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과 '보통 사람'

2017.05.24 17:24:09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그 동안 가창 방식을 두고 논란이 돼온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유가족 등 1만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9년 만의 일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확 바뀌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의 하나라 할만하다.

바뀐 세상을 실감하다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지난 3월 23일 개봉한 ‘보통 사람’(감독 김봉한)이다. ‘보통 사람’이 고작 38만 남짓한 관객에 그치고 만 것은, 일견 의아한 일이다. 첨예한 시대상을 드러내거나 사회성 짙은 영화들- ‘도가니’(2011년)⋅‘부러진 화살’(2012년)⋅‘변호인’(2013년)⋅‘내부자들’(2015) 등은 최저 346만 명에서 최고 천만 명 넘는 일반대중의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처럼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도 그렇듯 참혹하게 깨진 영화는 없다. 총제작비가 46억 원으로 알려졌으니 ‘보통 사람’의 손익분기점은 120~130만 명이다. 말할 나위 없이 완전 쪽박이 된 형국이다. ‘택시운전사’⋅‘1987’ 등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조만간 관객과 만날 예정인데, 걱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원래 1975년 연쇄살인마 김대두를 모티브로 기획했다. 1970년대 남한 안기부 시절 이야기를 더해 ‘공작’으로 만들려 했지만, 1987년 전두환 정권으로 배경을 바꾸고 제목도 ‘보통 사람’이 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원래대로 했다가는 어찌어찌 제작은 해도 개봉조차 안될 위기를 미연에 방지한 셈이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1970년대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에 이어 구속⋅기소될 줄. 12월 예정이던 대통령 선거가 5월 9일 시행될 줄. 원래대로 1970년대 배경의 ‘공작’이었다면 1980년대 ‘보통 사람’보다 타이밍 등 훨씬 일반대중의 관심을 끄는 사회성 짙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너무 참혹하게 깨진 ‘보통 사람’이 되어 해본 소리다.

‘보통 사람’은 강력계 형사 강성진(손현주)이 안기부 대공수사실장 최규남(장혁)에 의해 픽업되면서 꼬인 인생 이야기다. 이 구도로만 보면 뭔가 묵직한 울림을 주는 우울하면서도 처참한 시대상이 30년이 지난 오늘 많은 이들의 가슴에 와닿을 것 같은데 그게 없다.

물론 대학교 강의 중 규남의 무단 침입, 대마초 안했다는 여가수의 얼굴 가격, 팬티 차림으로 고문받는 김태성(조달환), 끝내 죽어나가는 추재진(김상호) 기자의 모습 등이 6⋅10민주항쟁 직전의 1987년 사회상을 구현하는 건 사실이다. 안기부에 처음 들어간 강성진의 놀라는 표정에서도 공작정치의 산실 1980년대가 박진감 넘치게 다가온다.

그런데 핀트가 좀 엇나갔지 싶다. 엄혹한 그 시절 내 의지와 상관없이 권력에 의해 진퇴가 자신도 모르게 정해지던 때의 시대적 아픔 같은게 없어서다. 가족애 코드가 그것이다. 결국 강성진의 안기부 협조가 다리 저는 아들과 벙어리인 아내를 위해서라는 건데, 이게 좀 생뚱맞다. 1980년대에 대한 접근의 본질을 벗어난 코드라 할까.

상식이 통하는 세상의 보통 사람 추 기자와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관심없는 강 형사의 충돌만으로 밀고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듬성듬성 화면 구성이 성긴 것도 좀 아쉽다. 가령 병원에서 규남이 휘두른 각목에 쓰러진 성진이 박동규(지승현) 권총과 마주하는 장면이 그렇다.

추기자 죽음에 양심을 불러오는 강형사가 규남에게 반말하며 대거리하는 장면도 시원한 카타르시스는커녕 오히려 독으로 보인다. 리얼리티, 아니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권력에 당하기만 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다면 그것이 묵직한 어떤 울림을 주지 않았을까.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나요”라며 그냥 맞기만 하는 성진의 아들 말처럼.
장세진 전 교사, 문학⋅방송⋅영화평론가 yeon5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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