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 편지- 정암나루

2018.10.17 12:15:02

망우당께 보내는 편지 2

오늘은 당신께서 임진란의 도가니 속에서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아 경상우도를 지켜내는데 큰 자리매김을 한 전투가 있었던 정암 나루로 가려합니다. 유월의 초순이었습니다. 그 날 그 곳으로 시간을 거슬러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남해고속도로에서 군북IC를 통과하여 색 고운 새털모양의 향 짙은 자귀나무꽃이 핀 길을 10분 정도 달리면 전통 한옥 모양의 늠름한 의령관문이 만납니다. 진주에서 흘러온 남강 위로 현대식 다리와 오래된 철교가 함께 있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저는 멋진 관문보다 붉은 옷을 입고 흰 백마를 타고 칼을 든 당신의 모습이 먼저 보였습니다. 관문 옆으로 성벽이 있고 언덕에 정암루가 강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길을 따라 정암루에 올라 늙은 바위를 휘감고 흐르는 젊은 강을 보았습니다. 저 곳은 임진란 가장 뜨겁고 강한 의별들의 싸움터가 있었던 정암 나루입니다.

정암진 전투는 왜의 수군이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에 옥포 등에서 대패하자 공격로를 변경하여 전라로 가기 위해 5월 하순경에 함안군에 집결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수장은 소조천윤경의 심복인 안국사 혜윤의 부대였습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신은 왜가 강을 건너기 위해 미리 마른 땅에 얕은 곳에 세워둔 기를 뽑아 진창과 깊은 곳으로 유인하여 복병으로 공격하였다고 망우당집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붉은 철릭을 입은 당신은 모습은 참으로 신출귀몰(神出鬼沒)하였습니다. 이 전투는 왜가 전라도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임진란 전투에서 최고로 평가받습니다. 남강은 도도히 흐르고 그 위에 우뚝 선 정암을 바라보니 그 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당신이 모습과 행동에는 남명 조식선생의 마음이 함께 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남명선생께서 손수 고른 외손서이자 아끼고 아끼던 제자로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아낌없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당시 도덕적 수양을 중시하는 성리학 체계 내에서 의(義)의 입지는 경(敬)에 비해 축소되었지만, 남명선생께서는 경과 의를 동시에 중요시 하셨습니다. 남명의 문시는 “경을 함양하고 의로서 단제(斷制)하셨다.”라고 한데서 알 수 있습니다. 남명은 마음 안에서는 경으로써 존양(存養)하고 밖에서는 의로써 성찰(省察)하여 사욕(私慾)을 제거하는 성리학의 수양론 제시하는 가운데 의(義)의 의미를 규정하셨습니다. 결국 성리학에서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단순한 지식 습득의 과정이 아니라 실천을 전제로 한 의리규명의 작업으로써 실천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일을 처리해야한다는 실천성을 중시한 남명선생의 제자들은 임진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당신께 당시 조선의 성리학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조선 건궁의 중심이었던 성리학은 초심을 잃어 일반 백성이 일용할 수 있는 학문되지 못하고 소수 지식인에 의한 지식의 독점, 그 지식의 독점으로 인해 민심이 이탈하였습니다. 엘리트 계급은 국제관계나 이웃나라의 정세변동을 파악하는데 소홀하였고 국가적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재야의 학자 남명 선생은 현실을 바탕으로 유교적 눈을 통해 조선의 길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그런 남명 선생의 현실 인식이 당신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벗과 이웃이 사는 이 땅을 유린하는 왜적의 분탕질을 용서할 수 없었겠지요. 바른 삶을 살기 위해 아는 것을 실천하는 올곧은 지식인의 모습임을 보여주는 당신이 저는 참 아름답고 존경스럽습니다. 저 역시 학문의 길에 마음을 둔 사람으로 앎과 삶의 일치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공자와 맹자가 주창한 백성이 하늘인 나라가 아니라 국가권력과 학문은 백성을 지배하고 사대부만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기에 백성들은 나라를 버린 임금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시기에 전 재산을 의병을 봉기하는 데 사용하였던 당신을 생각하면 깊은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는 것을 행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이 시대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 우리 역사의 슬픈 장면을 보았습니다. 우리 손으로 뽑았던 대통령이 촛불 민심에 쫓겨 스스로 지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왔으며 몇 몇의 측근들이 자신을 위해서 힘을 휘둘렸습니다. 이들이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임란이 터지자 백성을 외면하고 도망간 사대부들과 과연 다른 점이 있을까요? 당신이 이 시대에 계신다면 준엄한 호통을 치실 것입니다. 그 호통소리가 그립습니다.

 

당신의 붉은 옷자락이 보이는 정암나루에 섰습니다. 강가에는 도라지꽃이 여름 화단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 작은 꽃잎 한 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손으로 주우려니 팔랑 흰 나비가 되어 날아갑니다. 당신께서 보내신 답장 한 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맺습니다.  먼 곳에서 늘 건강하십시오.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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