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만 소진시키는 현실… ‘모두 살리는’ 시스템 시급

2019.03.26 10:15:25

[직업계고 부활 꿈꾼다] <4·完>
전문가 좌담회(하)

본지는 ‘직업교육 살리기’에 나선 현장 교원, 전문가들과 2회에 걸쳐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1차 때 직업교육을 전체적으로 진단한 데 이어, 2차 좌담회에는 현장 중심의 개선점을 진단했다. 이병욱 충남대 기계금속공학교육과 교수, 이수정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배동윤 부산 대광발명과학고 교감, 이현영 경기 다산고 교사가 참석했다.

 

 

배동윤 “취업처 발굴부터 산학 연계, 취업 매칭 및 유지 등 학교에 역할 편중”
이현영 “현장실습 진행 산업체에 국가적으로 전폭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이병욱 “직업교육은 학교만의 노력으로 성공 못해… 경제주체 참여·지원 시급”
이수정 “독일·스위스는 직업교육 주체에 대해 학교·기업 동시에 법으로 명문화”

 

―교사 입장에서 필요한 개선점은 무엇인가.
 

배동윤 = 요즘 직업계고 교사들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 신입생 미달 사태로 인한 학급 감축 등의 우려로 학교 홍보 및 신입생 확보 노력, 학과 개편 등을 통한 지속적 변화 노력을 해야 하는 업무적, 심적 부담을 가지고 교육 활동에 임하고 있다. 신입생 미달이 많은 학교의 경우 학급 감축이 시행되고 학급당 2명의 교사 정원이 감축됨에 따라 신분상 불안감을 느끼며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직업계고는 취업률 제고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산업체 발굴, 매칭, 학생 관리 등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취업률 저조시 여러 사업 등에서 배제되거나 예산 축소 등으로 부정적 피드백이 주어지는 부담을 느끼는데다, 취업부·도제부 등 취업관련 업무에 대한 부담도 가중돼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셋째,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생활지도의 어려움이 증가하고, 학업 중도 탈락율 증가 등으로 학생 관리 업무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직업계고 교사들이 오직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인 교육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자리를 빌어 정부와 시·도교육청, 기업 등 유관기관에게 간절히 부탁드린다.


이현영 = 직업계고 교사들은 취업과 진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진행되는 사업도 정말 많다. 우스갯소리로 인기 있었던 영화의 대사를 패러디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이런 교사는 없었다. 우리는 영업사원인가. 교사인가.’ 교사가 교사답게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에 집중하고 싶다.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본연의 직무를 실현하고 싶다. 다른 사업들과 관련된 업무들을 전담해 추진하는 다른 직군이 있었으면 한다.
 

