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침이면 어학실로 찾아와 오늘은 언제 공연 연습할거냐고 물었다. 교과 수업을 나가야 해서 연습하기 곤란하다고 말할 때면 아이들은 대회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꾸 요령 피우면 곤란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청각실에 모여 연습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면 피아니스트 여자 아이는 조금만 연습하고 농땡이 피워도 될 거라 생각하느냐고 질책했다.
무대 의상을 고르는 것도 아주 고역이었는데, 작년 학예회에서 옷을 빌렸던 업체의 카탈로그에서 의상을 고르는 와중에 이것도 저것도 아이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아우성이었다.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 동영상도 촬영될 텐데 우스꽝스런 복장을 입고 올라간다면 평생 흑역사로 남을 거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선생님들께 여쭤보니 선생님들은 무조건 무대에선 눈에 띄는 게 제일이라고 빨갛고 파랗고 어쨌든 강한 색상의 개성 강한 연주복을 추천했다. 결국 마지막은 얌전해 보이는 하얀 교복풍의 합창복으로 골랐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공연 날이 다가왔다. 공연 전에 사전답사로 화성시청 옆 모두누림 아트센터에도 방문하고 무대를 둘러보기도 했지만 어떤 부분을 눈여겨봐야 될지도 몰라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결국 리허설이 되어서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입·퇴장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공연을 해야 할지 감이 왔다.
우리들은 네 번째 공연이었다. 우리들 앞에는 큰 오케스트라 두 팀과 타악기 밴드였는데 다들 실력이 대단하고 사운드가 굉장히 웅장해서 다들 기가 질렸다. 그 때 밴드마스터 역할을 하던 여자 아이가 “선생님, 우리 망한 것 같은데 어떡하죠?”라고 해서, “괜찮아요, 아직 안 망했잖아요”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저 팀들도 훌륭하지만 전교생 수가 수백 명 되는 학교 중에서도 잘하는 학생들을 가려 뽑은 팀이랑 우리처럼 전교생이 40명밖에 되지 않아 잘하고 못하고 가리지 않고 예비군 소집된 것 마냥 모조리 나온 팀이랑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건 그냥 핑계에요.” “역시 그렇지?” 사실 다른 팀에 기죽은 아이들만큼 나도 오케스트라와 타악기 밴드를 멋지게 지휘하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께 기가 죽어 있었다. 나중에 성함으로 찾아보니 교사 오케스트라 소속 연주자 분이셨는데 역시 평소에 음악적인 소양이 많으신 분들이 학생들의 공연 활동을 지도해야 마땅한 거구나 생각하며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리허설에 잔뜩 기가 눌려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뭔가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더 소리를 잘 낼지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무대의상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마치 천사 같았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슬리퍼를 신고 출발한 나는 전화를 해서 다른 선생님들께 구두를 가져다달라고 부탁드릴 정도였다. 오히려 아이들은 공연을 앞두고 중심을 찾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올라간 아이들의 소리는 리허설과는 달랐다. 마치 천사가 날개를 펴는 것처럼 리코더와 바이올린 소리는 여태 그 어떤 연습보다도 근사하게 화음을 이루었다. 나 역시 학교 선생님들 앞에서 했던 중간점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유롭게 지휘하고 있었다. 뭔가 제대로 해낸 느낌, 여기에는 누가 더 음악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느냐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그것은 하나의 큰 어울림이었다. 멋진 공연을 해낸 팀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잔뜩 만족스런 표정을 하셨고 그동안 많이 도와주셨던 남자 선생님 형들은 다들 멋있었다고 객석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무엇보다 멋진 것을 스스로 해낸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워 공연이 끝났을 때의 나는 한동안 무언가에 크게 압도된 듯한 황홀감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