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잃었던 아이들의 음대 진학, 가장 큰 보람이죠”

2010.11.01 09:00:00

일반계고 관악부가 최근 3년간 전국 대회를 휩쓸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 군포고 관악부(지도교사 안재찬)가 그 주인공. 관악기로만 구성된 윈드오케스트라팀인 군포고 관악부는 2002년에 창단해 2008년 제33회 대한민국 관악협회주최 전국관악합주경연대회 대상, 2009년 제7회 춘천전국관악경연대회 최우수상, 2010년 제8회 춘천 전국관악경연대회 · 제35회 대한민국 관악합주경연대회 대상 등을 수상해 관악부 명문고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군포고 관악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학생들의 건전한 취미활동과 음대 진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것. 이렇게 군포고 관악부가 성공모델이 된 것은 남다른 교육철학과 판단력으로 창단 때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 학교 안동규(49) 교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안 교장은 “평교사 때부터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근사한 취미를 가진 멋진 리더들을 키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과특기생으로 학교에서 지원하는 전문 강사의 레슨을 통해 30여 명의 학생들이 음대에 진학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멋진 취미 가진 멋있는 리더 키우고 싶어”
일반계고의 관악부 창단,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일반계고에서 공부와 대학 진학을 빼고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늘 공부에 치이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즐길 무언가를 갖게 해주고 싶었는데 도예, 풍물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봐도 활성화가 되지 않았어요. 대학 진학과 연계되지 않기 때문이죠. 음악 교사와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관악부였어요. 취미로도 좋고 열정을 가지고 연습하면 대학 진학도 가능하다는 말에 ‘이거다’ 싶었죠. 관악부의 오케스트라 연주 자체가 일반학생들의 정서나 감수성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고요. 저는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관악부가 학생들이 숨 쉴 공간, 또 취미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공간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학력 신장도 중요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공부만 잘하는 엘리트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가지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리더가 되길 바랍니다.”

