1∼2학년 한글교육 시간(27차시)과 비교해 배 이상 증가한 것이자 지난해 고시된 초등 국어과 교육과정안이 제시한 분량(최소 45차시 이상)과 비교해서도 훨씬 늘어난 양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내년 초등 1∼2학년, 2018년 초등 3∼4학년과 중1·고1, 2019년 초등 5∼6학년과 중2·고2, 2010년 중3·고3 등으로 순차 적용된다.
이에 맞춰 교육부는 내년 초등 1∼2학년이 사용할 교과서를 새로 개발 중이며,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의 경우 현재 현장 검토본이 나와 심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특히 한글교육 시간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용 면에서도 강화된 지침에 따라 교육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컴퓨터, 스마트폰 사용 등이 늘면서 갈수록 한글을 종이 위에 직접, 정확히 써 볼 기회가 줄어든다는 판단에서다.
교과서와 함께 개발된 교사용 지도서에 '연필을 바르게 잡고 바른 순서대로 쓰는 등 기초학습을 탄탄히 한다' '입학 초부터 어려운 받침 등이 들어가는 무리한 받아쓰기로 한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한다' 등의 유의사항도 담았다. 국어 외에 1학년 1학기 통합교과, 수학 등 다른 교과서에도 글자 노출을 최소화하고 듣기, 말하기 중심으로 교과서를 구성해 학생, 학부모들이 한글을 읽고 쓰는 데 부담을 한층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은연중에 보호자에게 한글교육을 권유하거나 일기쓰기 등 초등 저학년 수준의 활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를 통해 각 유치원 등에 안내하기로 했다. 이처럼 교육부가 초등 한글교육 강화에 나선 것은 언제부터인가 학교에 가기 전에 한글을 떼고 오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져 사교육이 늘어나는 한편, 사교육이 어려운 다문화 가정 학생 등도 증가하는 현실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적어도 모국어만큼은 공교육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판단"이라며 "과도기를 거쳐 학부모들이 정말로 '학교에서 한글을 책임지는구나' 하는 인식을 하게 되면 선행교육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2016년 8월 1일 자 연합뉴스 인용)
한글교육 모든 공부의 시작-호기심과 배우는 즐거움, 1학년 때 느끼도록
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을 여러 해 맡고 있다. 저경력의 선생님들이 1학년 담임을 힘들어하는 이유가 첫째이고 학교 측의 염려가 많아서였다. 1학년은 평생학습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1학년의 학습 경험이 공부상처를 남기지 않으면서 학교는 즐거운 곳이고 공부란 의미 있고 재미있다는 경험을 안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하기, 예의 지키기와 같은 기본생활 습관 형성을 비롯하여 책을 좋아하게 하는 일, 친구를 소중히 하는 일과 같이 차원 높은 인간관계를 배워가는 인생의 결정적 체험이 자리를 잡는 귀중한 시기다.
그런데 국가가 요구하는 교육과정을 미리부터 배우고 오는 입학생들이 늘어나면서 1학년 입학 전부터 선행학습으로 한글을 줄줄 읽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과반수를 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겪는 공부상처는 도를 넘기 시작했다. 한글 교육에 투입되는 학습 시간도 부족하니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1학년 때부터 한글 받아쓰기를 하는 상황이 연출되다보니 그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글자는 추상이다. 그러니 글자에 오랜 동안 노출되고 가지고 노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 그것은 시간이 걸린다. 개인차도 존재한다. 문자에 빠른 학생이 있는 가하면 이미지에 익숙한 학생도 있다. 개인차만큼이나 문자를 습득하는 과정도 다 다르다. 최소한 1학기 정도를 문자에 익숙한 환경으로 글자와 놀게 해주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글자를 통문자로 깨닫는 시기는 어느 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은 선생님도 부모도 아이도 모른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랜 노출의 경험과 축적된 시간이 임계점에 도달해야 비등점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아이들은 동공이 커지고 뭐든 신기해하며 글자에 몰입한다. 그 기쁨의 순간을 목도하는 행복감은 곁에서 지켜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기도 하다. 뭐든 물어보고 쓰기를 즐긴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그 모습이 주는 희열 때문에 1학년 담임을 또 맡곤 한다. 글자를 깨닫는 순간 그들에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교육은 아이들에게서 그 기쁨을 빼앗아 왔다. 억지로 노출시켜서 어렵게 글자를 익히는 고생을 시키며 선행학습을 해 왔으니, 이 나라 학생들이 공부를 즐기지 못하는 병폐의 시작은 한글 교육의 선행학습이라고 단언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하는 학생이 입학했다. 그런데 지금 그 학생은 우리 반에서 글씨를 가장 바르게 쓰고 연필 잡는 손 모양도 정석이다. 아직 받침 없는 글자를 읽는 정도지만 그 학생의 상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친구들이 글자로 의사표현을 할 때 그 학생은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하도록 하거나 그가 한 말을 내가 써 주곤 했다. 그 학생은 교내 흡연예방 그림그리기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글자 대신 이미지를 표현하는 상상력과 호기심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각종 체험학습 그림일기 쓰기도 아주 잘한다. 글은 서툴지만 그 아이가 말한 대로 써주면 그대로 베끼는 일을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글자도 많이 익혔다.
