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로 떠나는 여행, 이젠 교육기부로 확대 '2012 경기도 과학교사 우수동호회, 별밤지기’

2013.10.01 09:00:00

밤하늘의 별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 교사와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도 뜨겁게 만나고 있다. ‘교육은 만남’이라는 깨우침을 보여주는 과학교사동호회 ‘별밤지기’. 9월 첫 번째 별자리 여행이 있던 날 화성 팔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하늘이 붉다. 서산으로 해가 넘어갔다. 저녁 어스름이 밀려오는 시각, 운동장으로 승용차가 도열하듯 차례대로 들어선다. 일정한 간격으로 정차한 차에서 일련의 남성들이 내린다. 트렁크를 열어 커다란 ‘화장품 박스’를 꺼내든다. 뚜껑을 열자 삼각대며, 가대며, 경통이 나온다. 바로 천체 망원경이다. 수년 째 함께 밤을 지새운 이들이라 그런지 호흡이 척척 맞는다. 좌우 정렬하듯 삼각대가 놓이자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오늘은 팔탄초 종일반 돌봄교실 아이들 20명을 대상으로 별자리 여행을 떠나는 날! 



별밤지기가 뜨면 하늘의 별도 반짝인다

운동장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퍼지고, 맞벌이를 끝내고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도 삼삼오오 모였다. 저마다 북극성, 토성, 카시오페이아를 보겠다며 망원경 앞에 줄을 선다. 별밤지기 백철민 회장(수원교육지원청 장학사)은 “가을 별자리를 보기 위해선 저녁 9~10시가 지나야 한다. 오늘은 아이들 귀가시간도 있고 해서 초저녁에 볼 수 있는 여름철 별자리를 찾아보고 특징을 알아가는 시간”이라며 “눈으로 보는 것과 망원경으로 보는 게 확연히 달라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도 무척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정대균 교사(화성 예당초)는 “망원경으로 봐도 별이 그냥 점이기 때문에 처음엔 실망을 한다. 그러나 약간의 설명과 행성, 월면, 분화구를 보여주면 사진에서 봤던 것을 눈으로 보니 신기해 한다”고 말했다.
별자리 관측은 주로 봄, 가을이 선명하다. 천체 움직임이 달라서 한 학교마다 연 2회 정도 방과후 체험학습과 토요프로그램 요청이 있으면 찾아간다. 경기권역 초등학교를 거의 한 번씩은 다녀온 셈. 별밤지기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뭘까. 바로 “망원경 얼마예요?”다.
“단순한 호기심이겠죠. 아이들에게 별을 더 잘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장비욕심’이 점점 생겨요. 보통 600~900만 원 가량해요. 이것저것 액세서리가 더해지면 족히 1000만 원이 넘습니다.” 백철민 회장의 귀띔이다.
“자~ 가장 비싼 망원경 앞에 서 봐요~”
아이들을 유인하던 김은호 교사(수원 우만초)는  “실은 내 망원경은 2만 원짜리!”라며 농담을 건넨다. “좀 작죠? 달 관측용입니다. 캠핑 가서 아이들에게 달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망원경을 통해 커다란 달을 본 아이들이 그래요. 진짜 달이냐고, 사진 끼워 놓은 거 아니냐고.”
아이들의 관심은 밤하늘이 깊어질수록, 하늘의 별이 점점 빛날수록 자연스럽게 별자리로 이동했다. “저게 금성이래? 보여?” “보여! 와~ 엄청 크다.” “아니 저거 말고. 그건 강당 옆에 있는 가로등이잖아. 그 위에 작은 불빛 보여?” “보여! 와~!”


친목동호회? 교과연구회?

