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주도 직업교육 확대
기업의 인재양성 투자 인식 높이고 확실한 당근 마련
현장실습 수당 국가 일정 부담해 다양한 유형 활성화
선취업 후학습 활성화
진학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보다 전문가 과정 으로 정착
일하면서도 언제든 원하는 분야 공부 가능한 여건 조성
고졸-대졸 임금격차 해소
학력기반 임금책정보다 자격 능력기반 평가 선행돼야
고교만 나와도 잘 살 수 있는 사회 위한 공동노력 필요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6년 전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제2차 한국 보고서 신성장 공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중산층의 악화된 재무위기’를 강조했다. 그 원인으로 높은 주택 가격 및 대출비용과 함께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등이 지목됐다. 특히 맥킨지는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 증가에 대해 중산층이 고등교육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탓에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위한 교육비 부담을 무리하게 늘리는 현상을 지적했다.
◇맥킨지 “韓사교육비 줄이려면 직업교육 강화”
맥킨지는 해결책으로 “독일과 스웨덴처럼 직업교육·학문 간 듀얼트랙 시스템을 구축해 기업 운영 직업학교를 확장할 것”을 제안했다. 대기업들이 맞춤형 인재육성 차원에서 직업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설명으로, 졸업 후 해당 기업에 취업하도록 해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전문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장기적으로 사교육비 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때마침 정부는 ‘선취업 후학습’, ‘마이스터고 설립’ 등을 내걸고 기업의 직업교육 참여 활성화에 공을 들이던 때였다. 대기업과 학교 간 산학협력 MOU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유럽 의 직업교육 제도를 가져온 ‘도제학교’도 도입됐다. 기업과 학교 간 거리를 좁히는 모델들이 나타나자 고졸 취업률은 꾸준히 올라 지난해는 10년 만에 10%대에서 50%대까지 찍었다.
맥킨지 보고서의 진단을 어느 정도 증명한 셈이었다. 기업의 직업교육 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고졸 취업률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대학 진학률은 10%포인트 정도 감소했다.
그 과정에서 직업계고 3학년생들이 2학기 중간고사 이후부터 일을 배우며 수당도 받을 수 있는 채용연계형 현장실습에 대거 참여한 것은 고졸 취업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최근 현장실습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는 학생이 나오자 교육부는 취업연계 현장실습을 ‘학습형’ 현장실습으로 급선회했다. 이로 인해 기업은 물론 학생 참여도 대폭 감소했다. 양측 모두 불리해지는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현장실습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100만 원 이상을 받았던 수당은 20만 원 정도로 줄였다. 학생의 교육내용과 안전지침 이행 등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등 교사와 기업의 해당 업무는 늘었다.
◇고졸 취업시대 ‘도루묵’ 위기
학습형 현장학습을 기피하는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취업은 불리해졌다. 직업계고 입학도 줄어 전국적인 미달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교육부는 1년 만에 방향을 다시 틀어 기간과 수당을 늘리기로 했다. 그런데도 직업계고 관계자들은 여전히 불만이다. 실습 비용을 산업체가 전담하는 현실임을 감안하면 다른 유형의 현장실습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학습형’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비용에 대한 정부 및 학교 차원의 예산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물론 현장학습은 다양할수록 좋다. 그러나 최근에는 ‘맞춤형 인재개발형’, ‘채용전 검증형’, ‘채용연계형’ 세 유형 가운데 채용연계형 현장실습에 90% 이상이 집중된 상황이다. 다른 유형으로 현장실습의 범위를 넓히려면 정부의 지원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직업계고는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처했다. 변화에 따른 충격해소 방안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탓에 고스란히 현장의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기업 참여를 이끌어야할 고용노동부는 ‘나 몰라라’하고 있다.
조민희 서울시교육청 취업지원담당 장학관은 “선도기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부처 간 협의와 조율을 통해 리스트를 내려달라고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학생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식의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처 간 협력해 현장 지원해야
현장실습 문제 해결조차 부처 간의 협력을 보이지 못하는데,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는 비관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의 기술인재 양성에 비상이 걸렸다. 이 역시 기업의 직업교육 참여를 늘리는 방안이 필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보니 추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신분인 데다, 이들의 증가는 의료보험 및 노후보장 등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더 큰 비용을 부담하기 전에 우리나라 기술 인력을 키워나가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자국의 기술인력 양성에 대한 방향성은 이미 선진국에서 검증을 마친 만큼 우리도 기업들이 직업교육에 나서는 모델을 장려해야 함에도 시작조차 어렵다. 최근 대기업들은 마이스터고 위주로 산학협력을 맺고 있지만, 맥킨지 보고서가 언급한 ‘직업학교 설립’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삼성고’와 ‘LG고’와 같은 직업학교를 설립해 학생들이 이른 단계부터 취업을 하면 굳이 명문대를 고집하지 않아도 되니 직업교육 발전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다 사교육비도 줄일 수 있다.
학력 기반 임금이 아닌 능력 기반 임금으로 전환해 고교만 졸업해도 사회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노력은 물론, 원하는 이는 누구나 언제든 교육과 실습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하는 방안도 교육부 홀로 할 수 없다.
이 경우 자칫 진학의 또 다른 기회주의를 양산하기보다 소신껏 직업교육에 뛰어들은 학생들이 전문가 군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하는 ‘후교육’ 프로그램 육성에도 힘써야 하기에 원래 방향을 잃지 않도록 협조가 잘 돼야 한다.
이런 체계가 잡히더라도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도 개선도 시급하다. 현재는 교사가 학생을 정밀하게 진단을 내린 상황에서 바람직한 진로·진학 지도를 하더라도 학부모들은 탐탁찮게 여기기 마련이다. 교사가 직업계고를 권하면 항의를 감수해야 하는 게 교육현장의 현실이다.
최문구 서울 영등포공고 교사는 “학생에게 직업계고 진학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권유하면 학부모들은 항의하는 분위기”라며 “사회 각 분야의 노력과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고교 3년간 사교육비를 낭비한 채 진학결과도 불만족스러워 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