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대목장이 사재 털어 개관
예산읍내에서 ‘서산’ 표지판을 따라 한참 달리다보면 ‘수덕사’라는 팻말이 보이고 자동차는 이내 4거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다시 거기서 왼쪽으로 홍성 표지판을 따라 2㎞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기와 지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팔각정도 보이는 모습이 흡사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의 본산지(?) 같은 인상을 주는 그곳이 한국고건축박물관이다.
한국고건축박물관은 1998년 10월에 개관했다. 설립자는 중요무형문화재 74호로 지정된 이 지역 대목장 출신의 전흥수 관장. 전 관장은 사재 100억여 원을 박물관건립에 투입했다.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기능을 전승 발전시키지 못하고 당대에 끝나고 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고건축 분야의 기능과 기법을 전승 발전시켜 우리 고건축 문화전승계발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시작했습니다.” 1960년부터 40여 년 가까이 문화재 및 사찰 복원·수리 작업 등 고건축일에 종사해 온 전 관장의 일생일대의 결과물인 셈이다.
1/10 축소된 국보급 모형 건축물 전시
입구를 들어서면 6천여 평의 박물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법 덩치가 큰 건물 대여섯 채가 앞으로 보이고 입구 오른쪽 바로 옆으로는 옛날 각 고을의 관사(官舍)인 객사의 출입구 역할을 했던 객사문이 서 있다.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제1전시관이다.
약 1천 평 규모인 이 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국보 제1호인 남대문. 남대문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기공한 것으로 한국의 성문 유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 그 웅장한 규모의 성문이 10분의 1 크기로 축소되어 전시되어 있다. 물론 남대문의 건축법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국보 56호인 송광사 국사전도 만날 수 있다. 천하 3보(寶)의 하나로 이름 높은 사찰인 송광사는 신라말기 혜림(慧林)이 창건하여 수선사(修禪寺)라 이름붙였는데, 1208년 왕명으로 송광사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국사전은 송광사의 3조사(三祖師)의 화상(畵像)을 안치하기 위하여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창건한 건물이다. 또 국보 제19호인 영주 부석사의 조사당(祖師堂)도 볼 수 있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명찰. 무량수전 뒷산의 높직한 곳에 떨어진 자그마한 건물인 조사당은 의상 대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고, 자장율사에 의해 중축되었던 대가람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 국보 67호), 고종황제가 1897년 러시아 공관으로부터 덕수궁으로 옮긴 후에 재위하는 동안 정전(正殿)으로 사용하던 중화전(中和殿, 보물 제819호), 국보 50호인 전남 영암 도갑사의 해탈문, 강원 강릉의 객사문(국보 51호) 등 20여 점의 국보급 고건축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한쪽에는 고건축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다양한 소품들도 있다. [PAGE BREAK]목수들이 직접 사용하는 연장과 아름다운 문양의 문살, 다양한 양식의 공포(간단히 ‘포’라고도 하며 기둥 위에 놓여서 지붕의 하중을 원활하게 기둥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구조도 정리되어 있다. 특히 각 주요 공포 요소요소에 누구나 찾기 쉽도록 각각의 명칭을 써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올해 말에 완전한 모습 보일 계획
1전시관 오른쪽으로 팔각정을 등에 업은 2층 건물이 있고, 이 건물의 1층에 2전시관이 있다. 이 전시관에는 국보 및 보물급 사원건축물을 축소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 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알려져 있는 부석사의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백제 의자왕 14년(654) 혜감국사가 창건한 충남 서산 개심사의 대웅전(보물 제143호), 정방형 평면의 단층 사모 지붕을 이뤄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로 알려져 있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원통보전(圓通寶殿, 보물 제916호) 등 20여 점이 선보이고 있다. 2층에 마련될 3전시관은 아직 준비중이다. 그리고 그 위의 팔각정은 전통 팔각정 양식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형태로, 올라서니 박물관 안팎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각종 학술회의와 세미나를 개최하는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최종길 총무부장은 밝힌다. 제1전시관 뒤편에는 실제로 목수들이 모형작업을 하는 작업장이 있다. 그곳에서 몇 명의 목수가 전기 대패를 돌리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고건축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만들 터”
일반인들에게 공개중이지만 한국고건축박물관의 완성도는 80% 수준. 아직도 곳곳이 마무리 작업중에 있다. 그리고 사대부 가옥뿐 아니라 평민가옥, 초가삼간 등 우리의 전통생활건축물도 지을 계획이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인식시키는 장
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문화를 배우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산 교육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전 관장은 올해 안에 모든 공사를 끝내고 박물관으로 본격적인 기능과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문화재 기능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들을 위한 상설 전시장을 개설하고 나아가서는 기능인 양성을 위한 교육활동도 하겠다는 계획이다.<강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