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에게 학교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곳”

2015.04.01 09:00:00

교감들이 느끼는 고충은 중간관리자로서 소통의 문제와 업무 스트레스, 그리고 트라우마에 가까운 민원인 공포다. 교장 승진을 목전에 둔 남부러운 자리지만 학교를 나서는 발걸음은 지뢰밭은 지나온 심정이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목이 뻐근하고 눈이 감긴다.



교감은 학교라는 조직의 심장이다. 교감의 역할에 따라 학교의 활력이 달라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감은 고달프다.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고 걸핏하면 교육청에 불려 다니고, 쏟아지는 공문도 모두 교감 몫이다. 이 뿐인가, 교장과 교사들 틈바구니에서 동네북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이제는 수업까지 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교육부도 교육청도 교감을 위한 정책적 배려에는 인색하다. 그들은 말한다. 교감은 짧을수록 좋다고. 교장이 되는 날을 손꼽으며 오늘도 가득 찬 물동이 지고 외줄을 탄다. 우리나라 교감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애환을 진솔한 목소리로 들어본다. 이번 좌담회에는 서울수서초 김영봉 교감, 서울노일중 이소영 교감, 서울경기여고 이건재 교감 세분이 참석,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좌담회 참석자 : 서울수서초 김영봉 교감, 서울노일중 이소영 교감, 서울경기여고 이건재 교감 


사회자 = 학기 초라 바쁠 텐데 함께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교감선생님들은 교감이란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교감은 네모다’ 한번 해볼까요?

이건재 교감 = 저는 ‘종갓집 맏며느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종갓집 맏며느리는 챙겨야 할 사람도 많고 집안 궂은일도 도맡아 하잖아요. 관리감독자로서 학교의 모든 일을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봉 교감 = 저는 변화를 이끌어 가는 ‘개척자’로 표현하고 싶네요. 학교 교육활동의 동력은 교감이죠. 변화를 추구하고 이끌어 가는 힘은 교감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런 점이 개척자와 닮았어요.

이소영 교감 = 교감은 ‘숲’이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숲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숲처럼 많은 교사들을 포용하고 교사들이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감의 몫이고 앞으로도 그런 교감이 되고 싶어요.

이건재 =교감은 교장과 교사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도 해야 하고, 방패막이 역할도 해야 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사들의 분위기를 파악해 교장에게 먼저 귀띔도 해줘야 하고, 또 갑작스레 발표되는 정책들이 교사들의 반발을 사지 않도록 사전에 분위기도 잡아줘야 하죠. 하지만 법적으로는 ‘교감은 교장을 보좌해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 제도적으로 교감에게 주어진 권한은 없는 실정입니다.


자존감 살려주는 교장이 최고 … 요령 피우는 교사는 밉상
이소영 교감 = ‘중간다리’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학교는 수많은 학생과 교사들로 구성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교장과 교사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교사들에게 동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교감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촉진자(facilitator)라고 말하고 싶어요.

김영봉 = 말이 ‘중간다리’지 어떨 땐 ‘동네북’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는 민원인 상대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민원이 들어온 날은 거의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 처리하면 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요. 특히 경력이 짧은 교감선생님들은 어려움이 크실 겁니다. 학교로 찾아오는 분들 상당수는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말이 안 통할 때가 종종 있지요. 실제로 어느 교사가 말썽을 피우는 아이의 소매를 붙잡고 교무실에 데려갔다가 체벌 교사로 몰려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요. 학부모가 폭행을 했다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죠. 이 학부모가 ‘학생을 강제로 끌고 간 것은 잘못한 것이죠?’라며 넌지시 던진 말에 교사가 덜컥 ‘그럴 수 있겠네요’라고 말한 것을 녹음해 교육청에 체벌 교사로 민원을 제기했더라고요. 이 일로 교감인 제가 감사까지 받았죠. 무혐의 처리됐지만 아찔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소영=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녀 문제와 직결되면 상황이 꼬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학부모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하죠.

이건재= 전 교감 경력이 짧아 그런 ‘아찔한 경험’은 아직 못했습니다만 요즘 처리해야 할 공문이 너무 많아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오는 공문은 예전보다 조금 줄었다고 하던데 구청이나 복지관 등 외부 기관에서 오는 것은 여전히 많아요. 교감들이 겪는 공문 스트레스는 거의 트라우마 수준입니다.


교감 처우개선 시급 … 방학 내 근무해도 연가 못 받아
김영봉= 교감들이 처리하는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는 너무 인색한 실정입니다. 수당만 해도 그래요. 교사에서 교감으로 직급이 상승해도 호봉에 변화가 없습니다.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해도 마찬가지여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급보조수당도 교감이 25만 원 받는데 교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뿐인가요. 학교성과급에서 S 등급을 받은 평교사보다 B 등급 받은 학교의 교감 성과급이 더 적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한국초중고교감회에서 그간 여러 차례 정부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데 아직 이렇다 할 변화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이건재 = 연가 문제도 꼭 지적하고 싶어요. 일반 교사들과 달리 방학 때 교감들은 매일 학교에 나와야 합니다. 방학을 이유로 교사들에게 연가를 주지 않는다는데 그러면 방학 때 매일 출근하는 교감들은 왜 연가를 쓰지 못하게 하는지 알 수 없어요. 연가보상비 한 푼 주지 않으면서 말이죠.

사회 = 그래도 교감은 곧 교장 아닌가요. 승진이 보장된 자리인데.

