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15세의 한 중학생이 어머니 시신과 6개월 동안 함께 살다가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에 너무도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필자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부분은 일부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비난조의 기사였다.
'15세 중학생이 어머니 시신을 6개월 동안 옆방에 두고 함께 보냈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웃도, 친구도, 선생님도 그 오랜 시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조선일보 2003년 12월 6일)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중학교 3년생이 어머니가 숨지자 시신과 함께 6개월이나 생활했으나 학교, 동사무소, 친구나 이웃 등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아 모르고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중략) 송 군의 학교에선 송 군이 지난 5월 28일 "어머니 병이 악화돼 간호해야 한다"며 조퇴하고 6월9일 이후 6개월여 무단 결석했는데도 찾지 않다가 고교 입학원서를 쓸 무렵인 11월 중순쯤부터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경향신문 2003년 12월 6일)
'문제는 여섯 달 넘게 학교를 결석했던 송 군을 담임선생님이 찾을 때까지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입니다. (중략) ⊙ 기자:동사무소에 이사신고를 하지 않아 송 군을 찾기가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학교 측 태도 역시 안타깝기만 합니다.'(2003년 12월 5일 KBS뉴스)
잘못 사용된 촌철살인의 힘
위의 기사를 보면 담임교사나 학교 측에서는 송 군에게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학교에 나오지 않는데도 학교에서 방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기사였다. 그리고 이런 보도가 나가자마자 인터넷에서는 담임교사와 학교를 비난하는 내용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오마이뉴스와 동아일보의 보도로 진실이 밝혀졌다. 담임교사의 경우에는 용인에서 이천까지 출퇴근하면서도 매일같이 찾아다녔고, 3학년 부장교사의 경우도 7번이나 송 군을 찾았었고, 시장에게 송 군을 도와달라는 편지까지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체를 찾게 된 날도 직접 보일러를 고쳐주기 위해서 찾아왔을 정도로 교사들과 학교는 송 군에게 정말 수많은 관심과 노력들을 기울여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고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던 사건이었다.
미디어는 촌철살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사용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따라서 미디어는 어떤 사실을 이야기할 때 매우 신중하고 정확한 사실을 근거하여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미디어는 학교와 교사들을 다루면서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을 반영하는 사례들이 무척 많다. 최근 학교나 교사들을 다루는 미디어가 매우 많이 늘고 있다. 학생들이 보는 만화책에는 학원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학교 이야기를 다룬 내용들이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사람들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교에 관련된 내용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학교 이야기들 속에는 어김없이 교사가 있고, 그런 교사의 모습들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많은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교사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그리고 신문이나 뉴스보도에서 보이는 교사의 모습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상업성 속에 감춰진 살신성인
예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교사들에 대한 묘사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주제에서 좋은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드라마들이 많았었다. 필자 역시 어릴 적 <호랑이 선생님>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선생님을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고, 도시락을 못 싸온 학생을 위해 자신은 굶으면서도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주거나,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을 위해 월급을 털어서 수업료를 내주는 교사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들이 자주 등장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의 교사 모습들과 비교해보면 과거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들을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 아닌 애정행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교사 역시 제자들을 제자로서 바라보기보다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교사들의 촌지문제나 타락한 모습들, 폭력의 장이 되어버린 교실에서 무능하고 나약한 교사로 묘사하는 내용들이 과거와 비교해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로망스>에서는 10대 남학생과 여교사와의 사랑을 다루었었다. 물론 이런 설정들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성한 배움의 장소인 교실에서까지 욕망에 사로잡힌 교사가 학생과 키스를 하고, 둘이 여관에 가는 장면은 교원단체의 많은 항의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로망스> 이후 많은 드라마가 '남학생과 여교사'의 소재를 가져오고 있다. 실제 작년 10월 SBS 뉴스에서는 요즘 대중문화 주요 코드로 남제자와 여교사가 부각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SBS의 <건빵선생과 별사탕>, KBS의 <러브홀릭>이 이런 소재를 활용하고 있으며, 영화나 CF에서까지 이런 소재들을 차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아무리 특별한 내용도 자꾸 반복하다보면 일반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청소년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디어 매체에서 여교사를 계속 반복해서 애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다보니, 이제는 학교에서도 여교사가 남학생들에게 더 이상 존경과 배움의 대상인 '교사'로서 바라보기보다 '애정 쟁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학생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실제로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런 일들에 대한 사례들이 주변에서도 속속 이야기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여교사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촌지문제를 비롯한 교사들의 비윤리적 측면에 대한 영화들 역시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 2003년 영화 <선생 김봉두>를 비롯해서 많은 드라마 역시 촌지를 받는 교사가 소수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당연한 관행처럼 이야기한다. 또 <몽정기2>에서는 여제자의 몸매를 음흉하게 훑어보는 교사들과 제자들의 육탄공세를 즐기는 교생선생님들을 다루고 있고, 최근 나온 <연애의 목적>에서는 애인 있는 남교사가 역시 애인이 있는 교생과 육체적인 욕망을 즐기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비윤리적인 모습들의 등장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헌신적으로 교육하고 있는 정직한 선생님들의 경우에도 이런 드라마 때문에 학생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부작용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교육은 학생과 교사 사이에 신뢰감과 믿음이 절대적 요소이다. 따라서 이런 내용들은 교사의 가장 큰 무기를 빼앗는 결과로 작용되고 이로 인해서 교육현장에 찬물을 붓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부 영상매체의 학원물 상당수는 폭력과 결합한 내용들이 많다. 학교나 교실 안에서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폭력을 행사하는 내용들이 빈번하다.
