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장’ 매뉴얼 효과 있을까

2019.03.18 16:21:49

휴대전화가 활발히 보급되던 시절, 명절 등 의미 있는 날이면 교사들은 학생·학부모들과 문자메시지로 덕담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휴대전화가 소통의 절대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믿었고 이런 분위기가 훈훈하게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해인사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문화가 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탄처럼 밀려오는 문자메시지가 어느 때 부터인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마음의 안정과 고마움을 느끼기 전에 부담감이 앞섰기에 문자메시지 문화는 조만간 종적을 감출 것으로 보인다.
 

전화통 붙들고 씨름하는 교단

 

최근 교육부는 교권 침해와 휴대전화로 인한 사생활 침해 예방 자료를 담은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을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2017학년도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 내용을 추가한 일종의 개정판이다. 이 매뉴얼에서 휴대전화로 인한 사생활침해 예방자료가 포함됐는데 교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매뉴얼을 접한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사생활 침해가 교육현장에 깊숙이 파고들어 일상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얄팍한 매뉴얼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뉴얼 내 보호자용에 따르면 밤늦은 시간 단순 민원, 교육활동과 무관한 사적 연락, 학교 밖 상담요구 등의 사생활 침해 요소가 있는 행위에 대해 경범죄 처벌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강력한 권고도 아니고 가벼운 부탁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탁은 부탁일 뿐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매뉴얼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에서는 밤늦은 시간에만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착잡한 심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로 교사들은 수업시간 외에는 업무처리, 교재연구, 학부모 상담 등을 지속적으로 한다. 늦은 밤이 아닌 근무시간 중에도 다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전화를 걸어와 수업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흔하고 때로는 점심을 거르기도 한다. 수업종료 후에도 전화통을 붙들고 학부모들과 통화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휴대전화 뿐 아니라 유선전화로 근무시간 중 발생하는 가르칠 권리에 대한 침해는 부지기수다.
 

이번 매뉴얼은 급조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예방을 위한 조치나 제도적인 장치 없이 일상적으로 교육되는 사후 처리 문제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매뉴얼에 담긴 내용들은 이미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교권침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기 전에는 고쳐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문제의식 없는 권장 차원의 매뉴얼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전화통 붙들고 씨름하는 교단

 

수박 겉핥기식의 매뉴얼 배포보다는 실태를 파악하고 실태에 맞는 강력한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사생활 침해나 교권침해가 증가하는 원인은 학생인권만을 최고로 강조함으로써 효율적인 학생생활지도가 불가능한 최근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서울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육청의 강요에 못 이겨 생활규정을 학생 친화적으로 일제히 개정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많은 것을 규제로부터 풀어 놓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장, 파마 등은 일상화 되고 액세서리 등도 허용되는 추세다. 교사들도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고 교육 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생활지도는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상 누군가에게 야단맞은 느낌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의 교권만이라도 지킬 수 있는, 그 이전에 교사에게도 인권이 필요함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신체 접촉 등 물리적 지도 수준과 방법 등을 포괄해야 한다. 생활지도 매뉴얼 마련은 물론, 미국, 영국, 독일처럼 교권 침해나 수업 방해 행동의 유형·수준에 따라 학부모 소환, 특별교육 부과, 강제 퇴실, 정학, 물리적 제지 등을 할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교육신문 jebo@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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