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만이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요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조차 도구 사용을 인간의 독특한 특징으로 생각한다. 인류학자들의 이런 고정관념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180만 년 전의 석기 사용자 집단인 '호모 하빌리스'에게 최초로 호모라는 말을 붙여준 데서도 알 수 있다.
하빌리스란 '손을 잘 쓰는 사람'(handy man)이란 뜻이다. 인류 진화의 계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져 내려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유인원이고 호모 하빌리스부터가 인간(Homo)속에 속한다. 이처럼 도구의 사용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철사로 낚시 바늘 만드는 까마귀
하지만 까마귀가 도구를 가공할 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실제로 저명한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 2002년 8월호에는 까마귀의 누명을 벗겨 준 논문이 발표됐다. 옥스퍼드 대학 동물행동학자들이 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 섬에서 잡은 까마귀 '베티'에게 먹이가 들어 있는 좁은 통과 긴 철사를 주었다. 그랬더니 까마귀는 철사를 갈고리처럼 구부려 통 속의 먹이를 낚아 올렸다. 혹시 우연이 아닐까 해서 실험을 열 번이나 반복했지만 베티는 아홉 번이나 철사를 구부려 먹이를 낚았다. 야생의 까마귀는 돌이나 나무 틈 사이의 먹이를 사냥하는 데 나뭇가지를 쓴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빼앗은 뒤 철사를 주자 철사를 가공해 나뭇가지 대신 사냥 도구로 쓴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잘 까먹는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냐"고 비꼴 때가 많다. 그동안 까마귀는 건망증 심한 새란 누명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새 박사로 유명한 경희대 윤무부 교수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새를 새대가리라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구수한 말로 강연을 하면서 새에 대해 강연할 때 이 말을 절대 빼놓지 않는다. 새가 비록 머리는 작지만 바보 같은 동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도구의 사용은 동물에게서도 드물기는 하지만 꽤 많이 나타나며 인간만이 가진 능력은 결코 아니다.
굶주린 이집트 대머리수리는 부리로 돌을 집어던져 두꺼운 타조 알을 깨 먹는다. 갈라파고스 섬의 딱따구리 핀치 새는 선인장 가시를 입에 물고 나뭇가지 속에 있는 벌레를 빼먹는다. 핀치 새는 가시가 너무 길면 잘라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사냥 때마다 가시를 재사용한다. 검은댕기해오라기는 물에 작은 물체를 던져 이것이 먹이인 줄 알고 몰려온 물고기를 덮친다. 미끼낚시를 하는 셈이다. 북태평양에 사는 해달은 바다 밑바닥에 붙어사는 전복을 돌로 깨서 잡아먹는다. 앞발 사이에 돌을 끼고 잠수를 해서 전복이 부서질 때까지 돌로 내려친다. 또한 물가로 올라와서는 자신의 몸 위에 돌을 올려놓고 돌에 대고 조개를 내리쳐 깨먹는다.
동물원의 침팬지들은 긴 나뭇가지를 울타리에 걸치고 집단 탈출을 감행하곤 해 인간을 골탕 먹인다. 또한 침팬지는 가는 나뭇가지를 개미집 구멍에 집어넣어 여기에 붙어 나오는 개미를 핥아먹고, 나뭇가지로 땅을 파서 뿌리를 캐먹고, 나뭇가지를 지렛대로 이용해 바나나다발에서 바나나를 따낸다. 2002년 5월에는 서아프리카에서 500만 년 전 침팬지가 나무 열매를 까먹는 데 사용한 479개의 돌조각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침팬지는 나무뿌리를 모루로 이용해 날카로운 돌로 너트를 깨먹었다.
동료를 속이고 바나나 먹는 침팬지
동물도 행동을 모방한다. 일본원숭이는 행동을 잘 모방한다. 일본의 한 공원 관리인이 원숭이에게 먹이로 줄 감자를 들고 가다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른 원숭이와 달리 '이모'라는 원숭이는 흙 묻은 감자를 물에 씻어 먹었다. 그러자 모든 원숭이들이 이를 따라했다. 모방은 삽시간에 일어났다. 영국의 박새도 모방의 천재다. 추운 겨울 한 박새가 배달된 우유병의 종이마개를 부리로 찢고 그 속에 응고된 지방덩어리를 먹기 시작하자 곧 영국의 모든 박새가 이 행동을 따라했다. 결국 영국 우유회사들은 마개를 더 단단한 재질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속임수에도 능수능란하다. 물떼새는 둥지에서 새끼들을 품고 있다가 여우같은 포식동물이 접근하면 저만치 날아가 앉아 갑자기 날개가 부러져 잘 날지 못하는 흉내를 내며 퍼덕거린다. 그러다가 별 어려움 없이 먹이를 구했다고 생각한 여우가 가까이 다가오면 잽싸게 날아오르며 몸을 피한다. 새끼를 구하려는 속임수이다.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 살아온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에게 혼자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바나나를 주었다. 그러자 그 침팬지는 바나나를 자기만 아는 곳에 숨겨 놓고 조금씩 꺼내 먹었다. 침팬지 친구들이 바나나가 어디에 있냐고 아우성을 치자 그는 손가락으로 정반대쪽을 가리켜 속인 뒤 재빨리 숨겨 놓은 곳으로 가서 바나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를 속이고 혼자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사람이나 침팬지나 매한가지다.
인간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봐야
사람만이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코끼리는 건기와 우기에 물과 풀을 찾아 마치 철새처럼 먼 거리를 이동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코끼리는 이동 중 동족의 뼈를 발견하면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굴린다. 특히 코끼리는 이동하다가도 자기 어머니의 두개골이 놓여 있는 곳을 잊지 않고 들러서 한참 동안 그 뼈를 굴리며 시간을 보낸다. 슬프기 때문이다. 벌은 춤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정찰 벌은 꿀을 찾고 돌아와서 동료들에게 8자 모양의 꼬리 춤을 춘다. 이때 춤의 방향은 꿀이 있는 방향, 춤의 속도는 꿀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 정보를 담고 있다. 실제로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몇 년 전 꿀벌 로봇을 만들어 춤을 추게 했다. 그리고 춤으로 알려준 장소에 가서 기다렸더니 정말 벌들이 그곳으로 날아왔다.
동물 세계에도 인간처럼 고도의 정치 관계가 존재한다. 우두머리와 친한 침팬지는 훨씬 몸집이 큰 동료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친다. 몸집이 작은 침팬지들은 우두머리가 늙고 노쇠해지면 동맹을 맺어 쿠데타를 일으킨다. 침팬지 행동을 연구해 온 미국 에모리 대학 프란스 드 왈 교수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그렇듯 '백' 없는 침팬지는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도는 하나의 행성이며, 태양 역시 우리 은하 변방의 평범한 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도구가 인간의 전유물이란 생각도 편견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주와 생명체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물 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