문제는 이런 폭력의 현장 한쪽에는 교사의 모습이 어김없이 무능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 주인공인 청소년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교사가 영상에서 교실을 주도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교사는 폭력이 난무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교사는 그냥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학생들에게 무시되어진다. 이런 교사의 모습 속에서 어떤 권위를 찾을 수 있겠는가? 이 밖에도 영상에서 그리는 교사의 존재는 답답한 존재, 고지식한 존재,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 교사가 학생들의 놀림의 대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 시트콤에서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교사는 엉뚱하고, 눈치 없고, 히스테리를 많이 부리는 캐릭터로 등장하여 항상 학생들의 놀림을 받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평범한 이야기보다 특별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이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는 평범하기보다는 특별한 내용을 다루어야 사람들에게 선택되어진다. 그래서 정상적인 남녀의 사랑보다는 불륜이나 동성애 또는 엄청난 나이차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일반적인 학교의 모습보다는 특별하거나 독특한 학교들을 소재로 한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교사보다는 엉뚱하고 놀림당하는 교사, 정직하고 능력 있는 교사보다는 비윤리적이고 나약한 교사가 영상의 소재로 선택되어진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특별한 이야기에 자주 접하다보니 특별한 이야기가 마치 보편적인 일상사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PAGE BREAK]자극적 내용으로 교사 왜곡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매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뉴스는 보도되는 내용 그대로 사실로서 사람들을 각인시키며, 이는 학교 현장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뉴스에서조차 학교를 왜곡된 모습으로 보도한다거나 어떤 사건을 너무 크게 부각시켜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할 때가 많다. 특히 체벌에 대한 논란이나 교육 붕괴의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시키는 태도들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비해서 체벌은 체감할 정도로 많이 줄었다. 우리의 교육에서 체벌은 전통적으로 용인되어오는 학교현장의 문화였다. 그래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자녀나 제자가 잘못을 하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최근 체벌논란은 교사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사의 체벌을 다룬 뉴스들을 보면 대체로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원인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보도는 폭력적인 교사의 처벌을 다룬 내용들이 많다.
대부분의 언론이 교사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이로 인해서 학생들이 전치 몇 주의 부상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학부모가 흥분한 상태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한다. 그러나 이 때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교사가 왜 때렸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학생은 별 잘못이 없고 아무 이유 없이 때리는 교사는 매우 비이성적이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대상으로 취급되며, 이로 인해서 흥분한 독자와 시청자들은 교사 개인보다는 교사 전체를 화풀이 대상으로 취급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체벌을 폭력으로 단정 짓는 태도이다. 체벌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논란의 대상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체벌하는 교사를 미개인으로 취급하거나 매우 비이성적인 교사로 보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체벌에 대해서 앞으로 지양해야 할 산물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의 교육문화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시킬만한 교육시스템은 가동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한순간에 체벌문화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며 사회적인 합의도 중요하다. 따라서 언론은 현재의 체벌 문화를 무조건 정죄하기보다는 가급적 체벌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체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보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비난에만 초점을 맞추는 보도
SBS에서는 지난 2005년 10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8시 뉴스에서 '위기의 선생님'이라는 시리즈의 기획물을 내놓았다. 그 첫 방송에서 방송사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교 소속감, 교사의 사기 및 열의, 교사 헌신도가 OECD국가에 비해서 매우 낮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세 가지가 낮기 때문에 공교육 붕괴가 일어나고 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시리즈를 시작한다는 기획의도와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후의 방송들로 하여금 많은 교사들이 사기와 열의를 잃었으며, 학생들에게 헌신하던 많은 교사들을 허탈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말 교단 개혁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했을까'라는 의문과 왜곡된 보도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충분했다. SBS에서는 처음 기획의도를 밝히는 부분에서 학부모의 울분과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는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교사들의 과중한 업무나 고충, 존경받는 선생님도 함께 보도하면서 우리교단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목적을 밝혔다. 그러나 실제 계속 되는 시리즈의 대부분은 교사에 대한 비난들이 주를 이루었다.