우리 반에서는 과감하게 받아쓰기도 최대한 줄였다. 한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아는 동물 이름을 쓰게 하는 수준에 그쳤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낱말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 받아쓰기는 상상력 제로, 거기다 재미도 없는 영혼이 없는 공부라고 생각해서다. 그 대신 책을 읽어주거나 재미있는 동시나 동화를 여러 번 읽어주고 자동적으로 암송하게 하는 일을 공부 시작 전에 다 같이 하면서 즐기는 시간을 갖곤 했다. 글자는 몰라도 듣고 외우는 일은 노래를 부르듯 반복하면 잘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 글자씩 깨달으며 즐거워하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손가락 발달이 진행 중인 1학년 학생들에게 쓰기 숙제는 최대한 즐여야 한다. 그것은 학습이 아니라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반은 알림장 쓰는 시간도 없다. 필자가 원고지 공책에 써서 학교의 알림과 학습 준비물, 행사 안내를 모두 한 장의 칸 공책에 날마다 써서 복사해서 주면 된다. 부모님은 그걸 읽어 주시고 체크하면서 챙기다 보니 학교의 알림 내용이 100퍼센트 전달된다. 숙제로 몇 글자 쓰는 것도 거기에다 하면 된다. 새롭게 배운 한자 몇 자도 곁들여 매일 쓰다 보니 한글과 한자를 같이 배우기도 한다. 알림장 쓰느라 놀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서 좋고 글자를 쓰느라 낑낑대지 않아서 좋아한다. 글자를 다 아는 2학년쯤에 알림장을 직접 써도 된다고 생각해서다.
이제는 앞서가는 교육보다 함께 가는 교육을
필자가 늘 쓰는 말이 있다.
"글자 공부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친구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나중에 배울 수 없어요. 글자를 배워가는 중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바르게 글씨를 쓰고 연필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해요. 쓰기 쉽다고 함부로 연필을 쥔 손은 어른이 되어서도 고치기 어렵답니다. 이미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이 책을 읽어 주면 되고 안내장도 시험지도 읽어주니 걱정하지 말아요. 글자는 못 써도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아인슈타인도 에디슨도 글자를 늦게 읽었대요. 그리고 글자를 아는 친구는 글자를 잘 모르는 친구를 놀리면 안 돼요. 친구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에요. 아주 나쁜 일이지요. 정말로 친구를 위한다면 그 친구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옆에서 친절하게 읽어주는 친구가 정말로 좋은 사람이랍니다."
교육부가 내놓은 이번 정책은 두 손을 들고 환영하는 바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집에서 일찍부터 한글을 배우느라 엉망이 된 연필 잡는 모습은 1학년 담임으로서 가장 고쳐주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글자를 미리 알고 온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글자는 읽지만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읽어서 그게 무슨 말이지 문해력이 터지지 않아서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선행학습을 해온 아이들의 학습태도가 가장 나쁘다는 점이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문자의 틀에 갇혀 오는 게 대부분이다. 거기다 글자를 좀 안다고 자만심에 젖어있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에는 교우관계까지 망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1학년 학부모에게 특별히 당부 아닌 경고를 한다고 한다. 선행학습을 하지 말고 입학하라고! 그런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학급의 학습을 방해해서 친구들의 학습 의욕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라고. 이제나마 대한민국의 교육의 문제점이 초등학교 1학년의 선행학습에 있음을 간파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첫 단추를 제대로 찾은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공부도 때가 있다. 성장과 발달이 준비된 1학년 때 차분히 한글을 깨치도록 받아쓰기도 줄이고 글자로 즐겁게 놀듯이 게임하듯 배우게 하자. 학습의 첫 차부터 초고속으로 태워서 아이들을 어지럽게 하는 일만은 하지 말자. 교육에도 느림의 철학이 절실하다. 우리 아이들이 멀리, 함께 갈 친구들과 놀이처럼 즐겁게 학습열차를 타게 하자. 이제는 옆집 아이보다 앞서가는 교육이 아니라 함께 가는 교육이 필요한 시대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