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형’ 현장실습 하느니 알바 택한다

2019.02.18 16:55:54

[직업계고 부활 꿈꾼다] <1> 위기 맞은 직업계고 현실
 
취업률 전년대비 반토막 예상
불황에 ‘정책 미스’까지 겹쳐
현장 “정부 현실적 대책 외면”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경기 A학교는 지난 13년 간 중소벤처기업부와의 ‘맞춤형 취업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140명 정도 취업을 보냈다. 그러나 올해 그 숫자는 절반 정도인 80명으로 감소한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맞춤형 취업 프로그램은 병역특례와 연계돼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취업률 80%였던 B학교는 2월 중순 현재 48% 정도에 머물러있다. 이달 말까지 노력해도 50%대 중반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B학교 관계자는 “그래도 주위 상황과 비교하면 이 정도면 괜찮은 결과”라고 위안하고 있다.

 

직업계고 취업률이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직업교육 관계자들은 “정확한 수치는 2월말까지 최종집계가 나와야 알겠지만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20%대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실제 이 수치가 맞는다면 50%를 넘겼던 지난해의 반토막 수준이다. 이는 10년 전 최저점을 찍었던 때와 비슷해지는 수치다.
 

그동안 직업계고는 정부의 다양한 육성정책 덕에 성장세를 보였다. 선취업 후학습, 일·학습 병행제, 마이스터고 도입, 매직(매력적인 직업계고 육성) 사업, 병역특례와 연계한 취업 맞춤형 교육 등에 힘입어 2017년 직업계고 취업률은 50%를 17년 만에 넘겼다. 반면 10년 전 80%에 육박하던 대학 진학률은 2017년 68.9%까지 낮아졌다.
 

이처럼 직업계고 취업률 상승은 일자리 미스매치를 줄이고 학력중심 사회에서 능력중심 사회로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희망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직업계고 취업률 급감을 사회적 위기신호나 마찬가지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업계고 관계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경기 불황과 학습형 현장실습을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특히 학습형 현장실습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조기취업을 목표로 입학했던 학생들의 목표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현장실습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학생이 나오자 그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이고 안전교육 이수를 30% 이상 하도록 변경된 것이 학습형 현장실습 제도다.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수당도 적다.

 

A학교 입시담당 교사는 “현장실습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대폭 줄어들었고, 학생들도 현장실습에 나가느니 그냥 아르바이트 뛰는 게 훨씬 낫다고 한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2월 현장실습 기간을 축소할 당시 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지만 교육부는 결국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하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3만1060개였던 현장실습 참여기업은 지난해 1만2266개로 39.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현장실습 참여 학생은 2016년 6만16명에서 올해 1월 기준 2만2479명으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지난달 말 ‘현장실습 보완 방안’을 발표해 학습형 현장실습을 일부 수정하기로 했다. 현장실습 기업 선정 절차는 간소화되고, 현장실습 기간은 전환학기를 도입해 6개월까지 정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월 20만 원 정도의 실습 수당에 대해서는 실습시간 동안 최저임금의 75% 지급을 권고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학습형 현장실습을 철회하지 않는 한 정책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만큼의 수당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습형’이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이전대로 재개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고율이 최하위 권역에 머물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하는데, 현장실습이 문제인 것으로 판단한 부분은 실책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현수 수원정보과학고 교장은 “우리나라의 심각한 산업재해 사고율을 낮추는 방안 개선이 급선무”라며 “이 문제부터 돌아봐야 하는데 애꿎은 현장실습을 건드렸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직업계고를 찾는 입학생도 줄고 있다. 최근 직업계고 모집에서 전국적인 미달 사태를 빚었다. 학령인구 감소의 이유도 있겠지만, 조기취업과 같은 장점이 사라진 마당에 직업계고에서 희망을 찾기 힘들어 외면하고 있다는 관측도 유력하다. 모집인원의 감소폭보다 지원자 감소폭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관내 특성화고 1차 모집 결과 1만5502명 선발에 1만7241명이 지원하면서 1.11대 1의 경쟁률이었다. 2017년 1.12대 1보다 소폭 감소했다. 2017년은 1만6172명 모집이었으므로 모집인원이 670명 줄어 경쟁률이 다소 높아질 것으로 봤지만 지원자 또한 820명이 감소해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지방 직업계고는 더욱 심각하다. 경남도교육청은 최근 ‘직업계고 활성화 대책 수립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올해 입학을 앞둔 직업계고 신입생 1차 모집 결과 사상 최고 미달률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도내 직업계고 35곳이 올해 입학할 신입생을 1차 모집한 결과 전체 모집인원(4842명)의 20.2%로 역대 최악의 결과였다.
 

전북은 도내 특성화고 24곳 중 18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수년째 정원 미달 사태를 반복하는 C학교 관계자는 “폐과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문구 서울 영등포공고 교사는 “교육당국이 교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며 “교사들이 현장에 맞는 대안을 내놓더라도 상급기관이 발을 맞추지 못하고 엉뚱한 처방을 내린다면 직업계고 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병규 기자 bk23@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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