군포고 관악부의 성공비결이 있다면.
“관악부는 전적으로 지도교사의 역량에 달린 일입니다. 저는 전폭적으로 지원만 했을 뿐 실제적인 지도는 교사의 몫이니까요. 지도교사가 관악 전공자인데다(트럼펫) 학창시절 관악부를 해본 경험이 있어 아이들을 잘 이끌었고 주말, 방학도 없이 열정적으로 매달려줬죠. 단원 40~50명을 통솔해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이런 좋은 결과까지 내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동아리처럼 운영해 음대에 진학한 선배 졸업생들이 후배를 지도하게 한 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공부하면서도 시간을 내 열심히 연습해준 아이들이 일등공신이지요. 예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윈드오케스트라팀을 운영하니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학교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아이들의 문화적 소양이 높아져 학교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학교 축제, 정기 연주회뿐 아니라 평소에도 쉽고 친근하게 오케스트라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아이들 정서에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음악회가 재미없을 것 같지만 정기연주회 때는 1100석 군포문화예술회관이 늘 관객들로 넘칩니다. 오케스트라를 듣다 보면 음악을 알아야 하니, 동서양의 음악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것들이 아이들을 아주 멋지게 바꾸어 놓았어요. 외국에서는 학생들이 공부는 공부대로, 본인의 적성에 맞는 취미는 취미대로 열심히 하는데 저희도 일부지만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취미로 관악부 활동을 하던 학생이 카이스트에 진학해 롤 모델이 되기도 했죠. 아이들이 학교에서 직접 그런 사례를 보니 더 자극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관악부가 3년 연속 주요 대회 상을 휩쓸면서 관악의 명문고로 학교를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아이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교과특기생육성학교 지정 제도 폐지 아쉬워”
관악부를 운영하는데 많은 예산을 비롯해 연습시간을 맞춰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선 비싼 악기 가격이 문제였습니다. 그때 마침 군포시에서 학교 관악부 육성을 위해 예산을 지원해 악기를 장만했습니다. 여유교실이 부족한데도 몇 년 후에는 별도의 관악부 전용 연습실까지 마련했죠. 인문계고인 탓에 처음에는 관악부 지원자 모집도 어려움이 있었고, 함께 모여 연습할 시간을 낼 수 없어 힘들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관악부를 창단해 40~50명의 학생들이 열심히 활동했죠. 대학진학의 발판이 마련된 것은 2007년 경기도교육청의 관악특기생육성학교로 지정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군포는 평준화 지역인데 역시 관악특기생육성학교로 지정된 당동중학교에서 관악 특기생 10명을 우선 선발하고, 특기생들은 학교 지원으로 대학입시를 위한 전문 강사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됐죠. 1, 2, 3학년 각 10명씩, 30명이 취미가 아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교육청의 예산지원이 올해로 끝난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청에서 교과특기생육성학교 지정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농담으로 자녀를 음대에 진학시키려면 아파트 한 채 값이 든다고 합니다. 창단 이래로 30여 명의 학생이 음대 진학했는데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전문 강사 레슨을 통해 대학에 갔죠. 관악부의 운영도 좋지만 교과특기생육성학교로 지정되면서 재능이 있어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음대 진학의 길이 열리게 됐는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또 특기생이 아니어도 인문계고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적성을 발견하는 희망이 되기도 했던 터라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관악부 운영이 어려워지겠네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어도 어떻게든 관악부를 꾸려나가겠지만 교과특기생 우선 선발, 관악부 운영 예산이 부족 등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어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그래도 군포고는 사립학교여서 제가 관악부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지도교사가 바뀌지 않으니 어떻게하든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죠. 하지만 같이 관악특기생육성학교였던 군포 당동중(공립)의 경우는 당장 존폐의 기로에 놓일 것 같습니다. 요즘 관악 전공 음악 교사가 드물고, 관악부의 특성을 알고 있는 교사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립이어서 교장이나 지도교사가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면 상황은 더 힘들어집니다. 예산도, 지도할 사람도 없다면 폐지될 것은 자명한 일이죠. 3년간 어렵게 자리잡아온 관악부인데 안타깝습니다.”

연예인 찾아 방송국을 동분서주한 선생님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관악부를 지키려는 교장선생님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평교사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2년부터 군포고에 재직했는데 일반계고이니 공부가 최우선이고, 사립학교여서 생활지도도 엄격했죠. 그 당시 학생부장을 맡아 특히 더 아이들을 더 엄하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늘 미안하고 안 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시나마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감동받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학교 축제에 큰 재미를 주기로 했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여주기로 마음먹고 무조건 방송국으로 찾아가 연예인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학교축제에 연예인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탤런트 김호진 씨가 설명을 듣더니 흔쾌히 와 줬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좋아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정례화했습니다. 그렇게 일년에 단 한 번이라도 아이들이 웃고 숨 쉴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인권교육보다는 인성교육이 먼저”
교장으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저는 학력과 인성을 동시에 갖춘 인재를 키워내고 싶습니다. 인성교육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국가, 학교 등 공동체보다는 본인과 가족만 생각하고 공중도덕도 지키지 않죠. 제 학창 시절은 군대식 교육 같았지만 적어도 공동체 조직원으로서의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는 배웠던 것 같습니다. 교육자로서 인성교육을 그동안 제대로 못 해온 것 같아 마음에 걸립니다. 요즘 말하는 인권교육, 물론 중요하지요. 교사, 학부모, 위정자들이 학생의 인권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권교육보다는 인성교육이 먼저입니다.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인성만 바르게 가지고 있으면 인권교육이 따로 필요가 없어요. 적어도 우리 사회 지도자, 리더는 기본적으로 봉사정신과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기심이 가득 찬 리더는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없어요. 학생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인성, 무엇보다 그게 먼저입니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
이상미 월간 새교육 기자 smlee24@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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