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 - 조용헌의 명문가

2017.10.17 10:31:08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강마을의 들이 조금씩 비어갑니다. 노란 들판이 네모난 색종이처럼 한 장씩 비어갑니다. 서늘한 공기가 아침저녁으로 제법 차게 느껴집니다. 안개라도 무성한 날이면 아이들은 어깨와 목을 움츠리고 학교에 등교합니다. 여학생들은 치마 밑으로 허연 다리를 드러내고 춥다고 걸중겅중 걷습니다. 추우면 스타킹을 신을 것이라고 혀를 차지만, 또 그러지는 않네요. 호호

 
들판의 곡식들은 풍성하고 그 곡식들이 우리를 살리는 밥이 됩니다. 하지만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은 것이 우리 역사에서 몇 십 년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한국의 명문가에서는 집밖에 가마솥을 걸고 나라가 하지 못하는 가난을 구제하였습니다. 이런 멋진 삶을 산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일은 즐겁습니다. 저는 경주에 가면 꼭 최부자집엘 들렀다 옵니다.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며느리는 시집온 3년 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재산은 만석이상 가지지 마라.’ 삼 백 년 이상 가문을 유지해온 비결이었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함께 백산상회를 통해 독립자금을 지원하였던 경주 최씨 가문! 늘 감동을 받고 옵니다. ^^
 
동양학을 연구하는 조용헌 선생의 책을 읽는 것은 참 즐겁습니다. 읽는 맛이 다르고 읽고 난 후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듭니다. 『조용헌의 명문가』를 읽으며 일부 고위층과 재벌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갑질을 일삼던 사람들이 기억났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사람들만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당 이회영 집안은 서울을 대표하는 소론 명문가였습니다. 재상을 열 명 이상 배출하고 3만석 이상의 부잣집이지만 구한말 나라가 망하자 이 집안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3만석 이상의 재산을 팔아 만주로 가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웁니다. 안동의 고성이씨 집안은 영남을 대표하는 양반가문이지만 만주로 갔습니다.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이 바로 그 종손이라고 합니다. 석주 이래 모든 손자가 독립운동을 하는 바람에 그 후손은 고아원에서 커야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멋진 명문가 집안을 가진 민족입니다.

노블레스 오브리주[noblesse oblige]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입니다. 배운 사람은 그 배운 값을 해야 합니다. 사회 고위층의 경우 반드시 도덕적인 책임감과 의무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브리주를 행한 명문가 이야기를 읽으며 먹먹한 자부심이 밀려왔습니다.
 
가을이 참 예쁩니다. 낱알을 튼실하게 품은 곡식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여름내 가꾸고 지킨 알곡들을 이제는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이 가을 동안 가꾸어가야겠습니다. 바람결에 찬 기운이 배어있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헌의 명문가』, 조용헌 지음, 랜덤하우스, 2009



이선애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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