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청어람(靑於藍)

2019.01.14 09:50:24

- 어느 제자의 삶을 회고하며 -

청출어람이란 가르친 스승보다 제자가 더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 때를 비유한 말로 중국의 학자인 순자(筍子)의 청출어람이 벽어람(靑出於藍而 碧於藍)이요, 빙출어수이 한어수(氷出於水而 寒於水)라는 글귀에서 나온 말이다.


청출어람의 결실은 모든 교직자의 소망이다. 교직자들이 보람을 찾는다면 바로 가르친 제자들이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는 일일 것이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자기 직분을 다하고 사회 발전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볼 때 그 기쁨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교단을 지키는 교직자는 이 청출어람의 보람을 얻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감수해가면서 온갖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30여 년 간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청출어람의 제자들을 많이 보아왔으나 그중에서 한 제자의 감동적인 사례가 생각난다. 재직 기간 중 많은 학생과 상담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일도 많이 시켰다. 일을 많이 시키다 보니 학생들로부터 푸념도 받았고 또 기숙사 정지 작업 때에는 웃지 못 할 일화도 있었다. 주민으로부터 자기 집 기둥을 판다고 하여 물가지 세례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때의 어이없었던 광경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고교 졸업을 목전에 둔 김 군과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담 내용은 김 군의 고교 졸업 후의 진로 문제에 대해서였다. 김 군은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에 정진하던 모범생이었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행상을 하는 빈한한 가정의 학생이었다. 김 군은 얼마나 부지런한지 새벽같이 등교했다. 학교에 오면 매일 혼자서 교실 청소를 도맡아 하는 근면한 학생이기도 했다. 그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본받을 바가 많고 주위 사람들이 감동할 정도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김 군은 어느새 담임 선생님의 책상까지 깨끗이 닦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학급의 궂은일과 남을 돕는 봉사 활동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했다. 대인관계도 원만하여 급우 간에 인기도 좋았다. 김 군은 생활하는 것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글자 그대로 아름답고 착하기 만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김 군 문제로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당시 학교의 규정으로는 수업료 완납해야만 졸업이 가능한데 김 군은 수업료가 미납된 상태여서 졸업생 사정에서 탈락되었다. 가정 형편상 미납된 수업료를 납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규정을 무시하고 졸업 사정에 포함시켜 차별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고 참으로 김 군의 졸업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필자는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장 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개진됐다. 집약된 결론은 무조건 규정을 어겨가며 졸업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전도가 유망한 김 군의 장래를 꺾을 수도 없는 일이니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여 처리하되 해결 방법으로는 교직원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걷어 미납된 수업료를 대납해서 졸업 사정을 해주고 나아가 김 군을 대학교까지 진학토록 하여 등록금까지 책임지자는 의견이었다.


이 방법에 교직원 전원이 찬성하여 교직원 장학회가 구성되었고 장학회의 회칙에 따라 김 군의 졸업 사정 문제가 해결되었다. 더불어 다른 학생까지도 장학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마련되었다. 결과적으로 담임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제자를 위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다른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된 김 군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체납된 수업료를 본인이 납부하기 전까지는 졸업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김 군에게 선생님들의 성의를 지나치게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타일러 가까스로 양해를 구했다. 참으로 힘든 설득이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이 지났고 김 군은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김 군과 부모님들은 교무실에 들어와 큰절을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김 군은 삼년의 세월 속에 온갖 아르바이트와 역경을 이겨내고 고교 과정을 졸업하게 되는 영광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김 군의 값진 승리인 것이었다. 졸업장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값싼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겠지만 김 군에게는 그 무엇에게도 비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하나의 별처럼 반쩍이는 훈장일 것이다.


필자는 김 군이 졸업하기 전날 교실로 불렀다. 삼년간 고교 과정을 이수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김 군을 위로하고 그동안 훌륭한 생활 태도를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김 군에게 물었다. 이제 고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졸업 후의 진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결국 김 군은 가정 형편상 취직을 해서 가계를 돕는 일이 급선무라는 대답이었다.

