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 때마다 겪는 이방인의 삶, “신참은 괴로워”

2018.03.02 09:00:00

2월은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달이기도 하거니 와 동시에 전출입으로 어수선한 시기이다. 각 시·도교육청의 인사규정을 보면 한 학교의 근무주기는 대체로 4년 정도이다. 전보는 전보가 산점을 토대로 학교를 선정·지원하게 된다. 하지만 교사들이 선호하는 학교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전보 희망’이 전적으로 반영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신이 희망한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학교로 옮겨간다는 것만으로도 여러가지 걱정이 앞서는데, 본인이 희망한 학교가 아니라면 그 스트레스는 상당히 커진다. 게다가 옮겨 간 학교의 문화와 잘 맞지 않는다면 ‘외딴 섬’처럼 소외감까지 밀려온다.


학교 부적응으로 스트레스 받는 전입교사들

전입교사들은 학교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전입 초기 학교생활이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생소한 학교 환경에서 오는 예기치 않은 다양한 형태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학생들과의 수업, 동료교사들과의 관계, 업무와 건강 등 학교생활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흥미를 잃은 학교생활은 교사의 열정을 식히고, 식은 열정만큼 업무는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입교사들은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을 마땅한 곳이 없다. 특히 저경력 교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전입 시 부적응으로 어떤 교사는 휴직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교사는 수시로 병가와 함께 심리치료를 받는 경우도 봤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모든게 서투른 전입교사들에게는 학교 구성원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다음 사례를 통해 전입교사들의 흔히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살펴보자.


# 사례 1 _ 전보는 성적순?

전보 대상이 된 A 교사는 다음 근무지 학교를 선정하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A 교사는 집 주변의 S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의 말을 들어보니 S 학교는 많은 교사가 선호하는 학교였다. 교감은 A 교사에게 “그 학교는 경합지이니 다 른 학교를 지원하라”고 권했다.


교감이 추천한 학교들은 대체로 통근 거리가 먼 학교들이거나 개성이 강한 교 사들이 많은 학교였다. 동료교사들은 어디를 가도 학교는 다 마찬가지라며 결국은 자기 하기 나름 아니겠냐고 위로를 했다. A 교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보는 성적순’이었고, 별로 신뢰할 수 없는 근무성적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2월 중순쯤 인사발령이 났고, A 교사는 발령 난 학교로 부임인사를 갔다. 시 외곽의 오래된 학교였는데 그를 맞이하는 교사들 표정도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A 교사는 근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어떻게 이 학교에서 4년을 근무해야 할지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 사례 2 _ 내 허물만 보던 교장선생님

B 교사는 스스로를 매우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발령 난 학교의 교장과는 전에 교감으로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인연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교감은 B 교사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늘 잔소리를 했었다. B 교사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교감과 헤어져 근무했던 기간은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런데 새롭게 발령을 받은 학교가 하필이면 예전 그 교감이 공모교장으로 있는 학교였다. 부임 첫날부터 B 교사는 곱지 않은 시선을 느껴야 했다.


B 교사는 새로운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흥미를 잃었고, 급기야 그 결과는 엉뚱한 행동으로 표출됐다. 그때마다 교장의 질책은 더해졌다. 교장은 직원회의 석상에서 B 교사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기도 했고, 학부모들에게도 그의 허물을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학급담임을 맡을 수 없는 교사로 낙인 찍혔고, 마침내 부적격교사라는 불명예를 안고 강제 전출 당했다. B 교사는 그 학교에서의 근무를 ‘악몽’으로 표현했다. 그는 근무하는 내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생각했었다고 털어놨다.


# 사례 3 _ 근무와 양육은 병행이 안 될까?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C 교사는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로 배정받았 다. 세 살이 된 딸아이를 매일 아침 출근길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하는 C 교사는 걱정이 앞섰다. 이번에 발령난 학교는 어린이집과 다소 먼 거리에 있었지만, 아이가 그동안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교통상황에 따라 출근시간이 다소 지체되는 경우가 생겼다. 그때마다 교문 앞에는 교감이 서 있었다. 게을러 보이는 C 교사가 달가울 리 없는 교감은 “아침마다 늦네요. 그 반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겁니 까. 이제 막 전입을 해 오셔서 이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학부모들의 관심이 대단합니다”라며 자주 지적했다.


그때마다 딸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느라 늦었다는 말도 못한 채 혼자 마음을 졸였다. 동학년 교사들에게조차 눈치가 보였고, 교실에 들어서면 반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사실 1교시 전이라 수업에는 지장이 없으나, 심리적 부담은 피할 수 없었다. 업무상 교무실에 들어설 때는 괜히 교감 눈치를 살피게 돼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서 내 아이의 어린이 집을 바꿔야 하나’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러니 우리나라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왜 하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발령을 냈을까’ 하며 인사담당자를 원망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트레스는 점차 쌓여 갔고 마침내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어 틈만 있으면 병가를 내거나 조퇴를 하게 됐다.


# 사례 4 _ 내가 교사인가? 행정사무원인가?

전입교사는 학년이나 업무를 임의로 배정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존 교사들의 배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D 교사는 새 학교에서 고학년과 함께 업무량이 상당히 많은 일을 맡게 됐다. 하루 종일 수업 준비하랴 업무 챙기랴 정신이 없었다. 전임 학교 동료교사들을 만나면 하소연부터 늘어놓을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수업이 다소 부실해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업무를 잘못 챙기거나 보고 시점을 놓치면 교무실에서 어김없이 질책이나 독촉이 왔다. D 교사는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업보다 업무가 우선이라니. 처음에는 그래도 내가 할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D 교사는 자기가 교사인지 행정사무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참다못해 학교 측에 정식으로 항의했다. 업무배정에서 충분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해명을 들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D 교사는 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급박할 때는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D 교사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그 심리적 부담은 생각보다 컸다. 스스로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전입교사들의 사정에 무신경한 학교가 야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사례 5 _ 모든 선생님의 요구를 들어줄 순 없어요

E 교사는 이번 학기에 새로운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3·4학년군을 대상으로 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기로 계획했다. 그래서 교감에게 학년 배정에서 이를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E 교사는 6학년에 배정됐다. 6학년 배정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들은 바가 없어 난감했다. 대학원 논문을 위해 겨울방학 때부터 준비한 3·4학년군 교육과정 분석과 교육과정 재구성 자료들, 시안으로 작성해 놓은 수업안 등이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자신의 입장을 밝혔음에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른 학년으로 배정한 학교가 야속했다.


게다가 E 교사는 작은 체구에 여린 성격이라서 주로 중학년을 위주로 담임을 맡았던 탓에 6학년은 처음이었다. 교내 인사 발표를 하던 날, 교감으로부터 인사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모든 교사의 희망을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전부였다. 개별 교사들에 대한 속 깊은 배려는 없었다. 그런데도 학교의 결정이니 잘 부 탁한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그럼 내 부탁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탁’이라는 말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음에 화가 치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6학년은 기피 학년이라 기존 교사가 아무도 희망하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전입교사에게 6학년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에 원하지 않은 학년 배정에 대해 의사를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논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실제로 수업안을 작성하고 수업을 해봐야 하는 논문의 속성상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E 교사는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대학원 논문과 6학년 교육과정 연구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 둘이 서로 연계가 된다면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움과 서운함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윤성한 전 인천용현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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