2004년 3월에 만들어진 별밤지기는 동호회 10년 차가 됐다. 원년멤버 김경록 교사(화성 팔탄초 대방분교)는 “수원의 율현초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교사들 네 명이 별에 관심을 가지면서 별밤지기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눈으로 관측을 했어요. 관심을 가진 교사들이 점점 늘면서 개별적으로 망원경을 구입하는 분들이 늘어났고, 친목도모도 하고 전문성을 위한 연구회로 조금씩 변화했죠.”
별밤지기 회원들은 월 2회 정기모임을 갖는다. 우수동호회로 매년 선정될 만큼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 학습자료 수집과 개발을 위한 연구활동, 현장 수업에 적용할만한 교육콘텐츠를 꾸준히 공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체험중심의 흥미롭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우주 탐구를 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과 천체관측 행사를 개최한다.
방과후나 방학에는 교육강사 활동으로도 분주하다. 경기도과학교육원, 과천정보과학도서관, 지역교육청과 학교 주관 천체관측 행사에 교육지원을 나간다. 여러 곳에서 요청이 들어오지만 야간에 실시해야 하고 인력이 부족해 다 방문하지 못할 정도다.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별밤지기가 체험학습을 위한 대안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책임감도 커졌다. 김성규 교사(화성 예원초)는 “인터넷 자료나 교재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수업이 아니라 방과후나 토요휴업일에 간단한 관측활동으로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한 부분을 담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동호회라고 하기엔 너무 먼, 그렇다고 연구회라고 하기엔 열정이 엄청 넘치는 모임인 듯하다.  
야간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여름에는 모기와의 싸움이고, 10~11월로 넘어가면 밤공기가 쌀쌀해져 추위와의 싸움이다. 김경록 교사는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느라 무덤 옆에 있기도 했는데 등골이 오싹했다”며 “우리는 봉사차원으로 나갔는데 그걸 당연시 생각할 때 약간 속상하다”고 말했다. 정대균 교사는
“밤이라는 점 때문에 힘들 때도 있다. 집이 동탄인데 학교수업 마치고 1시간여 이동하고, 1~2시간 체험학습하고 정리하고 집에 가면 보통 자정을 넘긴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주로 야간에 활동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성회원이 드문 것도 별밤지기의 특색이랄까. 장비가 고가인데다 무겁기도 하지만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장비도 대여해줄 수 있고, 무거우면 대신 들어줄 수 있으니 여성회원은 언제든 대환영이란다.
나우상 교사(화성 팔탄초)는 고교시절 해변에 누워 별(북극성)이 조금씩 돌아가는 걸 한참을 바라보다가 우주의 매력에 빠진 낭만파.
“별자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멀리까지 갔다가 구름이 잔뜩 끼거나 날씨 때문에 아무것도 못 보여줄 때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예전에는 내가 보는 게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보여주는 게 더 좋아요.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 좋고, 가까워질 수 있어 좋습니다.”


천체 관측 넘어 교육강사, 봉사활동까지


한두 시간여 잠깐의 별자리 여행이었지만 신기하고 즐거웠던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여름방학 때 별자리 숙제가 있었는데 아이가 그걸 기억하고 더 신기해하는 것 같다”는 영서 엄마 강미혜 씨는 “늘 일 끝나고 운동장에 들어서면 불빛이 환하게 켜진 돌봄교실을 보고 마음이 짠했는데 아이들에게 이렇게 멋진 추억을 선물해줘 고맙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별밤지기는 상대적으로 체험학습 기회가 적은 특수학교나 보육시설의 아이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김경록 교사는 경기도 여주의 한 보육시설 방문기를 들려주었다. “망원경을 보기엔 키가 작은 7세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안아달라고 해서 몇 번을 들어서 보여주었죠. 이 아이가 뭘 알 수 있을까도 생각해봤지만 별자리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안아줄 수 있는 내가 좋았던 거구나 생각이 들었죠.”
별밤지기는 단순히 별자리 수업을 넘어 아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간과 범교과 활동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자 한다. 가족캠핑 행사도 그 일환이다. 백철민 장학사는 “10년 전 함께 별을 보던 아이들이 20대 청년이 되고 사회인이 됐다. 그 때 들었던 기억과 경험이 좋아서 새로운 것에도 두렵지 않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며 “별밤지기의 활동을 천체 관측에 가두기보다 나눔과 배려 같은 사회적 가치와 예술적인 영역으로 넓히려는 시도를 하겠다”고 밝혔다. ‘수업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않음’을 강조한 김성규 교사는 “우리가 시도하는 만큼 아이들은 따라와 줄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아이들 역시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이 더 좋다는 별밤지기. 밤에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공식행사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별을 본 사람만이 별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 속에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교실 밖 수업을 이어가는 별밤지기의 마음이 별빛보다 더 아름다웠다.

글 ㅣ 백민호 기자 / 사진 ㅣ 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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