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만큼 뮤지컬과 궁합이 좋은 장르가 있을까.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일상생활에서처럼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던 인물들이 갑자기 노래를 열창하고 춤을 춘다고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이니 말이다. 그 세계에서 노래 한 곡은 몇 백 년 전으로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것은 물론,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이 이뤄지는 마법의 툴과 다름 아니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노래에 화려한 조명과 무대장치까지 더해지면 극장은 세상과 분리된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이번 달 공연계에는 이와 같은 판타지의 세계로 초대하는 작품들이 유난히 많다. 골치 아픈 현실은 잠시 접어두고, 무대에서나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와 매력남들을 만나러 들어가 보자. 흘러나오는 넘버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환상 속의 세계에 입장한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요즘 시대에 가장 큰 판타지는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 해피엔딩 아닐까? 올해로 한국 공연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삼총사>는 이 행복한 판타지를 유쾌하게 펼쳐내는 작품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달타냥이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와 만나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음모에 맞서는 이야기는 검투 장면 같은 볼거리와 흥겨운 음악으로 즐거움을 더한다. 물론 모험에 빠질 수 없는 귀여운 로맨스는 덤이다.
사실 <삼총사>는 작품 외적으로도 특별한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뮤지컬 분야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원조’ 한류 뮤지컬인 동시에, 외국 라이선스 공연을 들여와 한국 버전으로 역수출한 첫 사례이기 때문. 사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제작한 것은 체코다. 그러나 연출가 왕용범은 원작 뮤지컬의 무겁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한국 관객의 코드에 맞게 유쾌하고 빠른 전개, 코믹한 분위기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음악 역시 대대적인 편곡을 거쳐 흥겨운 분위기로 거듭났다.
이러한 ‘한국 스타일’ <삼총사>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체코 버전이 아닌 한국 버전의 작품을 수출하는 청출어람의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 기여를 한 것 중 하나는 출연 배우들 사이의 쫀쫀한 호흡. 초연에서 열연한 배우 엄기준, 유준상, 민영기, 김법래는 이후 자신들의 이름을 딴 ‘엄유민법’이라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해 활동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번 공연을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 역시 이러한 반가운 얼굴들과의 재회다. ‘엄유민법’을 비롯해 신성우까지 10년 전의 초연 캐스트들이 찰떡같은 호흡을 선보일 예정. 이밖에도 손호영, 서은광, 제이민 등 ‘젊은 피’들이 작품에 신선함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 작품은 제목부터 판타지 세계로의 입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뮤지컬 <더 픽션>. 지난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관객들과 만났던 공연은 이음새를 촘촘히 보강하는 개발 단계를 거쳐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공연은 뉴욕의 한 소설가가 쓴 작품에 등장하는 살인마 ‘블랙’이 현실에 나타나 소설 속 범행을 그대로 재현하고, 이를 지켜보던 한 경관이 사건을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현실과 소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심리대결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안긴다.
신비로운 2인극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는 매력적인 배우와 캐릭터로 ‘마성의 뮤지컬’로 불린다. 연구에는 완벽하지만 사랑에는 ‘숙맥’인 프로페서V가 치명적인 매력을 얻기 위해 드라큘라 백작과 피의 계약을 맺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강렬한 락 비트의 넘버와 어우러진다. 신비롭고 묘한 분위기를 가진 드라큘라 백작과 모성애를 자극하는 프로페서V의 상반된 캐릭터는 물론 작품 전반에 흐르는 키치한 분위기가 수많은 관객들을 홀려(?) ‘마돈크 마니아’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이번 공연은 2010년 초연 이후 무려 5번째 시즌이라는 사실. 이번 시즌 역시 송용진, 조형균, 송유택, 정욱진, 박영수, 고훈정, 윤소호 등 뮤지컬계의 매력남들이 총집합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 예정이다.
<삼총사> 3.16-5.27 | 한전아트센터 | 1577-3363
<더 픽션> 3.9.-3.12 |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 02-588-7708
<마마 돈 크라이> 3.23-7.1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1관 |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