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교감이 된 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제자 연수가 보내온 문자다.
그 아이를 만난 건 2013년 9월 1일. 수업을 하고 있는데 조심스런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어머니와 어두컴컴한 복도를 밝힐 수 있을 것만 같은, 유난히도 빛나는 눈을 가진 여학생이 서 있었다.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태국인인 연수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우리반 아이들의 모든 관심도 뒤로 한 채, 그 아인 항상 조용했다. 수업 중 웃긴 일이 있으면 그냥 배시시 웃을 뿐, 말이 없는 아이.
그래서 연수와 나의 대화는 대부분 일기장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3번 이상 일기를 쓰도록 했는데, 그냥 의무감에 쓰는 학생들과는 달리 연수는 일기장을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처럼 여겼었다.
처음 한 달 정도까지 연수의 일기는 지금 학교가 낯설다는 것과 예전학교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찼었다. 소규모 학교에서 작은 수의 학생들이 가족처럼 생활하던 곳이라서 그만큼 그리움도 컸으리라.
‘연수야 우리 학교에 전학 온 것, 그리고 우리 5학년 3반이 된 것 축하해! 우리 잘 지내보자.’
‘연수가 다녔던 00초등학교는 선생님이 처음 선생님이 되어 발령받았던 곳이야. 연수 네가 그 학교에서 왔다니 정말 반갑고, 선생님도 그 학교에서의 추억이 떠오르는구나!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참 아름다운 곳이었지.’
‘우리 연수가 00초등학교에 대한 그리움이 크구나! 그 곳에서 5년 반을 살고 왔으니, 그도 그럴 거야. 그곳 친구들하고도 자주 연락하고 그러렴. 그리고 이제 이곳에 왔으니 이곳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면 어떨까?’
연수는 자신의 마음을 거짓 없이 썼고, 나는 나대로 연수에게 하고 싶은 말과 해주고 싶은 말을 일기장에 쓰면서 서로에게 다가갔다. 일기장을 받아들고 내 글을 확인하는 연수의 설레는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5학년 3반 친구들은 처음 연수가 전학을 왔을 때, 자신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연수의 좋은 점만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행히도 연수는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고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을 잘하는 아이였다. 티볼도, 축구도, 피구도, 왠만한 남자아이들보다 더 잘하는 아이.
“선생님! 연수 정말 체육 잘해요! 짱이에요!”
친구들의 인정과 응원 속에서 연수는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우린 웃고, 떠들고, 혼나고 모든 것을 함께하면서 그 해 가을을 보내고 또 겨울을 보냈다. 그러면서 연수는 완전한 5학년 3반이 돼 갔다.
연수는 자기의 가정사와 고민 등을 나에게 수줍게 털어놨으며 2월이 된 연수의 일기에는 6학년이 되기 싫다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다문화학생이라는 사실로 스스로를 가두어 놓은 낯선 곳에서, 빗장을 열고 손을 내밀어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었음이리라.
5학년 3반들은 6학년이 됐고, 나는 다시 5학년 학급을 맡게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 교실과 연수의 교실은 연구실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연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교실로 나에게 문안을 왔다. 감기 기운이 있는 나에겐 비타민을, 목이 쉰 나에겐 목캔디를 가지고 말이다. 매일 보면서도 매일 반가워하는 우리를 보고, 하루는 우리 반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 왜 연수 누나는 날마다 선생님한테 인사하러 와요?”
왜 그렇겠는가? 좋아서 그러는 거지 후훗.
어느 날, 연수가 내게 와서 역도를 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운동은 힘이 들고, 중도에 포기하면 이도저도 안된다는 것, 무엇보다 자신의 길이 아닐 수도 있으니 깊이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했으나 며칠 후 연수는 그 길을 가겠다고 했다. 생각이 깊은 아이니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열심히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6학년 2학기부터 연수는 시간이 될 때마다 **중학교로 역도를 하러 다녔다. 힘들지는 않아? 할 만해? 언니들과 선생님들은 잘해줘? 등등 나의 물음에 연수는 다 좋다며 환한 미소로 답해줬다.
그렇게 2015년이 됐고 우린 조촐한 졸업 축하 파티를 위해 연수가 운동을 마친 후 만나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도 연수는 문자로, 메일로 나에게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이별 후 첫 스승의 날, 연수는 잊지 않고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시죠? 오늘 스승의 날이라서 선생님이 평소보다 더 보고 싶어요. 선생님! 5학년 2학기 때 제가 ○○초에 오고, ○○초 첫 선생님이 선생님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던 거 있죠? 비록 1학기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요, 초등학교 생활 중 제일 즐거웠어요! 6학년이 돼서도 선생님과 데이트도 하고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요 ○○초하면 바로 선생님이 생각나요, 그리고요 선생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은요, 이 세상에서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 오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의 과분한 칭찬에 보람만큼 내 존재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연수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게 노크했다.
11월 수능일에는 역도 연습이 없는 날이었던지 내가 맡은 3학년 희망교실 프로그램인 ‘서점 가서 책읽기’도 도우미로 함께 했다.
지난해 1월 1일 어김없이 새해인사를 전해왔고 5월 15일에는 ‘내 맘속 최고!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전국체전 때 메달을 따지 못했는데도 ‘선생님 응원에 감사드리며 다음엔 꼭 노력해서 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보내 내 걱정을 덜어준 아이였다. 이번 승진 축하 때도 누구보다 기뻐해준 건 연수였다.
참!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연수와 난 어떤 인연이길래, 이렇게 그냥 생각만 해도 좋은 걸까? 전생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전생이 있다면 우린 아주 아주 친한 단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선생님이어서 정말 행복하다. 왜냐면 연수 같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고 맺을 수 있어서 말이다. 이제 곧 우리 연수와 만나기로 한 날. 그 날은 뭘 할까?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