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장애학생과 정상학생의 통합교육 적용을 통한 사회적응력 향상’을 주제로 장학지도가 있는 날이었다. 몇 가지 장학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평소보다 서둘러 출근한 덕분인지 꽤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어 습관처럼 책을 펼쳐들었다. 요즘 새로 읽기 시작한 욜란다 킹의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나 아닌 남들과 경계를 지으려 한다. 무수히 그어진 선들은 나를 남들과 단절시키고 고립시켜 삭막한 삶 속에 던져진 외로운 존재로 몰아간다. 이제 정신적 경계를 해제하고 낯선 친구와 낯선 문화를 관대하게 대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되었다.”
‘통합교육, 사회 적응력, 낯선 친구, 공존….’ 잠깐 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너와 나의 구별 없이 모두 어우러져 행복한 세상, 그것은 바로 통합교육이 지향하는 학교와 사회의 모습이었다. 모두가 환영받고 모두가 소속되며 자신의 능력에 적절한 교육을 제공받는 통합학교를 향해 특수학교와 일반학교가 급격하게 재구조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통합교육이라는 시대정신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지혜를 전하는 이로서 필자의 할 일은 참으로 많은 듯하였다. 가슴이 뛰었다.
40년 전 작은 초등학교에서 시작되었던 평범한 필자의 교직 생활은 장애를 가진 한 제자와의 만남을 통해 특수교육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려움도 많았지만 장애를 가진 제자들과 함께한 다양한 경험들은 필자의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가장 깊게 보람을 느낀 것은 특수학교에 봉직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장애학생과 정상학생이 더불어 살아가는 인성과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이 함께 노력했던 경기 성남 혜은학교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이며 힘들 때마다 필자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되고 있다. 통합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가 얼마 전까지 혜은학교를 경영하며 경험하였던 통합 교육 실천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장애아의 사회적응 위해 통합교육 실시
특수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대부분이 장애인을 격리하여 보호하는 시설로 다시 옮겨지거나, 실업과 빈곤, 질병에 시달리며 낮은 삶의 질을 누리는 그동안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필자는 특수학교를 경영하면서 장애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지역사회에 무난하게 적응하는 것을 제일의 과제로 생각했다.
정상인들과의 만남이나 교류 기회가 배제된 상황에서 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한계가 있고 학교 졸업 후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많은 분석 결과들을 보면서 통합교육 실천 활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다행히 혜은학교 인근에는 이미 혜은학교와의 통합교육 경험이 있거나 통합교육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결연을 허락한 학교들이 제법 많이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통합 교육을 시도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형성되어 있었다.
통합교육의 실시에 앞서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의 어려움과 기대사항을 바르게 알고 시작한다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이루리라 기대하면서 먼저 그들의 생각을 설문으로 조사하고 분석하였다.
일반교사, 학생 “장애학생은 난감해”
설문을 분석한 결과 통합교육을 담당할 결연 학교의 일반 교사들은 학생들의 개인차에 대한 인지는 있으나, 장애 이해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고, 장애 학생의 부적응 행동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해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혜은학교의 교사들은 통합에 참여하는 일반 학교의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아 혜은학교 학생 수와 불균형이 심하며, 일반 교사들이 적극적이지 못한 부분에 아쉬워하고 있었다. 적정수의 인원배치와 효율적인 관리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통합을 위한 길과 방향을 찾아 함께 나아가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 되는 듯했다.
통합 교육에 참여하게 될 학생들은 장애 학생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통합교육 경험이 있는 학생의 대부분도 장애 학생과 함께 공부하면서 장애에 대한 많은 궁금함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처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의 변화를 조절하기 어려웠다고 답하였다.
장애에 대한 정보나 준비 없이 장애학생을 친구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애 학생들과 정상 학생들의 바람직한 성장과 서로의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해하도록 장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르치고 장애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였다.
통합교육의 필요성과 그 효과에 대해 장애학생의 부모들은 모두 긍정적이고 협조적이었으나 결연학교의 학부모들은 중립적인 경향이었다. 정상학생의 부모들은 장애 학생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녀가 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과 장애 학생들이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장애 학생이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를 느끼며 한편으로 장애 학생에 대해 연민을 많이 가지는 편이었다.
