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 제자의 결혼 부조금도 김영란법에 걸릴까?

2016.10.17 09:04:00

졸업한 지 십 년이 지난 제자의 결혼식에 다녀오다.

수요일(12일). 2교시 수업을 마친 뒤, 교무실에 들어오자 최 선생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편지 한 통을 건넸다.

“김 선생님, 제자에게서 온 편지인 것 같습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 쓰인 이름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얼굴은 잘 떠올려지지 않았다. 편지 내용이 궁금하여 조심스레 봉투를 뜯었다. 봉투 안에는 자필로 쓴 편지와 청첩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서 제자는 그간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결혼식 일자(15일)와 시간(오후 4시), 장소(경기도 고양시)가 적힌 청첩장을 동봉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졸업한 지 워낙 오래되어 제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제자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보관해둔 교무 수첩에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자가 누구인지 어슴푸레 떠올려졌다.

학창시절, 제자는 말이 없고 얌전해서 내가 담임이 아니었다면 이름조차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수업시간이나 가끔 복도에서 마주칠 때 이름을 불러주면 제자는 얼굴을 붉히곤 하였다.

그리고 졸업한 뒤, 제자와 연락이 끊겼고 졸업한 뒤 모(某) 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그 아이의 친구에게서 들은 것이 전부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던가? 제자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왔다. 제자는 편지글 마지막 부분에 담임인 내가 결혼식에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식장이 이곳 강릉과 먼 거리이고 결혼식 요일이 주말이라 참석 여부가 애매했다. 더군다나 결혼식 시간도 오후 4시라 고민이 되었다.

처음에는 전화통화만 할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결혼식에 와달라는 제자의 간곡한 부탁이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주말의 모든 선약을 취소하고 제자의 결혼식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결혼식 날 제자를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나의 참석을 제자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자의 결혼에 부조(扶助)한 적이 없는 나는 부조와 관련, 조언을 얻고자 작년 겨울 제자의 결혼식에 다녀온 적이 있는 최 선생에게 물었다.

“최 선생, 작년 ○○이 결혼식에 부조(扶助) 얼마 했어?”

그러자 최 선생은 대답 대신 지난달 시행된 김영란법을 운운(云云)했다.

“김 선생님, 김영란법 때문에 제자 결혼 부조 액수도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신고할지도 몰라요?”

최 선생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한편, 최근 선생님들이 김영란법에 너무 지나친 반응을 보인다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제자가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부조를 준비하기로 했다.

토요일(15일). 주말이라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해 제자의 결혼식장으로 일찍 출발했다.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그리고 약 4시간 정도 걸려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예식장은 많은 하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김영란법 때문인지 일부 예식장 입구에는 화환과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은 곳도 있었다. 먼저 제자의 부모와 수인사를 나눈 뒤, 제자를 만나기 위해 신부대기실로 찾아갔다.

신부대기실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던 제자는 생각지도 않았던 담임의 등장으로 화들짝 놀랐다. 나를 보자, 제자는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는듯했다. 그러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 제일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처럼 신부대기실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제자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예뻐 보였다.

식장으로 들어가는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자의 행복을 빌었다. 잠깐이나마 예식을 지켜보면서 사진 몇 장을 내 스마트 폰에 담았다. 그리고 간단하게 요기(療飢)를 한 뒤 조용히 식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는 단풍 나들이 인파로 지·정체가 반복되었다. 교통체증으로 다소 짜증도 났지만, 제자의 행복한 모습을 보아서인지 그다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자와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그 여운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졸업하고도 나를 잊지 않고 자신의 결혼식에 담임인 나를 초대해 준 제자가 고마웠다. 한편 교사로서의 보람이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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