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선생님들은 저마다 우수한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협의하는 것만으로도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교사연구회를 통해 깜짝 놀랄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2년이었습니다.”(최영희 경기 능동중 교육과정부장)
경기 능동중(교장 류기진)은 지난해부터 전문적학습공동체 연계 자유학기제 교사연구회 ‘사이다(사고하고,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교)’를 운영해 주제중심 교과통합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주제중심 교과통합교육과정은 한 가지 주제를 정한 뒤 그에 맞춰 교과별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학습 흥미를 끌어올리고 이해도와 몰입도를 향상시키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해 1학년 담임교사, 교과별 1명 이상, 특수반 교사 등 요건을 둬 모집한 15명의 ‘사이다’ 창단멤버들은 비정기 모임으로 출발했다. 계획, 평가, 연수 등 필요할 때만 모여 논의하는 정도였다. ‘더불어 따뜻함’, ‘더불어 즐거움’을 주제로 교과통합교육과정을 했으나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절반의 성공으로 남았다.
‘더불어 따뜻함’은 사회, 국어, 수학 과목에서 진행됐다. 사회는 ‘경제생활의 이해’ 단원에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 대해 직접 기획안 작성, 국어과는 ‘협동조합 설명문 쓰기’, 수학은 ‘협동조합과 관련된 통계자료 찾아보기’로 구성됐다. ‘더불어 즐거움’은 음악, 국어, 미술, 체육 과목에서 진행돼 반가 작곡, 노랫말 쓰기, 응원도구 제작, 반가에 맞춰 율동 만들기로 꾸려졌다. 그러나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었다. 소통 부재로 인해 매 수업마다 시행착오가 따랐다.
올해 연구회 인원은 12명으로 줄었지만, 정기모임으로 변경되면서 내실이 더해졌다. 한층 개선된 연구회를 의미하는 ‘사이다 2.0’으로의 재출범을 다짐하고 월 1, 2회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자주 모이다보니 교사들은 ‘나만의 영역’이라 여겼던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이런 거 말해도 되나’ 싶은 비밀 같은 고민들, 몇 번을 망설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혼자 끙끙 앓던 것들이 결코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었으며, 다른 누군가는 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누면 가벼워진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으니 저마다 꺼내놓는 아이디어는 금새 늘었다. 여기서 도출된 방법들을 수업에서 직접 적용한 후 공유하는 체계를 갖추니 진정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진행됐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2개월 간 진행된 모의 창업 교과통합교육과정 프로젝트가 대표 사례다. 주 교과는 진로와 직업, 교과 연계는 도덕·사회·정보 과목으로 구성됐다. 교사들은 ‘모의 창업 프로젝트로 미래사회 핵심역량 키우기’라는 주제 안에서 각 과목별 수업 후 창업 경진대회까지 개최했다.
이 프로젝트는 사이다 정기회의 때 진로진학부장이 아이들에게 창업과 창직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실생활에서 문제점을 찾아 창업 아이템을 정하는 부분을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은 것에서 비롯됐다. 그러자 도덕교사는 “도덕성이 결여돼 생기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창의적 아이디어 만들기를 모둠별 토론·토의활동, 협동학습으로 진행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쉽게 풀렸다. 이 수업을 통해 새치기를 방지하는 시스템 구축, 바가지요금을 없애기 위한 정가확인 어플리케이션 등이 도출됐다.
사회과 담당인 최 부장은 지리 관련 단원을 통해 관광자원을 활용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여행상품개발자가 되어보기’ 수업을 구성했다. 정보교사는 파워포인트 제작을 통해 제품 설명회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향상시키는 수업을 짰다.
진로 수업을 통해서는 창업 아이템 선정해 제품 소개서 만들고 디자인까지 도출하도록 했다. 이를 팀 별로 ‘창업보드’를 만들게 했다. 회사명, 상품명, 상품소개, 상품 디자인, 판매 전략 등을 기재한 것으로 겨루는 창업아이템 경진대회도 열었다. 세 명이 한 팀을 이뤄 학급 예선전을 거쳐 두 팀씩 뽑아 겨루는 대회로 진행됐다.
본선 심사는 학생, 학부모, 교사로 구성된 모의투자단을 구성해 가장 많은 투자를 확보하는 등의 결과를 통해 우승팀을 가렸다. 교사들은 경진대회 후 며칠 뒤 경기상상캠퍼스 입주 청년 창업 기업을 방문하는 활동까지 연계했다. 학생들은 수업, 경진대회에 이어 실전 창업 사례까지 확인하니 누구보다 생생하고 자세하게 알게 됐다.
최 부장은 “아이들은 돈이 많지 않더라도 좋은 아이템만 있으면 창업에 도전해볼만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5월 9일에는 ‘인성교육의 날’로 정한 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바른 언어사용’ 수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학년별, 교시별 수업안을 만들어 전 교사가 수업을 진행했다.
1교시 ‘고운 말, 나쁜 말’ 시간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고운 말과 나쁜 말의 영향을 비주얼씽킹으로 표현하도록 했고, 2교시는 역할극으로 올바른 감정 표현 방법을 사용하도록 했고, 3~4교시는 바른 말 사용에 대한 나의 다짐을 노래로 개사하고 율동까지 만들어 5교시에 발표회를 가졌다. 6교시에는 학급별로 ‘고운 말 나무’를 만들어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고운 말들을 적은 열매를 나무에 달고 복도에 게시했다.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 ‘점(The Dot)’을 통해 영어·사회·도덕·진로·국어·미술 과목을 통합한 사례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영어교사는 원서를 읽은 후 글의 구성과 내용을 시각적으로 요약하고, 느낀 점, 인상 깊었던 부분, 그 이유를 친구들과 나누도록 했다. 단어게임, 내용다이어그램 등을 활용하도록 했다.
사회 시간에는 책을 읽고 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긍정적인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핵심질문 만들기’와 ‘월드카페 토론’을 구성했다. 도덕시간에는 나의 탁월함, 조원들의 탁월함을 찾는 모둠활동을, 진로시간에는 버킷리스트 작성과 미래자서전 쓰기를 진행했다. 국어시간에는 20년 후 모습 상상해 글로 쓰기, 미술시간에는 ‘점으로 놀기’를 활용해 조형요소와 원리를 익히는 등 책 한권으로 다양한 수업이 이뤄졌다.
이 사례는 지난 8월 열린 ‘2018 자유학기제 수업콘서트’에서 소개돼 전국의 교사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50여명의 교사들은 직접 실습해본 뒤 교과통합수업에 대한 감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최 부장은 “선생님들은 우수한 역량을 가진 분들이기에 일단 모여서 협의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며 “저경력 교사들은 수업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