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몇 년 전 자녀를 유학 보내면서 생기기 시작한 빚이 어느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돼버렸습니다. 부족할 때 잠깐씩 이용하던 현금서비스도 이제는 여기서 빌려 저기를 갚는 상황입니다.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빚이 있지만,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보니, 빌릴 수 있는 대로 빌려 간신히 급한 불만 끄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A. 빚내기 참 쉬운 세상이다. 언제든 돈을 빌려주겠다는 인심 좋은 문자 메시지가 넘치고 전화 한 통이면 단박에 통장으로 돈이 꽂힐 뿐 아니라, 여기 저기 빚이 흩어져 있거나 이자가 많으면 한 곳으로 모아 합리적인 금리대로 바꿔 주는 전문가까지, 이쯤 되면 ‘빚 안내는 사람’이 더 이상할 지경이다. 게다가 지하철이나 길거리에 넘치는 개인회생, 파산 광고들은 실컷 빌려 쓰고 안 갚아도 그만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빚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금융산업이 발달하면서 ‘신용’은 이제 생필품이 됐다. ‘신용등급’을 통해 우량한 자와 불량한 자로 신분이 나뉘기도 한다. 현금을 쓰면 신용불량자로 보일까봐 일부러 신용카드를 쓴다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신용’이야말로 소비를 통해 자기를 과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품인 것 같다. 사례자의 경우도,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가 풍부한 신용을 제공했고,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빌릴 수 있는 편리함과 장점이 어느새 독이 돼버렸다. ‘쉽게 빌릴 수 있는 빚’이 함정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의 친절한 얼굴은 ‘돈’이 가장 필요한 순간 돌변하곤 한다. 오죽하면, ‘화창한 날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아간다’는 말이 있겠는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맞게 금융을 이용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금융소비자가 가장 먼저 장착하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빚에 대한 ‘경각심’이다.
<위기판별 기준>1. 매월 정기소득의 30% 이상을 대출상환에 사용한다2. 대출상환으로 생활비가 부족해 신용카드에 의존한다3. 빚이 줄지 않는다4.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빚을 일으킨다5. 비상금이나 예적금이 없다6. 3군데 이상의 금융회사에 빚이 있다7.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8. 단기 연체와 해제가 반복된다
위 질문에 3개 이상 해당된다면 채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며 빚을 늘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많은 채무자들이 연체 시 직면해야 하는 상황, 즉 상환을 재촉하는 전화를 받는 불쾌함, 경제적 무능을 들켜버린 듯한 곤혹스러움, 연체가 길어질수록 더욱 거세질 독촉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체를 기피하며 빚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체해야 할 순간을 놓치고 무리해서 빚을 갚으려하다 보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연체는 자신에게 신용 상의 문제가 발생했음을 외부로 알리는 중요한 신호이며, 추가적인 신용공급을 강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현재의 빚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한다. 때론 채무조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자력으로 부채를 상환하기 어려운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채무조정제도 중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은 3개월 이상 연체를 해야만 신청할 수 있다.
부채 상황 리스트 작성해 계획 세워야
가장 먼저 자신의 자산과 부채 상황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부채 내역을 정리한다. 대출종류(신용, 담보, 약관 등), 대출 받은 금융회사, 대출일과 대출만기, 대출금액과 현재 대출 잔액, 월 상환액(원금과 이자), 이자율, 대출상환방식(만기일시상환, 원리금균등상환, 원금균등상환 등) 등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한다.
매월 상환금액을 소득과 비교해 소득 내에서 상환이 가능한지, 다른 지출을 줄일 필요가 있는지, 대출 건수가 많지 않다면 금융회사와 협의해 대출기간이나 대출상환방식을 조정 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대출만기 시점에 찾을 수 있는 예금이 있다면 만기일시상환방식으로 바꿔 매달 이자만 내도록 해 월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맞벌이로 현재 소득이 높지만 몇 년 후 출산을 계획하고 있다면 ‘원리금균등상환’을 ‘원금균등상환’ 방식으로 바꿔 지금 더 많이 갚고 나중에는 덜 갚도록 상환계획을 조정할 수 있다. 소득 내에서 부채상환이 어렵다면 자산 조정을 통해 부채를 상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자산 내역은 당장 사용가능한(유동성) 자산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해 정리한다. 은행 예적금의 경우 현재 납입원금, 만기일, 만기금액을,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투자자산은 현재 평가액을, 연금이나 저축성보험은 납입기간과 보험 만기, 현재의 해약환급금 등을 확인한다. 부동산 자산의 경우 시세를 확인한다.
이렇게 작성된 자산과 부채 리스트를 비교해 부채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다. 예적금을 깨서 현금서비스와 같은 급한 빚을 정리하거나 당장 사용할 계획이 없는 청약저축이나 변액보험, 저축성 보험을 해약해 신용대출을 상환하거나 집을 줄여 무리한 담보대출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자산 처분과 부채 상환에 따른 재무상태의 변화, 현금흐름의 변화와 함께 비경제적인 부분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집을 처분하는 경우 이사 비용, 세금과 같은 부대비용과 부채를 상환하고 남는 자금으로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는지, 주거 안정성이나 삶의 질 등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
금액 적은 것부터 갚아 상환 의지 높이자
부채가 여러 건이면, 상환 가능성, 부채의 질, 악성화 가능성 등을 고려해 상환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금리 대출과 대출금액이 적은 것부터 먼저 갚는다. 현금서비스나 리볼빙과 같은 초단기 대출, 대부업에서 빌린 고금리 소액채무,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과 대출 잔액이 적게 남은 부채부터 정리한다. 금융비용과 대출 개수를 줄여 상환의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이나 여러 곳에 소액채무가 분산돼 있는 경우 서민금융이나 대환대출로 전환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안심전환대출이나 보금자리론과 같은 정책자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때 변화되는 원리금상환액이 현금흐름에 부담이 되지 않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급여에서 원천징수되는 직장 공제회 대출이나 회사대출은 강제적이고 정기적인 상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천천히 상환하는 대출에 속한다.
사례자의 경우, 월평균 900여 만 원에 달하는 고소득이나 월 금융비용만 700~1000만 원에 육박해 시급한 채무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부채상환에 활용할 금융자산도 거의 없어 주택을 처분해 리볼빙과 현금서비스 등 고금리 채무와 주택담보대출을 정리하고 활용가능성이 없는 변액보험을 해약해 약관대출을 상환하고 비상금을 마련했다.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는 향후 대출기간에 따른 연도별 채무상환계획과 그에 따른 지출조정계획을 통해 점진적으로 갚아나가도록 했다.
채무문제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비상금이나 저축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준비되지 않으면 부채문제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채무상환과 함께 종합적인 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