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祖國인데 떠나야 하나요"

2017.03.06 10:45:44

이방인 취급 고려인 4세들
고교·대학 입학하는 율리아··엘레나 졸업 후 추방 걱정
재외동포로 인정 안돼 …법 개정, 영주권 기준 완화해야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이다. 국내에는 5만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어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고려인 4세 청소년들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게다가 성년이 되면 또다시 한국을 떠나야만해 미래가 늘 불안하다. 대학 진학, 안정적 취업만이 국내에 정착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이들에게 교육은 그래서 생존의 길이다.



"그래도 한국에 살고 싶어요. 다시 돌아가기는 싫어요."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산 고려인문화복지 지원센터에서 만난 김율리아(17)양은 지난 2013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 김 양은 "고려인이라는 시선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도 힘들어서 엄마한테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증조 할아버지가 태어난 한국에 가면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한국 땅에서 적응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는 정작 서울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학교로 갔다. 한국 학교로 가기가 무서워서다. 그러다 비싼 학비 때문에 다시 일년 만에 한국 중학교로 옮겨야 했다. 김 양은 "수업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지각과 결석을 자주 했어요. 결국 다문화 대안학교로 또 옮겨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올해 특성화고에 입학하는 김 양은 이제는 한국생활에 많이 익숙해졌지만 만 19세가 되면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려인 3세인 엄마가 방문취업비자로 국내에 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적 고려인에게는 재외동포비자가 발급됐지만 중앙아시아 국가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에서의 대학 졸업 등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방문취업비자가 발급됐다. 


동반비자로 온 김 양은 만 19세까지만 국내 체류가 허용된다. 대학을 가면 유학비자로 좀더 국내에 머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 수업도 따라가기 버겁고 학비도 비싼데 대학을 갈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 2012년 러시아에서 국내로 온 조기철(18)군도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조 군의 엄마는 재외동포비자를 발급받았다. 최대 4년 10개월의 기간 제한이 있는 방문취업비자(연장 가능)와 달리 재외동포비자는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는 한 장기 체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동반비자로 함께 온 자녀도 만 24세까지만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고려인 4세인 그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을 수 없는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 지금은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1860년대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시기에 농업 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나 구 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을 고려인이라 부르고 있다. 이들은 1937년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그러나 구 소련 국가들의 자민족 우선 정책과 경제적 불안 등으로 최근 고려인 동포들은 국내로 속속 입국하고 있다.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5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인 4세인 청소년들도 동시에 늘고 있다. 이들은 재외 동포로도 인정받지 못한 외국인 신분으로 성년이 되면 다시 떠나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을 할아버지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단기 비자로 국내 어학원에서 공부하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게 된 최 엘라나(19)양은 "고려인이니까 우리 조상의 언어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대학을 다른 국가로 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한국으로 꼭 오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 양도 대학 졸업 후에 한국에 정착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국내에 정착하려면 재외동포 범위를 3세까지로 한정한 재외동포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 이유로 개정은 요원하다. 법 개정이 안된다면 고려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주권 취득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김영숙 고려인문화복지 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향후 1~2년 뒤부터 성인이 돼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고려인 4세가 급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려인 동포의 역사성을 생각해서라도 미래세대인 자녀들을 우리 사회가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문영 기자 ymy@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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