 

필자는 김 군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물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취업을 해서 생계를 돕는 일도 불가피하지만 대학에 진학하여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김 군은 고등학교도 선생님들의 온정으로 어렵게 마쳤는데 어떻게 대학 진학의 희망을 감히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필자는 재차 김 군에게 말했다.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한 것은 절대적이나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정신력이며 김 군이 꼭 해야 할 일은 중단 없는 학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계속하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김 군은 묵묵부답이었다. 미래 사회는 치열한 경쟁 사회이니 면학에 전념하여 능력을 길러놓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될 뿐이니 꼭 대학에 진학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김 군은 머리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얼마 후 김 군은 대학 진학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다시 한 번 설득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김 군은 필자의 권고를 정면으로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그랬는지 침묵 끝에 말했다. 담임 선생님의 간곡하신 격려의 말씀 참으로 감사합니다. 대학 진학 문제는 저의 앞길을 열어 주시는 영광스러운 일이기는 하오나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니 부모님과 상의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필자는 그렇게 하도록 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의 대화였다.


다음날 김 군은 교무실에 들러 기대와는 달리 대학 진학을 정중히 사양했다. 그 이유는 변함없이 가정형편이었다. 자신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교를 졸업하게 된 것도 선생님들의 장학금 덕분이었는데, 또다시 선생님들께 부담을 드리는 일은 도리가 아닐 뿐 아니라 부모님도 허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비하여 공부를 하기는 하되 대학 진학은 하지 않고 낮에는 노동을, 밤에는 책을 벗 삼아 고학으로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고학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또 한편으로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니 깊이 생각하여 판단하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김 군은 자신의 의지와 결의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음먹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강한 집념과 자신감을 보였다.


필자는 할 수 없이 김 군의 철석같은 의지에 승복하고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는 김 군의 고학의 결심에 필자 또한 응원을 보냈다.


“김 군, 사실 학업의 주체는 인간이기에 공부를 해서 능력을 키우고 안 키우고는 정신력에 달려 있네. 학교에 진학하고 않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세. 학교에 진학하여 단계적으로 교육과정을 밟는다는 것은 하나의 제도적인 방법에 불과할 뿐 아무리 좋은 학교에 진학한다고 해도 공부의 주체인 학생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진학은 의미없는 것이야.”


이렇게 말해 주면서 이제 삶의 목표가 설정되었으니 건강한 몸으로 초지일관 불굴의 신념을 갖고 노력하여 대성할 것을 당부했다. 이렇게 비정한 각오로 험난한 앞날을 설계하고 스스로 헤쳐 나갈 것을 결심한 김 군은 학교를 나섰다. 효행상과 봉사상 그리고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기약 없는 세상을 향해 걸어갔다.


김 군은 고교 졸업 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필자는 김 군의 근황이 궁금했다. 김 군의 생활이 과연 본인의 결심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가끔 어머니께 안부를 물어 보았다. 김 군은 본인의 결심대로 낮에는 공장, 밤에는 열심히 독서에 몰두한다는 것이었다. 김 군의 성격상으로 볼 때 예상한 대로 실천할 것으로 믿었던 일이기는 하나 참으로 흐뭇했다.


그러나 김 군의 어머니를 만나고 난 몇 개월 후부터는 김 군의 소식이 끊겼다. 김 군의 어머니도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아버지도 행방불명이 되어 소식은 두절되었다. 여러모로 수소문해 보았으나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김 군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근황을 알 수가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도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김 군의 무소식이 무심해서인지 또는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인지 야속하기도 했다.


이제는 몇 년의 세월이 흘러 필자의 머릿속에서 김 군의 그림자가 사라질 무렵이었다. 최 선생이 한 통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 편지는 바로 고대했던 김 군의 소식이었다. 급히 뜯어 읽어보니 그것은 인간 승리의 드라마였다. 사연은 이러했다. 김 군은 고교를 졸업하자 곧 부모님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셋방살이를 하면서 아버지는 막노동으로 어머니는 파출부로 김 군은 공장에 다니며 세 식구 모두 직업 전선의 최전방에서 열심히 뛰며 생활했다고 한다.

 

김 군은 검정고시를 거쳐 본인의 결심대로 서울의 유명 대학에 합격하는 영광을 차지했으니 선생님의 은혜에 십분의 일 정도의 보답은 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최 선생과 함께 반갑고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뭉클한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김 군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모교를 찾아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겠다는 뜻을 밝히고 끝을 맺었다. 참으로 위대한 인간 승리였다.


우리 사회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많다. 김 군도 그러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인생은 본래 고해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것은 노력의 산물이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고진감래의 진리가 확인된 것이다. 하면 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만이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리고 성실한 생활이 기적을 낳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여 뜻있는 후배들에게 본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금 현재 김 군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어디서인가 남을 위한 봉사를 하며 그늘진 곳을 골고루 밝혀 주는 태양 같은 삶을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김동수 충남 서령고 교사, 수필가, 여행작가 su9493@hanmail.net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