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를 보신 적이 있나요?
1996년 동북아 5개국에 일시에 이상한 벽보 하나가 배포됐다. 백로 비슷한 몸체에, 부리가 검은 숟가락처럼 생긴 새의 그림과 제목을 영어로 큼지막하게 'Have you ever seen this bird before?'라고 쓴 벽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참가한 5개국의 국어로 같은 내용의 문구를 함께 적어 놓았다. 문자는 달라도 내용은 '이 새를 보신 적이 있나요?'라는 의미다. 여기서 '이 새'는 저어새.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타이완, 일본, 베트남의 조류관련 단체들이 공동으로 저어새의 생존 숫자를 밝히려고 만든 일종의 '조류 센서스' 포스터인 셈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집계한 저어새 수는 613마리였다. 이것이 이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저어새의 전부다. 그래서 우리나라 문화재관리청은 저어새를 천연기념물 제205호로, 그리고 환경부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뿐만 아니라 국제조류보호회의(ICBP)가 적색목록에 등재, 국제보호조로 분류한, 한마디로 희귀종 가운데 희귀종인 새다.
주걱 모양의 긴 부리가 특징
저어새는 황새목 저어새과에 속하며 긴 검은 색 부리에 하얀 깃털과 주걱처럼 길쭉하게 뻗은 긴 부리에 왜소한 다리가 매운 인상적이다. 바닷가 얕은 곳이나 간척지·늪지·갈대밭·논 등지에서 산다. 먹이는 작은 민물고기나 개구리, 올챙이, 곤충, 호수나 늪지 식물과 그 열매를 즐겨 먹는다. 1~2마리 또는 작은 무리를 지어 생활할 때가 많지만 20~50마리씩 무리를 짓기도 한다. 경계심이 매우 강한 편이다. 7월 하순에 4~6개의 알을 낳아 번식한다. 둥지 주변에서는 '허, 허, 허, 으르 험'하고 울며, 보통 때는 '큐우리 큐우리'하고 낮은 소리로 운다.
강화군 석도에 일부 번식 중
'조류 센서스'를 통해 겨울철을 지내기 위해 여러 나라로 분산한 저어새 수를 집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정도의 새가 과연 어디에서 번식하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일본의 NHK방송과 NTT(일본전신전화국)가 대만 월동지에서 20여 마리의 저어새에게 위성추적장치를 달아 매일 실시간으로 관측했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한반도 서해 접경지역의 무인도로 이동했다.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필자를 포함한 특별조사팀은 1998년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을 출항했다.
군의 통제를 받아 상륙한 강화군 서도면 석도에서 저어새 번식의 흔적을 발견한 후, 이듬해인 1999년 6월4일 동일한 장소에서 1천 여 마리의 괭이갈매기떼와 70여 마리의 가마우지 사이에서 번식중인 저어새를 찾아냈다. 섬 절벽의 골짜기에서 명아주와 쑥 사이에 튼 둥지에서 발견한 세 마리의 저어새 새끼들은 키가 약 40㎝정도로 새끼의 특징인 노란 부리와 함께 눈과 부리 사이에는 검은 반점이 있었다. 조사팀은 높은 언덕의 서쪽사면에서 10개의 저어새둥지를 추가로 발견했으며 20여 마리가 비도와 석도를 오가며 먹이를 찾는 현장을 확인했다.
10년 이내 멸종 확률 80%
조류학자들은 저어새가 황해의 무인도에서 번식하는 것과 관련, 사람을 비롯한 천적들의 간섭이 거의 없는데다 썰물 때 드러나는 방대한 갯벌에 풍부한 먹이가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어새들은 이곳에서 번식이 끝나면 10~20마리의 작은 무리를 지어 번식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차도와 강화도주변에서 서식하다가 9월부터 점차 큰 무리를 이루어 월동지인 대만, 홍콩 등으로 이동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과 국제조류보호회의(ICBP)가 저어새를 '10년 이내 멸종 확률이 80%로 추정되는 멸종위기 조류'로 분류한 멸종위기종 가운데서도 보호, 보존이 시간을 다투고 있는 새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저어새의 멸종을 막기 위해 앞다퉈 생존 대책을 마련 중이다. 2001년 9월 저어새 보호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환경운동연합과 강화시민연대 주최로 번식지인 인천과 강화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래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미국 등 관련국가간의 정기적인 조사와 보존대책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