이병욱 = 종래의 한국교육에서 신념화되어 있는 획일적 성공 모델에서 탈피해 다양한 전공과 진로경로, 그리고 학생 수준에 부합된 교육 모델을 개발하고 적용해 행복하고 매력적인 직업계고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국가 및 각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에 대한 관심도 가져줬으면 한다.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배양과 더불어 확정된 정책에 대한 이해와 수용성을 높여 학생, 산업체,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핵심 주체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수정 = 각 권역별, 분야별 자체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경제, 사회의 변화와 정책의 변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직업계고 정책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직업계고 정책의 경우 유관기관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므로 기존의 담당자와 유관기관 담당자와의 소통을 통해 노하우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교사의 인사이동, 전담인력의 고용 관련 변화 등이 유관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책적 개선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배동윤 = 직업교육시스템이 잘 갖춰진 독일이나 호주의 경우, 학생들이 질 높은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교육청, 기업, 학교, 유관기관 간 상호 유기적인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다. 또 산-학-관 연계시스템을 통해 실효적인 직업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전폭적인 행정적 재정적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직업교육을 위한 균형적인 연계 시스템보다는 취업처 발굴부터 산학 연계, 학생-기업 매칭, 취업 유지 등 많은 부분이 직업계고의 역할로 편중돼 있는 성향이 짙다. 21세기 국가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학생들의 선호 및 기피 전공에 따른 구조 조정보다는 각 산업 분야에 필요한 기능 인력의 수요를 고려하고 그 분야에 필요한 인력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중등 직업계고 교육체제의 재편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현영 =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산업체에 국가적으로 전폭적인 지지와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 최근 교육부가 현장실습 산업체 선정과 관련된 기준을 완화했다. 하지만 아직도 산업체 현장은 힘들어하고 있다. 학생들 현장실습 업무로 힘든데다가 까다로운 기준을 맞춰야 하고 노무사와 교육청, 학교 등에서 수시로 회사를 방문하는 등 부담이 늘어 현장실습 참여를 꺼리고 있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하는 산업체에 실직적인 혜택이 주어져야하며 산업체도 미래의 직업인을 양성하는 직업교육의 중요한 위치임을 인식하고 함께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2011년부터 꾸준히 우리 학생들을 파견하는 한 의료기관이 있다. 현장실습으로 파견된 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혹시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더 많이 못 가르쳐 준 것에 안타까워한다.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생각할 수 있는지 여쭤보니, 우리가 똑바로 가르쳐야 우리에게 배운 학생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정확하게 업무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사회적 선순환’을 강조한 원장님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이러한 산업체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혜택을 줘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병욱 = 직업교육의 대상에 따라 중등단계, 고등단계, 그리고 평생교육 단계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직업교육 정책은 이들 단계들 간의 역할 분담과 교육 내용적 연계성을 고려한 정책 마련과 추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단계들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주체들은 자신의 분야에만 집착하지 말고 전체적인 국가 인적자원개발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체 직업교육의 파이를 키워나가기 위한 통찰력과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직업교육은 교육부문에서만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없다. 경제주체의 참여와 지원이 매우 필요하다. 따라서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부처와 기업, 그리고 노조의 참여와 협력이 요구되므로 이에 부합된 직업교육 정책이 범 부처 차원에서 마련되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수정 = 윗분들의 말씀에 동의한다. 직업교육은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이뤄지기 힘들다. 독일과 스위스는 직업교육의 주체에 대해 학교뿐 아니라 기업까지 법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협력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전문 분야의 인재 양성과 역량 개발은 국가의 중요한 책임이자 역할이므로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기반 마련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school to work’ 이행을 통한 직업교육 정책의 최대의 수혜자는 학생과 기업이며, 이는 곧 국가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한 법적 장치, 담당 부처를 넘어 범정부 차원의 예산 배분, 정부부처·지자체·유관기관 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현장교사들이 보는 학생 입장에서의 개선점은 무엇인가.
 

배동윤 =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기업에서 사회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실수도 하면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직업인으로 성장해가야 한다. 중등 직업교육 단계에서 해당 분야의 직무 역량을 키움과 동시에 취업과 대학 진학의 선택 기회를 확대하고 원하는 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근로자가 아닌 학생으로서 충분한 보호와 대우를 받아야 하고, 직업계고 학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건강한 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이현영 = 중학교 때 진로설계를 잘해서 자신이 정말로 배우고 싶은 직업교육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현재 고입정책에 문제점도 있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부모님과 선생님들과 의논하기보다, 친구를 따라 선택한다거나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식이 돼선 곤란하다. 그렇게 선택한 학과에 최선을 다해 교육에 임하도록 제대로 된 진로 설계,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학계에 계신 두 분에게 미래에 대한 제언을 듣고 싶다.
 

이병욱 =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시대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직업교육의 체제가 어떻게 설계되고 마련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마련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교육과 경재를 담당하고 있는 모든 주체가 노력해 정책적 의제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특히 인간의 정체성과 노동의 개념과 역할 변화는 반드시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예상되는 당면 과제 등을 도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교육 체제 마련에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수정 = 4차 산업혁명, 저출산·고령사회,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따라 국가는 직업교육 정책을 통해 전 국민이 거대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국민의 인적자원의 개발과 활용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직업교육은 특정 시기, 특정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할 중요한 교육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는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이고 유연하게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국민 모두가 전 생애에 걸쳐 언제든 원하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고 제1직업뿐 아니라 제2 또는 제3의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school to work’ 경로를 개발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 때 현재 직업계고 정책은 향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school to work’, 더 나아가 ‘work to school’로 유연한 직업교육 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전 국민의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해 직업교육 정책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학습-일-자격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병규 기자 bk23@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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