제목들도 매우 자극적이다. '교단개혁 시급', '상처받는 아이들', '체벌, 사랑의 매인가?', '엄마는 도우미?', '처벌은 솜방망이', '철밥통 교사직', '찬조금 또 다른 촌지', '학교보다 학원이 좋아요', '아이가 불모인가요?' 등이다. 그러면서 뉴스 내용도 매우 일부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둔갑시켜서 보도하고 있는 것도 매우 많았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일지라도 한 두 명의 교사 때문에 수십 명의 학생들이 아파할 수 있기에 우리가 안고가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시리즈 내용들이 너무 과장되고 편향되며 치중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시리즈물 편성에서 교사의 고충을 다룬 기획물(선생님, 행정중심 환경에 부담 느껴)과 존경받는 선생님(선생님 사랑해요)을 다룬 내용, 그리고 대안을 담은 내용(이런 평가 어때요)은 겨우 한 편씩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내용으로 보도된 '위기에서 기회로' 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희망을 보여주는 메시지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모든 시리즈물을 마무리하였다. 정말 실제로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 할 부분들은 한 편씩으로 생색 정도로 그치고 비난 내용으로 가득 찬 시리즈물에서는 바람직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교사들에 대한 불신만 높아지고 학교교육보다 학원 교육을 홍보하는 듯한 시리즈물들은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은 물로 교육환경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디어에 의한 부작용 줄여야
방송이나 신문은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그 동안 학교나 교사들은 순수하고 깨끗하며, 검소한 교육자나 스승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상하는 이런 평범한 이야기는 이제 쉽게 주목받지 못한다. 따라서 좋은 선생님, 고생하는 선생님은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단지 순수하게 인식되어왔던 교사가 순수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만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지나칠 이야기도 교사의 행동은 뉴스의 기사가 될 수 있다. 또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런 소재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학교나 교사를 다룬 미디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또 미디어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교사의 권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교사의 가르치는 일부 기능을 미디어가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교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아이들이 이제 교사가 아니라도 컴퓨터 속이나 텔레비전 속에서 교사의 기능들을 일부 담당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시대에 교사의 권위가 계속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참다운 인생의 스승으로 서야 한다. 지식 전달은 이제 교사만이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따라서 교사는 미디어가 할 수 없는 인생의 조력자와 인간됨을 가르치는 진정한 인생의 스승으로 남아야 된다. 학생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들어주고, 아파할 때 위로해주며, 괴로워할 때 어루만질 수 있는 역할들을 같이 감당해야 한다.
둘째로 교사의 권위는 교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미디어에서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약화시키더라도 교사가 제대로 서 있다면 이를 만회할 수 있다. 수업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수업하고, 학급에서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헌신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면 아무리 미디어에서 교사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있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선생님을 진정한 스승으로 생각할 것이다.
셋째로 미디어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 미디어에서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들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미디어를 보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학생들로 길러야 한다. 앞으로도 미디어에 의한 교권약화는 계속되어질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정보가 왜곡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보다 학생들 스스로 분별해서 판단할 수 있는 성숙한 학생들이 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따라서 학생들이 미디어의 특징들과 생리들을 알 수 있도록 교육한다면 미디어에 의한 부작용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개혁 대상이 아닌 주체
미디어도 이 땅의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같이 노력해야 한다. 첫째, 미디어는 그 영향에 대해서 항상 고민해야 한다. 많은 미디어가 좋은 기획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거나 만들어지지만 가끔씩은 의도와는 다르게 교육에 방해가 되거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때가 많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태도를 가지게 한다던지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려 학교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고, 청소년들의 잘못된 가치관이나 습관형성을 일으켜 학교에서 많은 어려움을 가지게 한다.
둘째, 공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상업성을 추구해야 한다. 일부 미디어의 경우 시청율과 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 윤리적 양심을 버리고 공익성을 해치거나 개인 또는 특정 집단에게 해가 되는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회사임과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과 파급력을 끼치는 공익성을 같이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공익성과 상업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적절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셋째, 교사는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많은 언론들이 교사를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취급하여 교사를 매우 적대시하는 보도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의 순수한 동기에 의한 마음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교사를 억지로 제도와 규제에 의해서 끌고 가는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주체로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주위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교육에 관련된 미디어보도 방식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보도처럼 일부 교사를 비난하고 문제시하여 교사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오히려 교사집단의 반발을 불러와 역효과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집단이기주의에 흘러가지 않도록 교사에 대한 감시와 견제기능에 충실하되 긍정적인 방식의 방법으로 우수사례와 대안들을 제시하는 역할들에 대해서도 높은 비율이 할당되어야 한다.
이처럼 올바른 교육의 필수적인 항목인 교사의 권위는 미디어만의 노력도 교사만의 노력으로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교사는 스스로 낮아지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을 아름답게 섬겨주는 진정한 스승으로 거듭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미디어를 통해서 항상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또 미디어 역시 미디어의 강력한 힘을 무책임한 비난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교육의 내일을 위해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리적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이 두 가지의 노력들이 함께 되어질 때 비로소 우리 교육은 지금보다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