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비중 줄고 학생부 영향 커진다

2017.08.01 00:00:00

공과 대학 지원자 중, 고등학교에서 물리Ⅱ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을 선발 할 것인가? 만약 학교의 사정으로 물리Ⅱ가 개설되지 않았다면, 이수하지 못한 학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대학 전공 관련 교과에 많은 시간을 투입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평가를 다르게 할 것인가? 단지 전공 관련 교과를 더 많이 이수했다고 해서 더 우수한 학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등이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대입전형에서의 고민들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흥미나 적성, 대학에서 수학할 전공에 따라 교과목을 신청해서 듣는 제도다. 교과 선택권을 보장해 학생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이다. 이러한 고교학점제 도입은 대입전형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대학에서 해당 전공을 수학하는 데 필요한 기초 역량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하나는 학생이 이수한 과목의 조합을 통해 학생의 다양성을 살피는 측면이 있다. 즉, 학생이 이수해야 할 필수 이수과목을 대학이 지정하는 방법과 학생의 선택과목을 서류평가에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학생의 필수 이수과목을 지정하는 대학으로는 서울대가 있다. 서울대는 지난 6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2021학년도 대입에서 공통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과이수 기준을 발표했다. ‘탐구영역은 사회(역사/도덕 포함) 교과 중 4과목+과학 교과 중 3과목 이수 또는 사회(역사/도덕 포함) 교과 중 3과목+과학 교과 중 4과목 이수, 생활·교양영역 중 제2외국어 또는 한문 중 1과목 이수, 또는 진로희망에 따라 과학Ⅱ과목 이수를 권장한다’고 대학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두 번째, 학생의 선택과목을 서류평가에 반영하는 대학에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운영하는 모든 대학이 해당된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대학은 학생의 선택과목을 지원자의 전공 관련 관심과 노력, 적성과 소질 등 전공적합성이나 자기주도성 등 의 관점으로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전공과목과 일치한 교과 선택 입시에 유리

고교학점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재도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 서류평가 시 전공관련 이수과목을 중요한 평가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경희대 입학전형연구센터에서 지난 1월 전국 대학 입학사정관 2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평가요소로 ‘학생부 지원학과 관련 교과성적(5.40)’이 꼽혔다. 이어 ▲면접(5.39) ▲학생부 교과활동(5.16) ▲학생부 비교과활동(5.08) ▲학생부 전 교과성적(4.85) ▲자기소개서 내용(4.73) ▲교사 추천서 내용(4.12) ▲고교프로파일(4.02) ▲수능성적(3.52) 등의 순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2016년 경희대 네오르네상스전형 합격생을 대상으로 한 학생부 교과성적을 분석한 것과도 일치한다. 이에 따르면 입학사정관들은 지원학과 관련 과목 이수를 평가에서 가장 비중 있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영어와 국어’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영어학부, 경영학과, 관광학부, 정치외교학과 등으로 나타났으며 ‘수학과 사회’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회계세무학과가 있었다. ‘수학과 과학’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화학과, 전자공학과, 물리학과, 원자력공학과 등이며 ‘영어와 과학’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의예과, 간호학과, 건축학과 등으로 각각 조사됐다. 실제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해 전공 관련 교과 우수자를 선발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다.


앞으로 치러지는 대입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서류평가에서 고교학점제가 가장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성적은 학생의 교과 선택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국어, 수학, 영어, 사회/과학 등 교과 단위로 특성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학생의 진로 및 적성과 관련한 교과별 세부 과목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과학Ⅱ과목, 국제경제, 생명과학실험, 경제수학 등 선택과목의 이수 여부를 세밀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분야를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대학에서 수학할 전공 관련 과목을 많이 이수했다는 점은 학생의 흥미와 관심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심화·고급 과목 이수는 열정, 열의, 동기 등을 평가할 수 있지만 과목의 수준과 내용, 난이도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결국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대입에서 내신은 ‘공식에 의한 처리’가 아니라 ‘개별적 검토’가 될 것이다. 학생부 교과성적을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학생 개인별 다른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개별적 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은 기존의 학생부 교과 산출 공식을 반영하는 정량평가가 아니라 학생이 이수한 교과 수준의 난이도와 내용 등 정성평가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교과과목의 이수 여부뿐만 아니라 과목의 수준과 질을 평가요소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고교 교육활동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학생이 이수한 교과목의 수준, 이수과목의 경향성, 다양한 교과교육의 경험 등을 학생을 선발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학생의 다양한 교과 선택을 제대로 반영해 줄 대입전형이 필요하다. 아울러 학생부종합전형 확대에 따른 전문성을 갖춘 입학사정관의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입학사정관이 많을수록 학생의 교과 선택 경향을 통해 전공적합성, 학업 기초 수학 능력 등의 질적 평가가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대입에 필요한 과목에만 학생들이 몰릴 것이다. 주요 교과목 외의 수업은 파행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고교학점제 학습결과가 대학진학과 연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심화선택 과정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수능을 더 잘 보는 공부를 시키는 쪽으로 변질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현행 수능 위주의 입시제도에 기반한 시각으로 보인다.


만약 현 정부의 공약대로 수능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선호하는 주요 대학들은 1등급 인원이 많아 수능만으로는 학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대학은 변별력이 약한 수능전형을 줄이고 학생부 전형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수능을 대체하는 대안이 바로 학생부가 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서울대처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전체 모집인원의 70%를 선발하는 대학이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대학 가는 길, 숫자에서 문자 중심으로 바뀐다

이런 대입 환경에서는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학생이 수혜자가 된다. 수업시간에 모둠활동을 통해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학생, 수행평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고 실험이나 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학생, 자신의 진로나 관심 분야에 관련한 자율동아리를 만들어 다양한 활동과 경험한 학생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또 대학 가는 길이 수능에서 학교생활로, 숫자 중심에서 문자 중심으로 평가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정부가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수능 전형으로 대입전형을 간소화할 경우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경쟁률도 많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입에서 보험 차원의 ‘묻지 마 지원’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에 맞는 ‘안정 지원’이 자리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이며, 대학은 입학사정관을 통해 학생의 다양한 교과활동을 세밀히 살피게 될 것이다. 최근 고려대가 전임입학사정관을 35명까지 늘린 것은 이런 의미의 사전 조치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학교의 사정으로 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대입에서 학생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고등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실제 운영을 상세하게 기록한 고교 프로파일이 축적되어야 하고, 입학사정관 역시 고교 프로파일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필수적이다. 또 고교와 대학 간에 고교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를 상호 공개해야 한다. 고등학교는 다양한 선택과목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에 참여하도록 지도하고, 교육과정의 수준이나 난이도 등을 구체적으로 고교 프로파일에 기술할 필요가 있다. 또 대학은 대학의 전공단위별로 요구되는 적절한 정보를 고교에 제공하고 이를 평가 기준으로 제시하는 연계가 필요하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고, 대학은 학생부를 공식에 따라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목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학생마다 다르게 학생부를 해석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변별도구인 고교학점제에 기대를 걸어 본다.

임진택 경희대학교 책임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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