이소영 = (웃으며) 세상에 정해진 게 어디 있나요.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논문도 쓰고 대학원도 열심히 다녀야 합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 뭐 하지만 우리도 남모를 고충이 있답니다.

김영봉= 학위 가산점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평교사 때 석사학위를 취득했더라도 교감이 되면 대학원에 다시 가야 합니다. 교감 자격을 취득하고 난 뒤에 학위를 받아야 점수로 인정되거든요. 이게 교장 승진과 직결되다 보니 부작용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소영= 교원 승진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저도 인식을 같이 해요. 지금은 교사- 교감- 교장으로만 이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승진을 앞둔 교사들의 심적 부담이 너무 큽니다. 꼭 교감이 아니더라도 평교사에서 승진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만들면 승진 적체도 해소하고 교사들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 같아요.

이건재 교감= 평교사가 교감을 거쳐 교장으로 승진하는 단일 트랙보다는 수석교사나 진로진학상담교사 등 그동안 제외됐던 트랙을 통해서도 승진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합니다. 즉, 교사가 교장으로 승진하는데 꼭 교감을 거치지 않고도 될 수 있는 새로운 제3의 길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교단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 교장공모제는 대안이 될 수 있나요.

김영봉 교감= 양면성이 있죠. 교육부나 진보진영 교육감은 좀 확대했으면 하는 것 같은데 반면에 여자 교감선생님이나 자기 PR이 약한 분들은 교장공모제를 힘들어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공모 교장 비율은 지금보다 더 낮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건재 교감= 맞습니다. 교장공모제는 각자 자신이 놓여 있는 위치에 따라 판단이 다른 것 같아요. 특히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차제에 공모 교장의 재임기간도 교장 임기에 포함시켜 ‘승진 교장’과 형평성을 맞추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생각입니다.

김영봉 교감 = 요즘 경기도에서 교장과 교감을 수업에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학교의 필요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교감이 꼭 수업해야 하나 … 학교 자율에 맡겨야
이소영 교감 = 교육청이나 교육감이 직접 나서서 강제할 성격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교감들의 업무량이 많아 직접 교단에 서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어요?

이건재 교감 = 학생들이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이 하는 수업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교실에서 40~50여 년간 떨어진 세대 차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어쩌면 학생이나 교감 모두에게 재앙이 아닐까요. 꼭 이분들까지 수업에 직접 나서야 하는 절박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사회 = 교감은 학교에서 2인자인데 교장선생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건재 교감= ‘인간적인 교장을 잘 만나야 한다’거나 ‘궁합이 잘 맞는 교장을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교장과 교감의 책임과 권한을 명백히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따르면 모든 책임과 권한은 기관장인 학교장에게 귀속돼 있고 교감은 단지 보조 관리에 지나지 않아요. 저는 차제에 교장과 교감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영봉 교감 = 교감 위임전결을 규정을 만들어 책임과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교장제는 긍정적 대안으로 평가합니다. 사실 학교현장에서 교장과 교감의 상하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이 사실이거든요.

이소영 교감= 교장과 교감의 관계가 어느 한 쪽으로 일방적인 통행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수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선후배 정도로 확립이 돼 갈등이 생겨도 서로 의사소통으로 해결해 나가고. 또 배려와 관심, 사랑이 넘치는 그런 관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권위 있는 자리지만 목에 힘들어 가면 교사들 외면
김영봉 교감 = 너무 우리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요(웃음). 요즘 학교운영이 쉽지 않죠. 꼭 바뀌었으면 하는 정책들을 하나씩만 꼽아 볼까요.

이건재 교감= 뭐니 뭐니 해도 교원 명예퇴직 아닐까요. 평생 교직에 헌신한 분들이 명예롭게 교단을 떠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합니다. 예산 부족 때문이라는데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봐요. 돈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겠죠.

이소영 교감= 저도 돈 이야기 좀 할게요. 학교에 예산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학생들이 쉴 만한 나무 벤치 하나 만들 여력이 없는 실정입니다. 대통령께서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직접 보셔야 해요. 미래를 짊어질 바른 인재를 키워내는 데는 교육 시스템뿐 아니라 경제적 지원도 매우 중요합니다.

김영봉 교감= 그렇죠.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이 시급합니다.

이소영 교감=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이 부족하면 아이들 교육과정도 축소될 수밖에 없잖아요. 학습준비물 예산으로 1인당 1만 원씩 나오기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요. 요즘 인성교육을 많이 강조하는데 어디 입으로만 되나요. 인성교육에도 재정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건재 교감= 전 좀 각도를 달리해서 교원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금 학교와 학교, 지역과 지역 간의 격차가 매우 심한데요, 교원 배치기준을 완화시켜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특히 소규모 학교는 교원 배치기준을 좀 더 완화해서 더 많은 수의 교사들이 근무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회 = 끝으로 후배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소영 교감=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학생들에게 올인 하는 정말 열심히 하는 교사들이 많아요. 그런 후배들을 보면 너무 신나고 기쁘죠. 하지만 가끔 선후배를 떠나 나이 운운하며 태만한 교사들을 마주할 때면 좀 안타까워요.

김영봉 교감=자신의 일에 열심인 교사나 학생 관리를 잘하는 교사들이 좋더라고요. 반대로 요령만 피우는 선생님들은 좀 꺼리게 되죠.

이건재 교감= 제가 교감에 임용되자 선배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교감은 권위 있는 자리다. 그러나 교감으로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굳어지는 순간 실패한 교감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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