내 자녀가 장애학생과 함께 공부할 때 피해를 받는다고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이상 아이들은 절대로 발전을 거듭할 수 없다. 내 자녀가 장애인을 포용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 완성될 것이라는 일반 학부모들이 신뢰가 요구되었다. 인식개선을 위해 체계적으로 계획된 각종 연수 및 안내장발송과 개별상담 등의 노력이 필요하였다.
통합교육을 위한 학교 간의 협력
통합 교육을 위한 협력체제 구축하기 위해서 우선 통합교육 협력학교와 협력서를 체결했다. 학교 간 통합 교육은 학교장의 지원이 그 바탕이 되므로 충분한 사전 협의를 통해 통합교육의 추진 여부를 논의하고 1년 동안 통합교육 협력학교로서 양 학교 간 관리자의 지원과 협력을 도모할 것을 서약하였다.
다음으로 결연학교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통합교육의 발전 방향에 대한 간담회를 실시하였다. 양학교간 다각적 차원에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다시 한 번 결연한 자리였는데, 상호 긴밀한 협조 관계를 조성하여 일관되고 계속적인 통합교육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통합교육 담당 교사 간의 교사협의 시간을 가졌다. 통합 대상 및 통합 교과 선정, 통합 장소와 시간을 포함한 연간 교육 프로그램 작성, 대상 학생의 특성과 실태 파악 등 세부 운영 사항에 대한 협의를 위한 협의회였다. 서로의 고민과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전략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상호 접근과 상호이해가 가능해졌고, 이는 통합교육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PAGE BREAK]
장애 인식 개선 교육 실시
통합교육을 위해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했다. 우선 장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자체 제작한 장애 이해 자료로 장애의 유형, 원인, 특성 등에 대해 교육했다. 또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통해 일반학교 학생들이 그동안 궁금해 왔던 학생의 행동 특성에 관한 궁금증 해소와 장애 학생에 대한 접근방법에 대해 토의하였다.
또 실제 통합교육 사례를 담은 동영상을 함께 감상하였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자폐학생이 일반학생들과 적응해 나가며 차차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그린 통합 교육 이해용 동영상을 감상한 후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통합교육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음으로는 장애를 직접 체험하게 하였다. 흰 지팡이 체험과 목발 체험을 통해 장애인의 불편한 점을 정확히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활 속에서 장애 체험하기’ 과제를 통해 온 종일 가족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것과 휠체어와 목발이 무겁고 불편하고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일상생활에서 장애인들이 느꼈을 답답한 행동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답변이 많았다.
또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장애관련 책과 영화를 소개하면서 등장하는 인물의 장애에 대해 설명하고, 서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상황에 대한 토론을 하여 장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소감문을 쓰게 했다. 혜은학교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나서 느끼게 된 소감과 장애이해교육을 통해 느낀 점들을 적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통합교육에 대한 긍정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애인식 개선의 폭을 넓혔다.
활동 중심의 통합 프로그램 개발
1) 유치부-자유 선택 활동 프로그램
성남초 병설 유치원 학생들과 한 달에 한 번씩 통합교육을 실시하였다. 자유 선택 활동 시간에 교과를 통합하여 단원에 적절한 주제로 다양한 영역의 활동들을 준비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모둠을 정해 원하는 영역에서 어울려 활동하도록 한 후 느낀 점을 발표하게 하였다.
유치부 아동들은 처음에는 장애 아동들을 환영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부적응 행동을 경험한 첫 통합교육 시간이 지난 후 정상 아동들은 혜은학교 친구들에 대해 매우 난감해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은 오히려 더 빨리 친구가 되는 방법을 터득했고, 재미있게 놀았거나 함께 현장 학습을 간 일 등을 자랑하며 장애 친구에 대한 낯설음과 어려움 등은 모두 사라졌다.
2) 초등부-예·체능 중심 통합 교육
장안초, 희망대초, 성남북초와 한 달에 두 번씩 통합교육을 실시하였다. 각 학교를 상호 방문하여 예체능 수업을 하거나 통합 현장 학습, 요리 활동 등을 함께 하였다. 기본적인 지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지식 개념 전달 중심보다는 체험과 활동 중심의 교과로서 예체능과 재량활동을 통합하였다. 특히 다양한 집단 활동을 통해 협동적 자세를 기르고 또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기술의 습득에 교육의 초점을 맞추었다.
같은 모둠에 속한 아동들은 재량활동 시간에 처음에는 무엇을 하고 놀지 몰라서 막막해 보였으나 같이 놀면서 새로운 놀이를 찾아내며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장애 친구의 성장과 발전에 함께 기뻐하기도 하였다. 통합이 진행되면서 일반 아동들은 장애 아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양성에 대한 수용의 폭이 넓어졌다. 또 장애 아동은 친구들에게 수용되는 바람직한 행동이 증가되었으며 규칙을 잘 따르고 자기가 맡은 과제를 처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즐겁고 유쾌한 체험 활동 경험이 누적되면서 아동들은 다소 긴장과 갈등이 있어도 모두 행복해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아동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서로에 대한 넓은 이해를 가지는 작은 바탕이 되었다.
3) 중등부-특별활동 중심 통합 교육
중등부의 10개 특활부서가 창곡중, 영성여중, 성남여고와 계발 활동 시간을 통하여 통합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매주 한 번씩 풍생고 태권도부 학생들과 인근 체육협회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본교를 방문하여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과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태권도 수업을 지도해 주었다.
아름다운 학교 숲 마당을 가꾸기 위해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축제에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특히 통합 학교의 학생들이 주도가 되어 직접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혜은학교 학생을 위한 ‘따뜻한 마음, 나누는 사랑’이라 는 주제로 놀이와 요리 행사를 했다. 이러한 특별활동 중심의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 학생의 사회성 신장과 적극적 수업 참여 등의 효과가 있었다. 또한 일반 학생도 자신의 건강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장애 학생을 이해하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통합교육 이후 소중한 변화
통합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체험한 다양한 활동 속에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일반 학생의 경우 장애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이 사라지는 등 장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으며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올바른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개선과 함께 서로 돕고 사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장애를 가진 친구와 모둠 활동을 하면서 대화하고 서로 돕고 힘을 모으는 활동을 통하여 장애 친구들도 여러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친구이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라는 의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살 수도 없고, 불편함을 서로 나눌 때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장애 학생의 경우 통합 교육을 통해 질 높은 다양한 체험과 경험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협동심과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다. 일반 학생과 어울리며 상황에 대한 올바른 대처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배웠다. 그동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놀이를 하는 등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늘 쳐다만 봐 왔던 태도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활동에 접했을 때 비로소 학생들은 필요한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일반 학교 교사는 장애 학생에 대한 편견이 줄었으며 동정이 아닌 한 학생으로서 장애 학생을 받아들였으며 통합교육과정의 이해와 함께 통합교육의 협력자로서의 바른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고 배려할 줄 알게 되었다.
특수학교 교사는 장애 학생 중심의 통합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으며 여러 교사로부터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이를 프로그램에 반영할 수 있었으며 실제 통합교육 상황에서 장애 학생들이 배워야 할 준비기술들을 알 수 있었으며 이를 학습에 반영할 수 있었다.
통합 교육이 진행될수록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 속에 넘치던 느긋함과 사랑 그리고 아이들이 품어내던 향기로운 느낌은 지금도 필자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아이들의 그 맑은 마음 밭에는 이해의 싹이 자라고 온유함과 사랑의 싹이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큰 나무로 튼튼한 나무로 아름답게 결실을 맺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21세기는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일 거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통합교육을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노력하며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겪은 통합 체험들이 소중히 쌓여 긍정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개개인의 존엄성을 인식하며 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으로 같이 더불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행복한 교실, 행복한 학교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여러 사람의 숨은 노력이 쌓여 다양성과 개별성에 대해 관대해졌을 때 우리 사회는 진정 행복해 질 것이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는 학교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학교와 교사들에게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